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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구리 10번기를 본 느낌

풍월 사선암 2014. 1. 30. 11:39

반드시 이기겠다 그러나 다치길 원치 않는다

 

이세돌-구리 10번기를 본 느낌

 

베이징 캉위엔루이팅 호텔에 마련된 공개해설장에서 10번기 첫 대국을 마친 이세돌 9(가운데)과 구리 9(왼쪽)이 자석바둑판으로 바둑팬들에게 승부처를 풀어 이야기해 주고 있다.

 

우칭위엔 선생을 보고 싶었다

 

처절한 승부 10번기. 역사 속으로 사라져 다시는 없을 것 같았던 10번기.

 

이세돌-구리 10번기가 열린다는 말이 나오기를 여러 차례였다. ‘안 되나 보다.’ 흐지부지 되고 했던 그 10번기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1월 초, 이세돌-구리 10번기 취재를 맡았다고 했더니 한 일간지 선배가 좋겠다. 역사적인 대국을 보다니.”라고 했다. 그 선배도 이세돌-구리 10번기의 시작인 제1국을 보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모양이었다.

 

이름만 듣던 현대판 10번기를 보나 보다 하는 정도로만 생각하던 나로서는 새삼 행운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10번기엔 혹시나 우칭위엔(吳清源) 선생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살아있는 기성으로 추앙받는 우칭위엔 선생은 10번기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다.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1939년부터 1955년까지 17년간 11번의 치수고치기에서 모두 승리했다. 일본의 난다 긴다 하는 기사들-후지사와 호사이, 기타니 미노라, 사카다 에이오 같은 이들이 중국의 천재기사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물론 그 당시 10번기는 4판을 지면 치수가 고쳐지는 잔혹한 승부였다.

 

신문사들이 주최하는 기전이 생겨난 이후로 10번기는 자취를 감췄고 세월이 흘렀다. 바둑사에 글로만 새겨진 10번기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으니, 우칭위엔 선생이라면 당연히 뜨거운 관심을 가질 것이 분명하다 생각했다.

 

우칭위엔 선생은 한국바둑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있던 12년 전쯤에 이런 얘기를 했다.

한국 천재들이 세계바둑을 제패했지만 앞으로 중국 경제가 발전하여 중국의 천재들이 빛을 볼 것이다.”

 

대단하다. 그대로 됐다. 구리가 출현해 세계바둑계를 주름잡았고, ‘90라는 태그를 단 그의 후배들은 더 두렵게 세력을 형성했다. 한국바둑이 밀려나고 있다.

 

또 선생은 당시, “나는 100세까지 살려고 한다. 그래서 해야할 일이 많다.”고 했다. 지금이 딱 100세다. 한데 100세는 적은 나이가 아니다. 우칭위엔 선생은 워낙 연로해 비행기에 탑승할 수가 없다. 역시 선생은 이세돌-구리 10번기가 벌어지는 현장에 오지 못했다.

 

암 투병 중으로 수척해진 중국 원로기사 녜웨이핑과 그의 딸.

 

대신, 녜웨이핑(聶衛平) 9단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중국에서 존경받는 원로기사 중 한명이다. 대장암에 걸려 투병 중인 그는 세번째 부인에게서 난 늦둥이 딸과 함께 이세돌 9단과 구리 9단의 10번기 제1국의 입회인으로 나와서 대국규정과 주의사항을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내린 뒤 자리를 떴다. 많이 회복된 편이라곤 하지만 살집이 좀 있던 그의 얼굴은 몹시 수척해져 있었다. 병 탓이 완연했다. 안타까웠다.

 

깡총깡총 뛰는 이세돌의 공주님, 혜림

 

1국이 열리기 전인 25일은 인천공항에서 베이징으로 취재를 떠나는 날이었다. 315분 출발하는 비행기편이었고, 베이징 현지에선 간단한 만찬이 있을 예정이었기에 그 전까지 도착해야 했는데 제때 출발을 하지 못했다. 30분이 넘게 지체하다 출발하게 되자 기내에서는 승객들에게 사과방송을 내보냈다.

