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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명의 목숨 앗아간 1972년 서울 시민회관 화재

풍월 사선암 2013. 11. 3. 19:54

53명의 목숨 앗아간 1972년 서울 시민회관 화재

 

197212월 밤 828분쯤 서울 세종로 서울시민회관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이날 시민회관에서는 문화방송 개국 11주년 행사로 10대 가수 청백전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남진, 이상렬, 이용복, 정훈희, 조미미, 하춘화와 신인상 수상자 김세환·정미조, 특별상 수상자 김추자, 코미디언 구봉서·곽규석 등도 공연에 참가하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밖으로 나오는 사이 갑자기 무대 위 조명장치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터지면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원인은 전기 과열로 말미암은 합선이었다. 공연이 끝났기 때문에 막이 내려오고 있었고 불길은 막으로 옮겨붙어 삽시간에 번졌다. 관객 중에서 3분의2 정도는 퇴장한 상태였지만 아직 나가지 못한 사람도 많아 회관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무대 쪽에서 시작된 불은 천장 쪽으로 치솟았고 위층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아래층으로 물밀듯이 밀려왔다. 관객들은 서로 먼저 나가려고 밀치고, 계단에서 넘어졌으며 여성들과 아이들이 깔렸다. 2층에 있던 관객 수십명은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기도 했다.

 

이 화재로 53명이 죽고 76명이 다쳤으며 부상자 중에는 가수 문주란과 김상희도 있었다. 김상희는 가벼운 부상을 당했지만, 문주란은 화장실 유리창을 깨고 뛰어내렸다가 허리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시민회관 화재는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 1974년 청량리역 대왕코너 화재와 함께 1970년대 서울의 3대 화재 사건 중 하나다.

 

시민회관은 195661일 착공됐다. 이승만 정부 시절 국가 최대의 프로젝트로 체신부 청사 자리에 새 건물을 짓기 시작했는데 원래 이름은 우남회관이었다. 우남은 이승만의 아호다. 야당의 반대 등 우여곡절 끝에 19611031일 완공됐지만 이미 4·19, 5·16이 지난 뒤여서 우남이라는 이름이 사라진 것은 당연했다. 시민회관은 1960년대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명소였다. 공연과 음악회가 자주 열렸고 10층 옥탑은 당시 주변 건물 중 가장 높아서 야경을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전망대였다. 완전히 소실된 시민회관 자리에 세종문화회관이 19741월 착공되어 19784월 완공되었다.

 

서울 시민회관 화재

 

발생원인

 

서울 시민회관 화재1972122일 오후 830분경에 서울 광화문 근처에 4층 규모의 시민회관에서 발생하였다. 이때 시민회관에서는 ‘MBC 10대 가수 청백전이 열리고 있었고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 한 시간이 지난 828분경 갑자기 펑하는 소리와 함께 무대 위에 가설된 조명장지가 터지면서 불이 붙었다. 주최 측이 급하게 막을 내렸더니 그 막에 불이 붙으면서 걷잡을 수 없이 화염이 번져 나갔다.

 

내용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었던 시민회관은 1972122일 문화방송 개국 1주년기념 10대 가수 청백전공연이 끝나 관객이 밖으로 나오고 있을 무렵이었다. 불은 공연이 끝난 약 7분 후에 무대 쪽에서 갑자기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불이 날 당시 관객의 3분의 2 가량은 이미 밖으로 나간 뒤였으나 아직도 회관 안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불이야"하는 고함소리를 듣자 다투어 빠져 나오느라 계단 위에 넘어지기도 하고 2, 3층에서 유리를 깨고 뛰어 내리는 등 현장에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일었다. 무대 쪽에서 천장으로 불길이 치솟자 사람이 밀어닥쳐 어린이와 여자들이 계단에 깔리고 수십 명이 2층에서 1층 바닥으로 뛰어내리는 바람에 사상자가 더 늘었으며 2, 3층 관객이 참변을 많이 당했다.

 

불이 나자 서울시 소방본부는 6대의 고가사다리차를 비롯하여 72대의 소방차(미군 소방차 5대 포함)와 소방관 400, 군 병력 170명 등 1,020명을 동원하고 군 헬기 1대의 공중지원을 받으며 진화 구조작업을 폈다. 그리고 시내 각 병원과 군 구급차가 동원되어 사상자를 실어 날랐고 화재발생 1시간 30분 만에 큰 불길이 잡히고 2시간만인 오후 10시반경 불은 완전히 꺼졌다.

 

서울 시민회관 화재사고에서 연건평 3,432(지하 1, 지상 10) 중 소강당을 제외한 3,000여 평을 모두 태우고 미처 탈출하지 못한 51(20, 31)이 질식 또는 소사하고 76(34, 42)이 부상을 당해 74명이 입원 치료를 받게 되었다. 사망자 가운데는 시민회관 관장도 포함되었는데 관장은 사무실 의자에 반듯이 앉아 있는 것을 업고 내려와 세브란스병원에 옮겼으나 이미 숨져 있었다. 조사 결과 화인(火因)은 무대조명장치의 불비로 인한 전기 과열로 합선이 돼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고 재산피해액은 25천만 원으로 추산되었다. 

 

< 사진 <좌>구 시민회관과 중앙청, <우>세종문화회관과 광화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