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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준號 국가정보원이 살아남는 길 - 1부

풍월 사선암 2013. 6. 29. 16:01

정치 시녀 정보공룡에서 날렵한 대북 전담기관으로

남재준국가정보원이 살아남는 길

 

국정원은 왜 자꾸 정치의 시녀로 전락할까

전현직 직원들의 정보 누설과 정치 관여

정권교체, 원장교체 때마다 몸살 앓는 정보공룡

급변사태 대비하는 북한 전문정보기관으로 바꿔야

CIA의 분명한 정보 목표국정원장은 원칙만 고수할 것인가

위기관리 시스템 부족한 지휘구조

대통령 대신해 국가정보 총괄할 DNI 만들어야

 

1_ 정치 격변기마다 내란에 휩싸인 국정원

 

나는 자랑스러운 국가정보원의 직원으로서 보안이 나와 우리 원()의 생명임을 명심하고 업무상 취득한 내용은 어떠한 경우에도 누설하지 않을 것을 엄숙히 다짐합니다.”

 

국가정보원 직원은 누구나 외우고 있다는 보안선서다. 정보기관은 첩보의 수집과 정보의 생산, 그리고 공작에 전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정보활동을 하면서 접하게 된 일을 밖으로 알리지 않는 보안에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 ·첩보와 공작 활동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보안이기에 이들은 행사 때마다 국기에 대한 맹세와 이 선서를 반복한다.

 

국정원 직원의 보안 의식은 법으로도 강요된다. 국정원 직원이 되는 자는 국가정보원직원법 제15조에 따라 원장 앞에서 본인은 국가안전보장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으로서 투철한 애국심과 사명감을 발휘하여 국가에 봉사할 것을 맹세하고, 법령 및 직무상의 명령을 준수·복종하며, 창의와 성실로써 맡은 바 책무를 다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다짐한다.

 

다짐은 이 법 17조에 의해 다시 강요된다. 171항에 직원은 재직 중은 물론 퇴직한 후에도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국정원 직원도 본의 아니게 재판이나 수사의 대상이 될 수가 있다. 그때 이 조항을 근거로 증언을 거부하거나 거짓 증언을 하면 불이익을 받거나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한 때에는 원장의 허가를 받아 진술을 한다. 국정원직원법은 172항과 3, 4항 등에서 원장은 군사, 외교, 대북관계 등 국가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증언을 허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직을 막론하고 국정원 직원은 허가받지 않은 내용을 유출해선 안 된다.

 

정치권으로 새나가는 정보

 

이렇게 보안을 강조하지만 국정원에서는 선거철만 되면 정치 풍향에 춤추는 직원이 나오고 정치권으로 정보가 새나는 현상이 일어난다. 과거에는 원장을 비롯한 정무직 간부들이 이 조항을 위반하는 사례가 많았다. 대부분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를 돕기 위해서였는데, 다음 정권에서도 한 자리를 하려는 의도였다. 더 오래전에는 정보 예산으로 여당 후보의 당선 확률을 알아보는 여론조사를 실시해서 어디를 더 공략하라는 등의 판단 의견을 달아 갖다 바치기도 했다. 노골적인 정치 관여였다.

 

요즘은 공채 출신인 하급 직원들도 정치 관여를 한다. 이들은 제대로 정보교육을 받았지만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정보를 유출한다. 이러니 국정원은 큰 선거가 있고 나면 지탄을 받고, 내적으로는 정치의 시녀로 전락하는 현상이 반복된다. 지난해 18대 대통령선거 직전에 일어난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그런 사례다.

