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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어회는 먹지말자

풍월 사선암 2013. 12. 23. 09:21

[황교익의 먹거리 Why? 파일]

활어회론 물컹·밍밍한 대구·민어·고등어까지맛없는 활어회를 권하는 먹방들

 

대구회 유명 진해만 어부들海風에 사흘넘게 말려 먹고

민어회 즐긴 전남 사람들은 냉장고 보관, 두고두고 먹어

숙성하면 감칠맛 더해지고 수분 날아가 쫄깃한 식감

 

◀한 어부가 바다에서 갓 잡은 생선을 배위에서 회로 뜨고 있다. 상당수 생선은 숙성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감칠맛을 내는 성분인 이노신산이 부족해 맛이 좋지 않다.

 

바다 생선을 다루는 방송에 반드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출연자가 배 위에서 생선회를 먹는다. 바다에서 막 올려 팔딱팔딱 뛰는 생선을 그 자리에서 뭉텅뭉텅 썰어서는 입에 가득 물고 엄지를 치켜들면서 "최고예요"를 외친다. 그게 맛있다고? 거짓말이다. 연출일 뿐이다. 살아 있는 생선을 막 잡아 그 자리에서 회로 뜨면 살이 뭉클하고 질기며 비리다. 맛있다고 착각할 수는 있다. 배 위라는 분위기 탓이다. 진짜로 맛있을 수도 있다. 듬뿍 찍은 초장 또는 회를 싼 묵은 김치가 맛있으면. 생선 맛이 아니라 초장 또는 김치 맛이지만 말이다.

 

활어회는 맛이 없다. 이는 과학이다. 생선은 피와 내장을 제거하고 덩이 살로 숙성을 하여야 비로소 맛있어진다. 숙성 과정에서 감칠맛의 이노신산이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살의 조직도 탄력 있는 부드러움을 가지게 된다. 한국인은 넙치와 도미, 우럭 같은 흰 살 생선의 회를 즐기는데, 이 생선들은 활어로 먹는 게 더 맛있다는 말이 돈다. 이는 숙성회를 먹는 일본인과 차별화하려는 민족감정의 발로일 뿐이다. 흰 살 생선도 숙성을 하여야 맛있다.

 

활어회는 단지 맛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활어를 실어나르는 수조차에는 생선보다 바닷물이 몇 배나 더 들었다. 석유 한 방울도 안 나는 나라에서 먹지도 않는 바닷물 나르느라 길에다 돈을 펑펑 뿌리고 있다. 그 바닷물은 바다로 다시 가져가지 않는다. 육지에 버려져 환경을 오염시킨다. 횟집에서는 생선을 살리느라 수조에다 산소발생기와 냉각기를 돌린다. 손님이 있든 없든 24시간 돌려야 한다. 여름에 실내온도 단속까지 하는 국가에서 이러고들 있다.

 

활어회가 맛없다는 말은 전문가들이 참 많이도 떠들었다. 심지어 정부에서, 한때였지만, 싱싱회 사업을 펼치며 숙성회가 더 맛있다고 적극적으로 홍보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활어회는 그 영역을 점점 더 넓히고 있다. 도저히 활어회로 먹을 수도 없는 생선들까지 그런다. 무수한 예가 있으나 대구, 민어, 고등어로 설명하겠다.

 

경남 진해만 일대에는 겨울이면 대구가 잡힌다. 산란기에 들어 맛있는 대구이다. 근래에 대구를 살려 수조에 넣어둔 횟집이 등장하였다. 대구의 살은 수분이 많고 기름이 거의 없다. 따라서 살아 있는 대구로 회를 뜨면 질기듯 물컹하고 맛은 밍밍할 뿐이다. 이걸 맛있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입맛을 속이는 일이다. 그 귀한 대구를 그렇게 맛없게 먹는 일은 악덕이다. 이 지역에 예부터 전해오는 대구회를 먹는 방법이 따로 있다. 아가미와 내장을 제거하고 통째로 해풍에다 사흘 이상 말려 회로 뜬다. 그러면 수분이 날아가 단단하나 입안에서는 부드럽게 풀어지는 탄력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을 통하여 이노신산이 풍부해져 감칠맛도 산다. 이게 맛있는, 전통의, 진짜 대구회이다.

 

여름이면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민어가 잡힌다. 이도 언제부터인지 활어회로 먹는 이들이 생겼다. 횟집에서 활민어 해체 쇼까지 벌인다. 오래오래 전부터 민어회를 먹어온 전남 바닷가 사람들은 활민어회 따위는 안 먹는다. 살이 무르고 감칠맛이 적기 때문이다. 덩이의 살로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몇 날 며칠 야금야금 발라 먹는 재미로 여름을 난다. 냉장고에 넣어둔 지 1주일은 되어야 진미라고 한다.

 

고등어는 살리기 어렵다. 계속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원형의 공간을 주어야 한다. 어선에는 그럴 만한 공간이 없다. 살아 있는 고등어가 없어서인지 고등어회를 먹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일식집에서 고등어초절임(시메사바)을 먹는 정도였다. 식초와 소금으로 절였기는 하나 이도 숙성회이다. 고등어회가 번진 것은 몇 년 전 고등어 양식이 성공하면서부터의 일이다. 원형 수조에 넣어두고 활고등어회로 낸다. 겨울의 고등어이면 기름져 활고등어회가 부드럽고 고소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숙성을 하게 되면 그 부드러움과 고소함은 극대화하고 감칠맛까지 더해져 활고등어회 따위와는 견줄 수 없는 맛을 낸다.

 

활어회 이제 버리자고 예를 들어가며 떠들어봐야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놈의 방송 탓이 제일 크다. 확신하건대, 오늘도 어김없이 연예인이나 리포터가 배 위에서 활어회 입에 물고 "최고예요" 하며 폼 잡는 화면이 방출될 것이다. 이 화면 하나가 수백 수천의 글을 이긴다. 먹방 방송 작가와 피디들이여, 이건 이제 그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