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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바둑과 치국(治國)의 길

풍월 사선암 2013. 12. 19. 17:58

시진핑, 바둑과 치국(治國)의 길

 

중국 주석 시진핑과 후견인 겅뱌오의 바둑인연

 

중국의 격주 발행 잡지 블로거천하는 1215일자 커버스토리에 시진핑과 바둑의 인연을 소개했다博客天下20131215

 

중국의 격주 발행 잡지인 블러거천하(博客天下)는 지난 1215일자 표지기사에서 현 중국 주석 시진핑(習近平:1953)의 바둑인연을 소개했다.

 

시진핑은 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이며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이다. 17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제1서기, 중국공산당 중앙 군사위원회 부주석, 중국공산당 중앙당 학교 교장으로 2007171중 전회에서 권력서열 6위로 올랐으며, 20083월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의 부주석이 되었다. 201211월 후진타오로부터 중앙위원회 총서기직을 물려받았다. - 위키백과

 

26세의 청년 시진핑은 1979년 칭화대를 졸업하고 당시 중앙군사위원회 비서장이었던 겅뱌오(1909~2000)의 비서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시주석의 아버지 시중쉰과 겅뱌오는 오래된 전우였다. 두 가족의 관계는 아주 가까워 어릴 때부터 겅뱌오의 딸 거옌은 시중쉰을 시삼촌이라 불렀고, 시진핑도 겅뱌오를 백부라고 부르며 따랐다. 둘 다 문화혁명 때 시련을 겪었고, 덩샤오핑이 전면에 나서면서 복권되었다.

 

겅뱌오와 시진핑은 공통의 취미가 있었다. 전장을 누비던 남자들에게 마력의 게임이었던 '바둑'이다. 경뱌오는 바둑으로 사고의 폭을 넓히고 세상을 보는 눈도 단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진핑과 학교를 함께 다녔던 녜웨이핑 9단은 1980년 초였던 당시 일본기사를 물리친 중국민족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시진핑은 바둑규칙을 알고 있는 정도였다.

 

시진핑과 그의 후견인 겅뱌오(중앙). 시진핑은 대학졸업 후 중국정치계의 원로 겅뱌오의 비서로 정치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3년 동안 같이 음악을 듣고, 바둑을 두며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를 배웠다."라고 말한다.

 

한번은 겅뱌오가 일본을 방문했는데 마침 중일대항전이 열리고 있었다. 녜웨이핑의 안내로 겅뱌오와 시진핑은 프로기사를 만날 수 있었다. 바둑을 아주 좋아했던 겅뱌오는 시진핑에게도 될 수 있는 한 빨리 바둑을 배우라고 권했다.

 

시진핑은 친구 녜웨이핑 9단에게 특별교습을 요청했다. 녜웨이핑은 "당시 그는 아주 빨리 기력향상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바둑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만약 그의 실력이 생각보다 안 늘면 내 체면이 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라고 술회했다.

 

겅바오는 총명한 젊은이들을 좋아했고 재능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129일 병상에 누워있던 녜웨이핑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나는 헤이룽장성에 하방해 있었는데 대회참가를 위해 자주 베이징에 올라와야 했다. 나는 어려운 형편이었는데 겅뱌오가 특별한 배려를 해 줘 당조직이 나에게 방을 따로 내 주게 했다."라고 말했다.

 

상관의 독촉에 시진핑도 바둑세계에 빠졌다. 녜웨이핑은 "내가 보기에 수준이 아주 낮았지만, 겅뱌오와 시진핑의 대국이 항상 격렬하고 사나웠다."라고 평하며 "나중에 그들은 내가 방문하면 바로 바둑판을 치워버렸다."라고 술회했다.

 

겅뱌오와 시진핑의 상하관계는 3년뿐이었다. 군 조직이 축소되면서 겅뱌오의 휘하에서 가장 젊은 비서였던 시진핑을 감원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함께 비서생활을 하고 '겅뱌오전'을 쓴 쿵샹수는 " 특별한 송별연회도 못해주고 간단히 돼지머리와 술 한 병을 가지고 몇몇 동료와 나눠마시고 시비서를 보낸 것이 마음에 걸렸다."라고 겅뱌오의 당시 감상을 전했다.

 

시진핑은 지방현의 부서기로 자리를 옮겼지만, 이때도 상당히 오랫동안 어깨에 훈장이 없는 낡은 군복을 입고 다녔다. 시진핑이 이런 차림으로 서적을 쌓아놓은 책상앞에서 찍은 사진은 후에 그가 중국공산당총서리가 된 후에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빛을 비치면 청록색을 띠는 윈즈(중국 윈난성 특산의 바둑돌)

 

시진핑이 푸저우시 서기였을 때 겅뱌오의 경위참모였던 황신밍은 "시진핑은 매년 설마다 겅뱌오를 찾아와 다양한 해산물을 선물했고, 또 바둑을 두었다."라면서 당시 쓰던 바둑판과 바둑알을 자신에게 주었다고 말했다. 바둑알은 녜웨이핑 9단이 선물한 윈즈(중국 윈난성 특산의 바둑돌)로 빛을 비추면 아주 신비한 녹색을 띤다.

   

시진핑은 고전에서 인용한 바둑의 도'에 대한 구절을 입에 달고 다닌다. 이는 '天下之患最不可为者名为治平无事而其实有不测之忧'라는 문구로 '천하의 재난은 해결하기 어렵다. 보기엔 태평해도 숨겨진 재난을 예측하긴 어렵다. 하지만 앉아서 그 변화만 지켜보고, 해결방법을 찾지 않는다면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한다.'라는 뜻이다.

 

겅뱌오의 딸 겅옌은 "아버지는 그가 비서로 일한 3년 동안 그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뜨게 해주었다."라고 회고한다. 시진핑과 그의 멘토 겅뱌오는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사색을 즐기며 일을 대함에 효율적인 해결을 추구했다는데도 공통점이 있다. 오랜 인연도 있었지만, 항상 둘을 이어주는 끈은 공통의 취미 '바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