 

이 사건을 단순히 국정원 소속 여직원이 정치에 관여한 것으로만 보면 단견이다. 첫 수사를 맡았던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의지로 그런 쪽으로 흘러간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권 과장의 수사에 대해 경찰 밖은 물론이고 안에서도 무리한 수사” “권 과장이 오히려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차 진급하고 계급정년 걸려

 

여직원 사건 뒷면에 정치 진출을 꾀한 전직 국정원 직원이 관련돼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권은희 과장의 수사에 대해 분노하는 국정원 직원들도 이 사건에 대해서는 스스로 부끄럽게 여긴다. 이 사건은 너무도 명백한 정치 관여이다. 여직원 사건은 이 사건 때문에 발생했다. 이 사건을 상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19971218일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DJ) 후보가 당선된 것은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을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때까지 대한민국 권부(權府)는 영남 출신 중심으로 운영돼왔다. 정보기관과 군, 검찰, 국세청, 경찰청, 감사원, 청와대 등 권력 기관의 요직에는 영남에서 태를 끊은 사람들이 즐비했다. 여타 지역 출신은 그 나머지를 나눠 가져야 했다.

 

그에 저항한 것이 호남 세력이었다. 호남은 인구가 많은 데다 유명 정치 지도자인 김대중이 있어 영남 권력에 도전할 수 있었다. 그에 대해 영남 세력은 호남 대 비()호남구도를 만들어 그들을 고립시켰다. 이 구도를 깨기 위해 김대중 세력은 영남 독식을 비판하며 충청의 리더인 김종필(JP)과 손잡고 DJP 연대를 이뤘다. 영남을 고립시키는 ()영남 대 영남 구도를 만든 것인데, 이것이 성공을 거둬 DJ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정권 교체의 여파는 권부 중의 권부인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에도 몰아닥쳤다. 안기부의 중심 세력이 영남에서 호남 또는 친()DJ 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김영삼 정권과 가까웠던 1급들은 대거 안기부를 떠나게 됐다. 1급은 직업공무원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위직이지만 계급정년이 없기에 해임되면 자동 해직으로 이어지는 공로연수 대상자가 된다. 그 자리를 호남 또는 친DJ 인사들이 차지했다.

 

2급 이하들도 물갈이가 됐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안전기획부직원법(국가정보원직원법)에 의해 정년을 보장받는다. 따라서 바로 해직은 되지 않고 한직으로 밀려나 계급정년이나 연령정년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안기부의 세력 교체는 두 단계로 이뤄졌다. 1단계는 출신 지역과 성향에 따른 교체였다. 2단계는 해외공작(대북공작 포함)과 해외정보(대북정보 포함), 대공수사 분야를 축소하고 햇볕정책을 추진할 쪽을 강화하면서 교체됐다.

 

2단계 교체로 해외공작과 정보, 대공수사 분야에서 일해 온 많은 실무자가 한직으로 밀려나 정년을 기다리게 됐다. 일부는 과거의 비위로 면직됐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국사모(국가정보원을 사랑하는 모임)’를 만들어 햇볕정책을 펼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소송을 걸고 충돌했다. 2단계 교체를 통해서도 역시 호남세력과 친DJ 계열이 약진했다.

 

정치 택한 공채 출신 전직 직원

 

이러한 물갈이는 내부 정보가 있어야 가능하다. 국정원 내부에서 협조하는 사람이 있어야 좌천할 사람과 면직할 사람을 추려낼 수가 있다. 이른바 살생부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 작업에 적극 협조한 이는 이어진 인사에서 중용된다. 그때 국정원 공채 출신인 김○○ 씨가 당시 동기 가운데 1차로 4급으로 진급하며 이목을 끌었다. 그는 퇴직 후 자전적 에세이집을 출간했는데, 이 책에서 그는 광주광역시 출신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진급은 거기까지였다. 영남 출신인 노무현-이명박 정권 시절 계속 제자리걸음을 했기에 그는 계급정년에 걸릴 신세가 됐다. 국정원은 일반직원이 퇴직할 때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한 급수를 올려준다. 2009년 그는 3급으로 국정원을 퇴직했다. 한 국정원 간부는 그가 계급정년으로 퇴직한 이유를 “DJ정부 때 국정원의 살생부를 만드는 데 관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자에게 그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그후 김 씨는 민주당에 가입했다. 현직 국정원 직원이 정당에 가입하는 것은 국정원법 위반이지만, 전직은 불법이 아니다. 과거에도 공채 출신의 안기부 전직 직원이 국회의원이 된 예가 있었다. 199214대 총선에서 민자당 후보로 경주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된 고 서수종 의원이 첫 번째였고, 두 번째가 18, 19대 총선 때 경북 김천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 후보로 공천돼 연속 당선된 이철우 의원이다.