 

베이징에서 만찬 장소까지 가는 데도 차가 막혔다. 결국 현지시간 6시에 열리는 만찬에는 40분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짐도 제대로 풀지 못한 채 만찬장부터 달려갔는데, 아주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대회 관계자들과 후원사 몽백합의 니건장 회장과 이세돌과 구리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관계자에게 귀엣말로 선수들의 멘트가 좀 있었느냐고 물어보니 아무 말도 없었단다. ‘설마!?’ ‘뜨거운 우정을 뽐내는 이세돌과 구리가 인사말조차 나누지 않았다는 말인가?’ 하긴 개막식은 지난해 11월 말에 했다.

 

◀대국날 아침식사하는 이세돌과 그의 가족.

 

다시 선수들의 소감을 물어보는 중복을 저지르진 않겠지. 그렇다곤 해도 아무 말도 없었나 했는데, 정말 없었다. 이세돌과 구리는 가까이 앉지도 않았다. 승부를 겨루며 우정을 쌓아온 이세돌과 구리라지만 가벼운 이야기조차 나누지 않았다. 처음엔 얼핏 이해되지 않았지만 금세 고개가 끄덕여졌다. 큰 승부를 앞두고서 그것은 서로를 위한 배려였다.

 

만찬을 끝내고 소감이라도 좀 물어보려 했지만 이세돌도 구리도 황급히 자리를 떠나 자신들의 방으로 향했다. 워낙들 빨라 쫓아가지도 못했다.

 

한국에서부터 생각했던 만찬장에서 단란하게 밥을 먹을 이세돌 가족의 모습조차 사진에 담지 못했다. 혜림 양과 부인 김현진 씨는 방에 있었다.

 

200693일 이세돌의 딸 혜림은 3.58KG으로 태어났다. 쌍둥이가 아닌 여아 신생아로선 체중이 좀 나가는 편이었다. 올해로 8살이 된 혜림 양은 20128월 캐나다로 건너가 엄마 김현진 씨의 보호를 받으며 유학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러기 아빠가 된 이세돌을 놓고 걱정하는 팬들도 있다. 지난해 부진을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이런 사정과 결부시키는 이도 있었다. 부인과 딸이 베이징으로 온다는 말에 기자는 기대를 잔뜩 했었다.

 

◀혜림 양이 아빠 이세돌의 볼에 뽀뽀를 하며 응원을 했다.

 

김현진-이혜림 모녀는 23일 캐나다를 출발, 24일 이세돌과 만났고 25일 낮에 베이징에 도착했다. 어린 혜림 양에게 이런 여행은 강행군이었다. 피곤을 이기지 못한 혜림 양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쉽게도 이세돌 가족을 위해 준비된 테이블엔 이세돌만이 앉았다.

   

하지만 대국날 아침엔 대국장을 깡총깡총 뛰어다니는 혜림 양을 볼 수 있었다. 혜림 양은 바둑이 뭔지 잘 모른다. 아빠가 뭘 하게 될 것인지도 잘 몰랐다. 대국 개시가 불과 10분 정도밖에 남지 않고 이세돌이 먼저 대국석에 앉았을 때도 혜림 양은 돌통 뚜껑을 열어보고 아빠한테 매달리며 장난을 쳤다. 이세돌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빠와 딸 사이, 이 행복한 순간을 누가 방해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대국장에서 이런 광경은 처음 봤다. 엄숙하기만 한 대국 직전엔 관계자나 기자들은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는다. 소음과 큰 동작은 금기시 된다. 대국자가 차를 따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이렇듯 대국자의 자녀가 와서 장난치고 그래도 될까하는 생각으로 나도 모르게 긴장했는데, 막상 보기 좋았다.

 

김현진 씨는 대국장에서 딸의 사진을 찍었고 딸은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아빠에게 뽀뽀 응원까지 했다. 중국 매체의 기자들도 혜림 양을 귀여워했다. 잔혹한 피의 승부 10번기와 뽀뽀 응원하는 어린 딸의 재롱은 회색과 오렌지색처럼 강렬한 대비를 이뤘다. 예전 10번기가 어둡고 처절한 이미지가 대부분이었다면 현대판 10번기는 뭔가 발랄하고 잔치 같다고 전부터 생각은 했지만, 혜림 양으로 말미암아 그런 색은 훨씬 더해졌다. 적어도 아빠 이세돌에겐 최상의 기쁨을 주었고 긴장을 완화해줘 컨디션 조절에 일조했으리라.

