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의 쉼터/고향사선암

철목(哲木)리 원철목(哲木)마을

풍월 사선암 2013. 10. 1. 11:32

철목(哲木)리 원철목(哲木)마을

 

철목리는 조선시대까지 풍남면에 속해 있다가 1914년 일제강점기에 무풍면에 편입되면서 원철목을 비롯한 원들애, 괘바우, 소들 등의 마을을 한 행정구역으로 묶어 철목리라는 지명을 붙여 법정리로 삼았다.

 

()()마을은 본래 ()()이라 했으나 후에 나무 목자로 바꾸어 오늘날의 철목마을이 되었다.

 

이 마을에서는 멀리 있는 사물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소라 하여 이름이 붙었으며 이 마을은 원래 선비들이 모여 미풍양속을 지키기 위한 향약을 만들고 이를 행하기 위해 건립한 풍호정이라는 정각까지 있었다.

 

이에 사람들은 이곳을 ()()들이 모이는 장소라 하여 철목이라고 하였으며 지금도 옛날에 심었던 노거수가 세월을 말해 주는 듯하다.

 

이 마을은 조선 태종 때 무풍현의 마지막 현감을 지낸 최영보의 가족들이 머물러 살게 되면서 마을이 번창해지게 되었다고 전하며 그의 후손인 죽헌 최활의 위패를 모신 죽림서원이 있으며 그 아래에는 320년이 넘은 노거수 한그루가 있다.

 

마을에서 떨어진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곳에는 정려각이 서있는데 그 곳을 원앞 정문거리라 부르며, 원앞 정문거리에는 고종 188년에 세운 충신 이만번, 이만경 형제 정려각과 열녀 옥산 장씨 정려각이 서 있다.

 

이만번은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였으며 담력과 도량이 커서 영조 1728년 정희량이 난을 일으키자 동생 이만경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군량과 병기를 마련하여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워 고종때 병조참의로 증직되면서 정려각이 하사되었다.

 

동생 이만경 또한 정희량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싸웠으며 천성이 착하며 효성이 지극하여 효에 얽힌 이야기가 라제통문 바위에 빙어약소로 각자되어 있으며 두길리 마을에도 설치자투소라는 효에 얽힌 이야기가 각자되어 전해 내려온다.

 

열녀 옥산장씨는...

흥양이씨 가문으로 이철구의 아내이다. 남편이 병에 걸려 갈수록 병세가 깊어지자, 시조부가 걱정할 것 을 염려하여 병이 차도가 있다 위로하고 홀로된 시어머니가 식음을 전폐하고 있음을 민망히 여겨 지성으로 권하며 공양하였다.

 

병이 점점 위급해지자 양자를 들이기를 권유하며 빨래와 바느질을 시누이에게 부탁하고 시조부와 시어머니 옷을 잘 손질해놓고 남편이 숨을 거두자 미리 준비한 허리띠로 목을 메어 남편을 따라 죽었다. 이에 남편과는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해에 죽었는데 이에 철종 141863년 정려각을 하사하였다.

 

최활(崔活)에 대하여...

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 의병. 호는 묵재(黙)이다. 본관은 전주(全州)로 전라북도 무주(茂朱)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고궁당(固窮堂) 최수손(崔秀孫)이고 아버지는 최계성(崔繼成)이다.

 

중년에 두 형을 잃자 명리를 따르는 세상의 풍조를 개탄하며 산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산속에서 여러 해를 보내며 심경(心經)과 근사록(近思錄)을 탐독하였다. 조정에서 그의 학문을 듣고 예빈시봉사(禮賓寺奉事)에 제수(除授)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과거(科擧)에도 응시하지 않았다. 송일홍(宋一洪)은 그를 한() 나라의 곽임종(郭林宗)에 견주기도 하였다. 1835(헌종 1) 수분와(守分窩) 김단(金湍), 신재(新齋) 채달주(蔡達周)와 함께 현재 전라남도 부안군(扶安郡) 부안읍(扶安邑) 옹중리(瓮中里) 387-2의 옹정서원(瓮井書院)에 배향되었다. 항일/국방 / 의병 / 의병 활동을 하신 분이다.

 

철목리가 마을이 형성된 것이 거의 5백 여년이 된다.

 

조선왕조(朝鮮王朝) 세종(世宗)때 원주이씨(原州李氏) 이여공(李汝恭)이라는 사람이 이 고을에 머물면서 마을을 이뤘다. 그 뒤 안동권씨(安東權氏)인 권칭(權稱)이 서울에서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고, 선조(宣祖) 11년 순흥안씨(順興安氏)인 안호라는 사람이 이거했고, 이어 전주최씨(全州崔氏)인 최영보가 보성에서 무주현감(茂州縣監)으로 왔다가 이곳에서 머물러 살게 되면서 마을이 크게 번창했다.

 

철목리는 오랜 역사와 더불어 자연부락 5개 부락으로 나뉘어졌다. 원철목(元哲木), 신기(新基), 우암(猫岩), 우평(牛坪), 온월(溫月), 신기는 원철목이 생긴 후에 마을이 됐다고 해서 새터(新基)라 했고 우암은 괴상한 바위가 있다 해서 우암이라 불렀다. 온월은 달빛이 솟아나면 온 마을이 고루고루 비친다 해서 온월이란 이름이 지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이렇게 서 있습니다.

이 땅에 일어났던 모든 재난 속에서도 오직 당신을 위해 의연히 서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아끼고 사랑해 주신다면 당신과 당신의 후손들 곁에서 억겁을 살으렵니다.

 

보호수

수종 : 느티나무, 수령 : 320, 수고 : 18m, 나무둘레 : 5.2m, 지정일자 : 1982920

소재지 : 전북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 415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