 

○○ 씨는 타향에 둥지를 틀었다. 201219대 총선이 다가오자 민주당 경기 시흥갑에 예비후보를 신청한 것. 예비후보 신청을 앞둔 2011년에는 자전적 에세이를 내며 자신이 국정원 출신임을 강조했다. 그는 DJ계열을 선택했는데, 시흥갑에는 친노(親盧)의 백원우 의원이 있었다. 그는 백 의원과의 공천 경쟁에서 졌다. 그러나 백 후보는 본선에서 새누리당 함진규 후보에 패배했다.

 

김 씨가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면 그는 국정원 공채 출신으로는 최초로 야당 국회의원이 되는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19대 총선이 끝난 후 바로 18대 대선 체제로 접어들었다. 그 무렵 김 씨는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일어나는 단서를 만들었다. 국정원의 한 간부는 이렇게 설명했다.

 

“18대 대선이 다가오자 김○○ 씨는 국정원 후배인 정△△ 씨에게, 국정원이 18대 대선에 개입하는 것을 추적해 달라고 요구했다. 정 씨는 산업스파이 분야를 담당해온 사람으로 역시 진급을 하지 못해 계급정년을 기다리는 처지였다. 정보기관에서는 차단의 원칙이 철저하게 적용되기에 요원들은 자기 분야가 아닌 쪽 일은 잘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정씨 역시 타 부서 일은 정확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김 씨의 부탁을 받은 그는 내부 조직을 살피다가 심리전국 요원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북한 글 출현을 막아라

 

국정원은 심리전 조직을 2급이 이끄는 단(·심리전단)으로 운영해왔다. 그런데 북한이 한국의 인터넷을 통한 대남 심리전을 강화하자 2011년 심리전국()으로 승격시켰다. 동시에 국정원은 사이버팀을 신설했다. 사이버팀이 바로 북한의 대남심리전에 대응하는 조직이었다. 국정원은 북한의 대남심리전이 국내 종북세력의 협조를 받아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파악했다.

 

정부는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국내 포털로는 우리민족끼리구국전선등 북한이 해외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에 접속하지 못하게 해놓고 있다. 그러나 해외 포털을 이용하면 접속할 수 있다. 국내의 일부 네티즌은 이런 방법으로 북한 사이트에 접속해 그곳에 있는 글을 국내 몇몇 사이트에 올려놓는다. 그러한 사이트 중의 하나가 □□□.

 

□□□에 북한 글이 올라오면 그 글을 추천하는 ()이 일어난다. 많은 추천이 이뤄지면 이 글은 □□□와 연결된 다음이나 네이버에 화제의 글 등으로 올라간다. 이것이 북한 사이트의 글이 한국 포털사이트에 올라오는 일반적인 과정이다. 사이버팀 업무 중의 하나가 그것을 막는 것이었다. □□□ 등에서 북한 글이 베스트 추천을 받지 않도록 반대 의견을 다는 것이다.

 

이 일을 그 여직원이 했다. 그런데 특정 IP에서 계속 반대하는 글을 올리면 북한의 정보기관은 그 IP를 추적해 국정원이 공작을 하고 있다고 시비를 걸 수가 있다. 그래서 국정원은 직원들에게 업무용 노트북을 집으로 갖고 가서 반대 댓글 다는 작업을 하게 했다.

 

당시는 대통령선거가 가까웠으므로 북한 사이트는 여권 후보를 비난하는 글을 많이 올렸다. 사이버팀은 이것에 반대하는 글, 다시 말해 여권 후보를 옹호하는 글을 올리게 됐다.

