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명상글

인파출명, 저파장(人怕出名, 猪怕壯)

풍월 사선암 2013. 11. 13. 15:25

인파출명, 저파장(人怕出名, 猪怕壯)

 

사람은 이름나는 걸 두려워하고, 돼지는 덩치 커지는 걸 두려워한다.

 

중국 송()나라의 한 학자는 남자의 세 가지 불행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첫째가 초년에 등과해 관직에 나아가 출세하는 것, 둘째가 부모의 후광으로 높은 벼슬을 하는 것, 셋째가 능력이 좋은데 문장까지 탁월하고 생김새가 미남인 경우다. 이 조건들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조건인데, 학자는 무엇 때문에 불행이라고 말하는가.

 

부모의 후광으로 높은 벼슬을 하는 것이 불행한 이유는, 성공한 부모를 둔 경우 제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성공이나 능력 따위는 훌륭한 부모에게 가려 보이지도 않고, 자기 이름으로 독립을 하고 싶어도 '부모덕이나 봐라'며 무시하니 자연스레 부모콤플렉스에 빠진다. 수처작주(隨處作主)가 되지 못하니 행복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얼마 전 고위 공무원 자녀 특채문제로 사회의 지탄을 받으며 부자가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으니 불행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조심할 것은 초년 출세, 즉 너무 일찍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날리는 것이 문제다. 초년에 성공하면 불행하다는 말은, 말년에 성공하면 행복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성공의 빠르고 늦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준비된 성공이냐, 그리고 그 성공을 유지할 능력이 있느냐이다. 세상에 이름을 낼 정도로 성숙해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젊은 나이에 입신양명(立身揚名)하는 것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실패나 좌절 한 번 없이 세상에 나오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고시에 합격하여 고위 공무원에 오르거나 의욕만 가지고 창업에 성공을 하는 경우, 성공에 우쭐하여 스스로 교만해지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잘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공부를 많이 했으니 지식은 많을지 몰라도 지혜는 아직 부족하기에 위기 상황에 적절한 대처능력은 떨어진다. 불행을 자초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한 공학도가 있었다. 십여 년 전 명문대 출신으로 한창 벤처열풍이 불 때 그도 창업을 하고 큰돈을 벌었다. 세계적 특허기술로 대박 성공이 예상이 되자 그의 주변에 투자하겠다, 힘이 되어주겠다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우쭐해진 그는 성공이 계속 갈 것이라고 생각했던지 연구에 더 매진하기보다 돈 쓰는 재미에 빠졌다. ‘초심을 잃지 말라,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는 주위의 만류는 오만에 빠진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정체는 후퇴와도 같다고 했던가. 얼마 후 선점했던 시장은 후발주자에게 잠식당하고, 도와주겠다던 사람들은 회사 운영자금을 횡령하고는 사라져버렸다. 결국 그는 빚만 지고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그는 과거 화려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나에게 다시 한 번 일어서겠다는 의지를 보이지만, 실패의 후유증이 너무 커 쉽지 않아 보였다.

 

정상에 오르는 것은 혼자서도 가능하지만, 정상에 계속 머무르려면 주위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경험이 일천한 사람일수록 귀를 열고 경험 많은 사람들의 조언을 들어야 하고, 자세를 낮추어 경청하고 일부러라도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여야 한다. 머리보다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공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샴페인을 일찍 터뜨리고 진퇴의 갈림길에서 고민할 때 그 사람 곁에는 도와주는 이가 없을 것이니 훗날 재기도 쉽지 않게 되는 것이다.

 

불가(佛家)에서는 수행하는 자에게 일을 도모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을 경솔한 데 두게 되나니,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되 많은 세월을 두고 일을 성취하라 하셨느니라고 하였다. 빠른 성공을 원하는 사람이 가슴에 새겨둘 말이다. 쉽게 얻어지는 일은 그만큼 뿌리가 약해 쉽게 사라진다. 그러나 시간을 두고 정성을 다해 이룩한 일들은 웬만한 고비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은 이름나는 걸 두려워하고, 돼지는 덩치 커지는 걸 두려워한다(人怕出名, 猪怕壯)는 말처럼, 뜻을 세우고 성공을 거두려는 사람은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매사에 신중하고 치밀해야 한다. 꿩은 날 때 쏘지, 숲 속에 있을 때는 쏘지 않는다. 꿩이 조급하게 날아올랐기 때문에 사냥꾼의 목표가 되는 것이다.

 

<한국경제 / 차길진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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