 

구리가 대국실로 입장하자 혜림 양은 엄마 손에 이끌려 포토라인 바깥으로 나왔다.

 

이세돌의 부인 김현진 씨는 바둑을 거의 알지 못한다. 김현진 씨는 바둑에 관한 것은 남편을 통해 듣는다. 이세돌이 10번기 1국에서 이긴 뒤 현진 씨는 이세돌의 대국 명패를 기념으로 갖겠다고 들고 나왔다.

 

식욕 왕성한 이세돌

 

한국에선 대국이 10시에 시작했으니 현지에선 9시였다. 촬영 허용 시간 15분이 지나고 대국실은 봉쇄됐다. 각자 3시간 55분에 초읽기 605회였으니까 종국은 현지 저녁 7시나 8시 정도가 되어야 끝나는 긴 승부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점심시간이 따로 마련돼 있지는 않았지만 점심을 선수들에게 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대국장 옆 휴게실에는 간식과 식사가 준비돼 있다. 스태프들은 대국장에서 나올지 모를 선수를 위해 긴장하면서 대기한다. 나는 선수들이 밥을 안 먹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요한 바둑을 두는데 밥 생각이 제대로 나겠나 싶었다. 특히 큰 대국 기간에는 잠도 잘 자지 않고 밥도 잘 먹지 않는 이세돌이라면 식사를 안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지만 구리는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미리 이야기 해놨고 이세돌 또한 평소와 좀 달랐다. 이세돌은 오후 12시가 좀 넘자 대국실 문을 열고 나와 휴게실로 들어갔다. 선수가 원하면 즉시 먹을 수 있도록 스태프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이세돌은 평소 좋아하는, 엄청나게 맵다는 라면과 김밥 등을 먹었다.

 

이세돌은 10분 만에 식사를 끝냈다. 김밥은 불고기가 들어가 있다. 겉보기엔 요기가 되겠나 싶어도 실제로 아주 포만감을 주는 것이었다. 한식대신 중국요리가 나왔어도 아무런 문제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세돌은 중국 음식을 아주 잘 먹는다. 어느 정도냐 하면, 중국에서 십수년째 살면서 중국인과 입맛이 거의 같아진 이영호 씨와 흡사하다. 더구나 이세돌은 중국리그를 뛰면서 중국을 제집 들나들 듯하는 형편이니 항간에, 대부분 어웨이 경기로 치러지는 10번기가 이세돌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우려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형 이창호가 중국 일정이 있을 때마다 매니저 역할을 했던 이영호 씨가 이제는 이세돌이 최상의 상태에서 대국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사진은 이영호 씨가 아빠의 대국을 기다리다 잠든 이세돌의 딸 혜림 양을 안고 숙소로 이동하는 장면.

 

이세돌은 이영호 씨와 농담을 하면서 후다닥 식사를 끝냈다. 이영호 씨는 이렇게 농담하는 것은 선수에게 굉장히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 “밥 먹을 때 눈치 없이 바둑 얘기를 하면 그 밥이 넘어 갑니까?” 하고 묻는 게 이영호 씨의 지론이다. 이영호 씨는 원래는 이세돌의 통역만을 맡을 예정이었다가 10번기 이야기가 진척되면서 역할을 좀 추가했다. 이세돌이 10번기를 하는 데 필요한 제반의 영역을 맡는 것으로 말이다.

 

이영호 씨는 형 이창호가 중국에 경기하러 올 때마다 일거수일투족, 그림자처럼 수행한 경험을 친동생 같은 기사 이세돌을 위해 발휘할 것이다. “이세돌 9단과 오랫동안 지내보니 알게 됐다. 그는 배짱 두둑하고 의리 있는 인물이다.”라고 말한다. 이영호 씨는 10번기 1국이 끝난 뒤 이세돌과 부인과 딸의 베이징 관광도 가이드했다.