 

국정원 등의 주요 기관은 내부 통신망을 외부 통신망과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인터넷에 있는 국정원 사이트는 국정원 내부망과 분리돼 있기에 DDOS 공격을 퍼부어 다운시켜도, 바이러스를 집어넣어도 내부 통신망을 무력화하거나 내부 통신망에 있는 정보를 캐내지 못한다.

 

왜 업무용 노트북을?”

 

그러나 외부 인터넷과 연결된 노트북에 꽂았던 USB를 내부 통신망과 연결된 컴퓨터에 꽂을 경우, 해커들은 그 USB에 바이러스를 넣어 내부 통신망을 파괴할 수가 있다. 2011년 이란의 핵시설인 부셰르 발전소의 내부 통신망이 외부 인터넷과 연결됐다가 오염된 USB를 꽂는 바람에 바이러스 공격을 받아 다운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국정원에서는 아무나 업무용 노트북과 USB를 갖고 나가지 못한다.

 

그러나 댓글을 다는 사이버팀은 노트북을 갖고 나가 일하게 했다. 그리고 사이버팀엔 정보통신 분야에 정통한 직원만 배치해왔다. 선배의 부탁을 받은 정 씨는 사이버팀이 업무용 노트북을 갖고 나가 외부에서 정치행위를 하고 있다고 봤다. 그리고 외부에서 작업을 하니 그 정치 개입 행위를 포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는 사이버팀 요원 가운데 5명을 주시하다 여직원을 최종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이 여직원의 본가는 서울 도봉구에 있다. 도봉구에서 강남구 내곡동의 국정원까지 출퇴근하기가 힘들어 역삼동의 오피스텔에 거주했다. 정 씨가 여직원이 오피스텔에서 혼자 사는 것까지 알고 그를 대상으로 꼽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정 씨는 국정원에 의해 정치 관여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됐고,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 여주지청장)5월 중순 정 씨를 소환해 조사하고 있다.

 

18대 대선이 임박한 어느 날 정 씨는 여직원이 차를 몰고 퇴근하자 그 뒤를 따랐다. 국정원은 보안을 위해 도처에 CCTV를 설치해 놓았다. 그리고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직원들이 누구와 휴대전화로 통화하는지 추적한다. 국정원법 3조는 국정원에 대한 보안과 국정원 직원의 직무와 관련된 범죄 수사는 국정원이 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통신보호비밀법에 따라 통화 내용을 감청하지는 않는다. 감청은 직원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다.

 

그날 국정원의 CCTV엔 퇴근하는 여직원의 차를 뒤따라가는 정 씨의 차가 선명하게 찍혔다. 정 씨가 휴대전화로 김 씨에게 전화를 건 사실도 확인됐다. 국정원 청사 밖에서는 김 씨가 차를 타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 차도 CCTV에 찍혔다. 여직원의 차가 국정원 청사를 나온 다음부터는 김씨가 그 뒤를 쫓은 것이 그후 국정원 조사에서 확인됐다. 김 씨는 여직원의 수상한 행태를 민주당에 제보했다.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터져 나온 당일인 지난해 1212일 민주당 박영선 공동선대본부장은 평화방송 인터뷰에서 저희 당에 제보된 게 며칠 전이어서 일주일 정도 그 오피스텔에서 잠복근무를 했다” “여직원은 아침에 국정원에 출근했다가 오피스텔로 돌아와 그 일을 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국정원의 한 간부는 그날 정 씨가 김 씨에게 여직원 차량의 차종과 번호를 휴대전화로 알려줘 김씨가 미행해 오피스텔을 확인한 것이 수사과정에서 밝혀졌다고 말했다. 국정원법 3조는 국정원 직원에 대한 수사는 국정원이 하도록 돼있으니 정씨에 대한 국정원의 수사는 적법하다.

 

민주당에 국정원 문서 전달

 

민주당은 이 오피스텔을 여직원을 비롯한 국정원 대선팀이 비밀리에 사용하는 사무실로 본 듯하다. 그러나 잠복은 했어도 여직원이 몇 호에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리고 문제의 1212일 여직원이 오피스텔로 퇴근하자 민주당 관계자 70여 명이 이 오피스텔로 몰려가 고의로 여직원 차량과 접촉사고를 낸 뒤 여직원을 내려오게 해 호수를 알아냈다.

