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장례식장 앞 조화(弔花), 심한 낭비 아닐까?

풍월 사선암 2013. 6. 11. 11:40

장례식장 앞 조화(弔花), 심한 낭비 아닐까?

 

[삶 그리고 지혜] 박완규 아쉬운 장례문화

박완규 글꾼(pyk) 

 

벌써 여름인가. 한낮 햇볕이 따갑다. 여름이 성큼 가까워졌다. 그래도 아직 봄인데 봄이 저만치 가고 있다. ! 사람도 계절도 가는 것은 붙잡을 수 없는 법. 어제는 오랜만에 산에 올라 땀을 흘렸다. 하늘이 얼마나 맑고 곱던지.

 

지금은 봄이라 할 수도 없고 여름이라 할 수도 없는 시기다. 담장가의 장미도 성큼 피었다. 성질 급한 아이들이 수영을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환절기다. 환절기가 되니 부쩍 많아진 소식이 있다. 그 중 하나. 문상 갈 일이 늘었다.

 

요즘 문자 메시지가 부쩍 많다. 카톡으로도 온다. 조사(弔事)를 알리는 내용이다. 부친상, 모친상, 장인상, 장모상. 인체는 기온 변화에 아주 민감하다. 환절기에는 젊은(?) 우리도 이렇게 힘든데 어르신들은 더할 수밖에.

 

사람의 인생에는 4대 예식이 있다. 바로 관혼상제(冠婚喪祭)이다. ()이란 관례, 즉 지금의 성인식에 해당되고, ()은 말할 것도 없이 혼례의 의식, ()은 장례, 그리고 제()는 조상의 제사를 말한다. 이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혼례와 장례다. 이런 때에 의리를 지키지 않으면 인간관계에 금이 간다. 특히 장례는 사람이 일생을 마치는 작별의 의식이기 때문에 우리가 결코 빠져서는 안 된다.

 

요즘은 사흘에 한 번 정도 조문을 다녀오는 것 같다. 만남의 폭이 넓어지다 보니 늘어나는 것이 사람이다. 그래서 그분들을 챙기듯 그분들의 애경사까지도 챙겨야 할 것이 많다. 엊그제는 하루에 두 곳의 장례식장을 방문해 조문을 하기도 했다.

 

나에게 부고를 알리는 분들은 대부분 내가 주최한 행사에 한사코 오셔서 내 등을 두드려 주시며 나를 격려해 주신 분들이다. 그래서 이분들이 나를 부를 때 내가 이를 외면할 수가 없다. 서로 그렇게 하자고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아주 크게 신세를 진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엊그제 내 출판기념식에 오지를 않았다. 친구 모임과 겹쳐서 오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차라리 그 말을 나에게 하지나 말지.

 

그 말을 듣고 조금 서운했다. 나도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아는데. 그는 앞으로도 분명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무엇인가를 또 부탁해 올 것이다. 그런데 과거처럼 내가 열과 성의를 다할 것인지는 고민이다. 그것이 인간관계다. ! 이 말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닌데.

 

장례식이라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슬픔의 의식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참석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런 기본적인 것을 하지 않으면 인간관계는 쉽게 금이 간다. 성경에도 있잖은가. 어리석은 사람은 기쁨이 있는 곳을 즐겨 찾지만, 현명한 사람은 오히려 초상집을 찾아간다고.

 

그런데 요즘은 조문을 가도 너무나 형식적이고 비인간적일 때가 많다. 대부분 우리는 장례식장에 얼굴을 보여주고 가급적 오래 머무르려고 하지 않는다. 상주 얼굴 한번 보고, 절 두 번 하고, 육개장 한 그릇 먹는 것이 전부다.

 

과거처럼 술을 마시거나 밤을 새는 사람도 드물다. 발인이나 장지에까지 함께 동행하는 일도 거의 없다. 대형장례식장의 의례와 문화도 많이 변했다. 그것이 언뜻 보기에는 아주 합리적인 듯하지만 아주 피상적이고 획일적이다. 그리고 돈에 의해 지배된다.

 

과거처럼 상주의 친구들이나 친인척들이 장례를 돕는 경우도 없다. 상조회사의 발달이 죽음에 관한 모든 일을 서비스화 하고 용역화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주나 조객이나 별로 할 일이 없다.

 

하긴, 모두 바쁜데 누가 누구를 돕겠나. 이러한 장례문화의 변화는 이제 돌이킬 수 없어 보인다. 그 까닭은 앞으로 우리는 지금보다 더 바빠질 것이고, 모든 장례의례는 지금보다 더 간단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문화도 더 용역화되고 서비스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장례식장에서 고스톱을 치는 사람도 없다.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들뿐이다. ! 오늘도 나는 장례식장 두 곳을 다녀와야 한다.

 

아주 친한 사람이라면 그곳에 머물며 고스톱이라도 쳐주고 싶은데 그럴 입장도 아니다. 오늘도 상주 얼굴 한번 보고, 절 두 번 하고, 육개장 한 그릇 먹는 것이 전부인 문상이기 때문이다. 그저 마음속으로라도 고인의 명복을 비는 수밖에 없다.

 

! 그리고, 내가 만약에 국회의원이라면 법으로 강제를 해서라도 꼭 바꾸고 싶은 장례문화 하나 있다. 바로 장례식장 앞에 버티고 있는 수십 개의 조화(弔花)들이다. 장례식장을 다닐 때마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세상에 이것처럼 심한 낭비가 또 있을까 싶다. 정 허전하면 입구에 두 개 정도면 딱 좋을듯 하다.

 

*박완규 님은 <동부매일>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