 

젊은 후원인 니장건 회장

 

후원사 몽백합의 니장건 회장.

 

이번 10번기를 후원하는 니장건 몽백합(Mlily) 회장은 37세다. 젊다.

 

이번 기회에 알게 된 그의 특징은 화통하다라는 것이다. 자신이 마음에 결정한 일이 있다면 앞뒤 재지 않고 강력하게 밀어 붙이는 스타일이다. 10번기에 역사적 배경을 듣고 매력을 느껴그럼 10번기를 만들자.”고 결단하기까지 불과 30분 걸렸다고 한다.

 

니장건 회장은 한때 바둑과 마음이 멀어졌다고 한다. 중국의 정상급 기사들이 이창호 9단을 비롯한 한국의 내로라 하는 기사들에게 무수히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그랬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제는 중국기사들이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니장건 회장은 몽백합배도 후원하고 있으며 아마추어 대회도 후원한다. 외모가 출중하고 성적도 좋은 헤이자자 6단을 별다른 고민 없이 몽백합을 대표하는 공식 모델로 삼았다.

 

10번기 1국 전날밤도, 1국이 펼쳐지는 날도 니장건 회장은 틈틈이 바둑을 뒀다. 중국기자들과도 두고, 관계자들과도 두면서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바둑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화끈했던 10번기 첫 대결

 

중국은 그 어떤 세계대회보다도 이번 이세돌-구리 10번기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90'가 각광을 받긴 하지만 이세돌과 구리가 가진 카리스마와 상징성은 중국에서 아주 크다.

 

26일 중국 베이징 캉위엔루이팅 호텔에서 벌어진 이세돌-구리 10번기 1국은 이세돌이 이겼다. 초반이 특히 강한 구리에 휘말린 듯 이세돌은 실리에서 상당히 뒤진 채 초반을 보냈지만 중반부터 힘을 냈다. 구리가 약간 오버페이스한 붙임수를 응징했고 오른쪽을 죽죽 밀어 벽을 만든 뒤 가운데 상대의 돌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종반이 가까워지면서 구리가 한차례 판을 어지럽혔지만 이세돌은 무사히 마무리하면서 항서를 받았다.

 

복기를 할 새도 없이 두 사람은 공개해설장으로 불려갔다. 구름같이 모였다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공개해설장은 북새통을 이뤘다. 한국에서 온 기자와 피디는 , 부럽다는 말을 절로 뱉었다. 중국 바둑팬들은 남녀노소가 고루 있었는데 자기에게 마이크 차례가 주어지면 마음껏 질문했다. 일류기사가 되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느냐는 물음부터 중반 수읽기 포인트를 묻는 고급자의 물음까지 다양했다. 구리는 방금 중요한 일전에서 진 사람이 맞는지 갸웃거리게 할 정도로 연방 껄껄 웃으며 답했다. 필시 승패를 떠나 일생 라이벌과 벌이는 10번기에 기쁨이 있었던 것 같다.

 

시작이 반이다. 이세돌이 10번기 1국에서 승리했다.

 

숱하게 싸우면서 우정을 쌓은 라이벌, 이세돌과 구리는 피곤함을 잊은 채 대국을 치르고 팬들과 소통하고 그러고 나선 다시 대국장으로 가서 복기를 했다. 과연 하늘이 낸 10번기의 주인공인 듯싶었다.

 

이세돌은 10번기가 무승부로 끝나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런데 절대 지지 않을 심산이란다. 말 자체는 모순이다. 무승부이기를 바라는 것은 구리나 자기의 마음이 크게 다치는 걸 원치 않는다는 뜻이다. 절대 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은 숙명의 승부사로 당연한 마음일 테고. 부인 김현진 씨는 남편은 10번기라는 것은 질 경우 기사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한 것인데, 그래도 나는 이것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즐기겠다.’ 했다 말해준다.

 

친구 사이지만 승부사에게 승부를 가려야 하는 것은 숙명이다. 이세돌과 구리는 반드시 상대를 부러뜨리기 위해 처절하게 10번기를 치러나갈 것이다. 상대가 다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10번기 취재수첩] 김수광 2014-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