 

사건이 불거진 후 국정원은 이 호실을 공개해 국정원 대선팀이 외부에서 정치공작을 한 아지트가 아니라 여직원 거주지임을 밝혔다. 여직원이 갖고 다니던 노트북도 수서경찰서에 제출했다. 그러나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여직원이 정치 관여를 했다고 보고 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사건이 일파만파로 확대되자 국정원도 즉각 조사에 착수했다. 민주당에 여직원 오피스텔을 제보한 사람이 김 씨라는 것이 금방 포착됐기에 김씨와 통화한 사람들을 추적해 정 씨를 용의선상에 올렸다. 그리고 정씨 차량이 여직원 차를 뒤따라가는 장면이 찍힌 CCTV 화면도 찾아냈다. 한 순간에 정씨는 국정원법을 어긴 배신자가 된 것이다.

 

국정원은 그의 파면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징계위원회를 준비했는데, 그 직전에 정씨가 국정원 문건을 유출했다. 국정원의 내부 통신망에는 원장이 부서장회의에서 한 말을 직원들에게 알려주는 원장 지시사항이라는 문건이 떠 있다. 이 문건을 보거나 출력하려면 자신의 ID를 입력해야 한다. 징계위원회를 앞둔 시점에서 정씨는 자신의 ID를 입력하고 이 문건을 인쇄했다. 그리고 그가 파면된 뒤인 올해 318일 민주당의 진선미 의원이 이 문건을 공개했다.

 

이 문건 중에는 젊은 층 우군화 심리전이라는 것이 있었다. “세종시 반대하는 좌파단체에는 정공법으로 대응해야” “우리 원이 앞장서서 대통령님과 정부 정책(4대강 사업을 지칭)의 진의를 적극 홍보하고 뒷받침해야 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것도 있었다. 19대 총선 직후 만들어진 문서에는 선거 결과 다수의 종북 인물이 국회에 진출함으로써 국가정체성 흔들기가 예상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진 의원은 이 문건을 원세훈 당시 원장이 정치에 관여한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파면이 확실시되자 정씨가 국정원법과 국정원직원법을 어기며 내부 정보를 빼내는 보안 누설과 정치 관여를 한 것으로 본다. 이 문건은 정 씨의 ID를 넣고 출력한 것이기에 국정원은 그와 김 씨를 국정원법과 국정원직원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민간인으로 두 사람 사이에 매개자 역할을 한 장 모씨도 고발).

 

이 사건도 권은희 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이 송치한 여직원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에 배당됐다. 특별수사팀은 민주당이 고발한 국정원 여직원의 정치 관여와 국정원이 고발한 전·현직 직원의 보안 누설과 정치 관여 사건을 함께 수사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여직원 사건 이면에 깔려 있는 국정원 직원의 또다른 정치 관여 사건이다.

 

정치 격변기마다 몸살

 

·현직 직원의 보안 누설과 정치 관여 사건은 두 사람이 의지를 갖고 정치에 관여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국정원이 수많은 선서와 의식, 법조문으로 보안을 강조해도 한쪽으로 기운 직원의 정치적 선택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면 국정원은 헤어 나오기 힘든 정치 소용돌이에 말려든다. 덩달아 해외공작과 대북공작, 대공수사를 해야 하는 팀들도 태풍에 말려들까봐 업무를 느슨하게 하는 태업(怠業)에 들어간다.

 

국정원은 이러한 소동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겪고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를 놓고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격돌했을 때 박 후보에게 불리한 내용이 담긴 국정원 문서가 유출됐다. ID 추적 등을 근거로 문서 유출자가 국정원 직원 P씨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 후보가 박 후보를 제치고 한나라당 후보로 확정되고, 이어 17대 대통령선거에서도 이기자 사건 조사를 하지 않았다. 덕분에 P씨는 국정원을 안전하게 퇴직하고 모 기관의 임원을 지냈다.

