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명상글

어떻게 살아야할까

풍월 사선암 2013. 11. 16. 09:25

 

어떻게 살아야할까

 

“나를 묻을 땐 내 손을 무덤 밖으로 빼놓고 묻어주게'

천하를 손에 쥔 나도 죽을 땐 빈손이란 걸

세상 사람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네.”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고 이집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쳐

많은 땅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 죽으며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스무 살 나이에 왕이 되어 세계를 정복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으니 나는 이제 심심해서 어떡하나.”

그는 인도를 정복하려고 공략하던 중 열병으로 사망했습니다.

10년 넘게 계속된 원정생활에서 오는 피로와 병사들의 반란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의 나이는 33세에 불과했습니다.

한 철학자가 그의 죽음 앞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제는 온 세상도 그에게 부족했으나

오늘은 두 평의 땅으로도 충분하네.

어제는 그가 흙을 밟고 다녔으나

오늘은 흙이 그를 덮고 있네.”

 

신하들들 알렉산더의 병세가 악화되자 세계를 정복한 대왕답게

거창한 유언들 남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죽을 때는 자신도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고

또 후세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 세상을 살다가 죽을 때는 모두가 빈손으로 간다.

빈손, 오직 바람만이 손아귀에서 부딪혔다가 빠져나갈 뿐

모든 것이 빈손으로 지나가는 바람일 뿐, 허공일 뿐,

어떻게 살다 가야 할까요?

 

월호스님의 산문집 '삶이 값진 것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ros the Great , 大王]

 

마케도니아의 왕(재위 BC 336BC 323).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시킨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하였다.

 

필리포스 2세와 올림피아스의 아들로서 알렉산더 대왕, 알렉산드로스 3세라고도 한다.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대왕으로, 탄생에 관해서는 그리스의 작가 플루타르코스(영웅전 작가)올림피아스가 벼락이 배에 떨어지는 꿈을 꾸고 임신하였다또는 필리포스가 아내의 곁에 있는 뱀을 보았다등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당시의 대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마케도니아 수도인 펠라의 궁정에 초빙되어 3년 동안 그에게 윤리학 ·철학 ·문학 ·정치학 ·자연과학 ·의학 등을 가르쳤다.

 

그는 호메로스의 시를 애독하여 원정(遠征) 때도 그 책을 지니고 다녔으며, 학자를 대동하여 각지의 탐험(探險) ·측량 등을 시킨 일, 또는 변함없이 그리스 문화를 숭앙한 일 등은 스승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또한 부왕으로부터는 전술 ·행정 등의 실제적인 일을 배웠고, BC 338년의 카이로네이아전투에 직접 참가하였다. 부왕이 암살되자 군대의 추대를 받아 20세의 젊은 나이로 왕이 되니, 그리스 도시의 대표자 회의를 열고 아버지와 같이 헬라스 연맹의 맹주로 뽑혔다. 때마침 마케도니아의 북방에 만족(蠻族)이 침입하고 서방에서도 반란이 일어나 친정(親征)하였는데, 이 싸움에서 그가 전사하였다는 소문이 퍼지자 온 그리스가 동요하고 테베가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즉시 테베를 토벌하고 테베시()의 전시민을 노예로 팔아버렸다.

 

BC 334년에 그는 마케도니아군()과 헬라스 연맹군을 거느리고, 페르시아 원정을 위해 소()아시아로 건너갔다. 먼저 그라니코스 강변에서 페르시아군과 싸워 승리하고,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의 여러 도시를 해방하였으며, 사르디스 그 밖의 땅을 점령한 뒤 북()시리아를 공략하였다. BC 333년 킬리키아의 이수스전투에서 다리우스 3세의 군대를 대파하였으며, 이어 페르시아 함대의 근거지인 티루스(티로스) ·가자 등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시리아 ·페니키아를 정복한 다음 이집트를 공략하였다. 이집트에서는 나일강 하구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시()를 건설하고 1,000 km가 넘는 사막을 거쳐 아몬 신전에 참배하였다.

 

여기서 ()의 아들이라는 신탁(神託)을 받았는데, 이후로 그는 만인동포관(萬人同胞觀)을 지니게 되었다. BC 330년 다시 군대를 돌려서 메소포타미아로 가서, 가우가멜라에서 세 번이나 페르시아군()과 싸워 대승하였다. 이때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는 도주하였으나 신하인 베소스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계속하여 바빌론 ·수사 ·페르세폴리스 ·엑바타나 등의 여러 도시를 장악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여기서 마케도니아군()과 그리스군() 중의 지원자만을 거느리고 다시 동쪽으로 원정하여 이란 고원을 정복한 뒤 인도의 인더스강()에 이르렀다. 그러나 군사 중에 열병이 퍼지고 장마가 계속되었으므로, 군대를 돌려 BC 324년에 페르세폴리스에 되돌아왔다.

 

BC 323년 바빌론에 돌아와 아라비아 원정을 준비하던 중, 33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죽었다. 그는 자기가 정복한 땅에 알렉산드리아라고 이름 지은 도시를 70개나 건설하였다고 한다. 이 도시들은 그리스 문화 동점(東漸)의 거점이 되었고, 헬레니즘 문화의 형성에 큰 구실을 하였다. 그의 문화사적 업적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여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시킨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한 데 있다. 그가 죽은 뒤 대제국 영토는 마케도니아 ·시리아 ·이집트의 세 나라로 갈라졌다.

<출처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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