 

더 큰 격변은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바뀐 시절에 일어났다. 김대중 후보가 당선된 15대 대통령선거가 있기 전, ‘흑금성이라는 별칭을 가진 국정원 에이전트 박채서 씨가 정동영 국민회의 의원 등을 만나 정보를 제공했다.

 

김대중 후보가 당선된 다음 국정원에서 피바람 부는 청산작업이 일어날 것 같자, 이대성 당시 해외공작실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 야당(국민회의) 관계자가 제3국에서 허가 없이 북한인을 접촉한 자료를 만들어 정대철 의원 등 DJ 세력에 제공하며 자신들의 선처를 요구하다 실패한 사건이 있었다.

 

이대성 실장팀이 작성한 이 문건은 언론에 공개됐는데, 여기에 안기부가 주도한 대북공작도 실려 있어 흑금성 공작이 만천하에 폭로됐다. 그리고 권영해 당시 안기부장이 김대중 후보 당선을 막기 위해 아말렉 공작-오대산 공작 등을 했다는 것도 밝혀져, 권 부장 등이 구속되는 북풍(北風)사건이 일어났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가 여당 후보(이회창)의 당선을 돕기 위해 북한에 판문점에서 총격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예단하고, 관련자들을 조사하는 총풍(銃風)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근거 없는 예단이었다. 그런데도 안기부의 과잉 충성파들은 증거를 잡기 위해 용의자로 지목한 장석중 씨를 구타하는 등 고문을 했다.

 

장석중 씨를 통한 총풍 사건 구성이 실패하자 또 다른 충성파들은 중국 선양(瀋陽)에 나와 있는 북한인 최인수를 납치해 총풍 사건을 파악하려고 했다. 그러나 최인수도 충성파가 기대한 총풍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었다. 그러다 안가 관리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최인수가 안가를 탈출한 다음 모 신문사로 가 서울로 납치된 과정과 납치 후 고문당한 것을 털어놓았다.

 

이 신문사가 최 씨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안기부에 문의하자 안기부는 그제서야 최 씨가 사라진 것을 알고 그를 데려갔다. 안기부는 이종찬 당시 부장을 비롯한 모든 간부가 나서서 대북공작을 하다 실수로 데려온 북한인을 놓쳤다. 배려해주기 바란다라고 호소해, 이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고 넘어갔다.

 

국정원은 정권 교체뿐만 아니라 원장이 교체될 때에도 바람을 탄다. 계급정년 등에 걸려 퇴직이 확정된 직원은 퇴직 1년 전에 공로연수에 들어가는데, 원장이 바뀌면 공로연수를 하던 이가 요직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었다.

 

남재준 신임 원장도 공로연수 중인 이를 요직으로 롤백시켰다. 공로연수에 들어간 이들 중에는 능력이 뛰어난데도 견제를 받은 억울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를 살려내면 직원들은 정치권 또는 원장과 눈이 맞으면 기사회생할 수 있다고, 보고 정치권 등 외부와 선을 대기 위해 애를 쓰게 된다.

 

이런 일에는 업무상 정치권과 접촉이 잦은 직원들이 유리하다. 그들이 일신영달을 위해 정치권에 눈 맞추기를 하면 국정원의 비밀은 줄줄이 정치권으로 넘어간다. 국정원의 정치 시녀화 현상이 급물살을 탄다.

 

악순환을 끊어 낼 수 있을까

 

국정원이 본연의 임무를 잊고 노골적으로 정치에 종속된 때가 DJ-노무현 대통령 시절이었다. 당시 국정원은 북한과 대화하는 데 주력했다. ‘국정원의 통일부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로 인해 안보의식이 무너지는 등 해가 심각했다.

 

국정원은 정치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국정원다워야 한다. 남재준 원장은 국정원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정보가 거듭해서, 그리고 자발적으로 정치에 예속되는 악순환을 남재준 신임 원장은 끊어낼 수 있을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