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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치고 싶어 죽겠다” 유언 남긴 부친은 ‘마니아’

풍월 사선암 2013. 5. 20. 07:35

 

“골프란”

 

01. 골프는 90% 심리게임이고, 나머지 10%도 심리게임이다 

02. 잘 맞을 때는 엄청나게 잘 맞는다. 안 맞을 때는 어떤 이유에서든 계속 안 맞는다.

03. 아무리 플레이가 엉망이어도 앞으로 더 엉망으로 플레이 할 수 있다.

04. ‘이건 아니다라고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당신이 올바르게 하고 있는 것일 거다.

05. 어제 통했던 것은 오늘 통하지 않는다. 내일도 통하지 않는다.

06. 완벽한 플레이는 접대상 져 줄 때 나온다.

 

07. 해저드는 볼을 끌어당긴다. 페어웨이는 튕겨내며 나무들은 감싸 안는다.

08. 내가 완벽하게 샷을 하면 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허공이나 뒤땅을 치면 모든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

09. 드라이버 샷이 좋으면 퍼팅이 망가진다.

10. 두 개의 클럽 사이를 고민할 때, 그것은 항상 다른 클럽이 정답이 되기 쉽다.

11. 게임을 망치고 비싼 돈 주고 새로 드라이버를 구입했는데 그다음 주에 보면 50% 할인된 가격표가 붙어 있다.

12. 내가 정말 잘 친 드라이버 샷은 종종 남의 페어웨이로 간다.

13. 볼은 잘못된 방향으로 쳤을 때 항상 더 멀리 날아간다.

 

 

나의 골프 이야기

 

골프치고 싶어 죽겠다유언 남긴 부친은 마니아

2때 입문 베스트 5언더고교땐 국가상비군도

 

이상현 한국캘러웨이골프 대표가 1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캘러웨이골프 사옥에 마련된 퍼포먼스 센터에서 스윙 점검을 하고 있다.

 

이상현 한국캘러웨이골프 대표

 

이상현(48) 한국캘러웨이골프 대표는 스스로 뼛속까지 골프인자가 새겨진 영원한 골프마니아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골프를 사랑했던 부친 덕에 일찌감치 골프를 배웠고, 국가대표 골프 선수를 거쳐 지금은 세계 최고의 골프클럽메이커 캘러웨이골프의 한국법인 대표이사를 10년째 맡아오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때인 1981년부터 골프를 시작했으니 올해로 32년째가 된다. 서울 동대부중 때 부친이 골프를 워낙 좋아했던 터라 자연스레 배웠다. 그의 부친은 못 말리는 골프광이었다. 신장 투석기를 멘 채로 골프장에 나갈 정도였다. 미국으로 이민 갔던 그의 부친은 의사가 제발 골프 좀 그만 치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골프장에 갔다가 ‘911구급차4차례나 실려 가기도 했다.

 

그의 부친은 핸디캡 6인 싱글플레이어로 홀인원도 4차례나 기록했다. 미국 뉴욕에 살던 부친이 위독하다고 찾아갔던 그에게 부친은 병상 옆에 둔 퍼터를 가리키며 골프 치고 싶어 죽겠다는 말을 남기고 운명했다. 2001911, 미국을 패닉에 빠트린 9·11테러가 일어난 날이었다. 그는 장례식 때 부친에게 20년을 함께 한 퍼터를 묻으며 하늘나라에서도 골프를 마음껏 치시라고 빌었다.

 

사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가 골프 치러 가는 날이면 무작정 따라나섰다. 어른들이 치면 뒤에서 혼자 아이언을 들고 쫓아다녔다. 골프에 대한 자질이 남달랐던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1986년 아시안게임에 대비한 국가대표 상비군에 선발됐을 만큼 실력이 출중했다. 훗날 프로골퍼가 된 한영근, 이용희, 오진근 등과 골프 꿈나무로 선발됐던 것.

 

그러나 그의 부친은 사업이 급격히 어려워지면서 설상가상으로 심장병까지 도져 몇 차례 수술을 했다. 3 때 집안 사정이 안 좋아 골프선수를 포기하고 이모가 살고 있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아버지는 거동이 힘들었고, 형들은 20세가 넘어 미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때부터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가장노릇을 했다.

 

모친과 함께 뉴욕에 정착한 그는 한국인이 운영하던 워싱턴 골프라는 골프용품 판매장에 입사했다. 대걸레질부터 허드렛일로 시작한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19871년 만에 세일즈맨으로 승진했다. 이때 학업도 병행했다. 입사 3년 만에 본사로 스카우트됐고, 4년도 채 안 돼 한국 지사장까지 승승장구했다. 1993년부터 워싱턴골프가 직접 캘러웨이 한국 총판을 맡으면서 지사장이 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미국 캘러웨이에서 직영 체제로 바꾸면서 그는 대표까지 올랐다. 처음 24억 원이던 매출액이 1998524억 원으로 25배나 매출을 키웠다.

 

그의 골프경력은 화려하다. 경기 용인의 화산골프장 클럽챔피언까지 지냈던 그는 특히 캘러웨이와 메릴린치가 매년 주관하는 페블비치프로암대회에서 5차례나 아마부문 우승컵을 차지하기도 했다. 매년 11400500명이 출전하는 이 대회는 3일 동안 프로암을 거치는 경기로 PGA투어 시니어투어, LPGA프로와 함께 친다. 그는 베스트스코어인 5언더파 67타를 6차례나 기록했다. 그래서 그는 이메일 주소도 ‘record 67’로 시작한다. 1989US오픈이 열렸던 미국 뉴욕 베스페이지골프장에서 930타를 친 적 있다. 지금 그의 전화번호 끝번호 네 자리는 ‘6898’. 자신은 68타를 치는 사람이나 98타를 치는 사람과도 늘 즐겁게 골프를 친다는 의미에서다. 최근 베스트 스코어는 지난해 경기 광주의 이스트밸리 챔피언 티에서 68타를 쳤다. 그는 이 골프장 서코스 7번홀(5)에서 이글만 5차례 뽑아냈다. 그는 이 홀에서 드라이버치고 4번 아이언 치면 그린을 훌쩍 넘어갈 정도로 장타자다. 그의 비거리는 270m, 4번 아이언으로 210m 정도 보낸다.

 

홀인원은 골프 시작 첫해에 딱 한 차례뿐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로얄골프장(현 레이크우드골프장)에서 5번 아이언으로 친 게 그대로 홀로 들어갔다. 너무 기뻐 소리 지르고 날뛰자 앞 팀에서 플레이하던 부친이 그에게로 다가와 나무랐다. 부친은 일행들 앞에서 요란스럽게 떠들면 골프장에 나무 심어줘야 한단 말이야!”하면서 조용히 하라고 말했던 것.

 

그는 이처럼 엄청난 골프기록을 갖고 있지만 아직도 내일 골프 치러 간다면 마음부터 설렌다고 한다. 그는 골프채를 연례행사로 바꾸는 성격 급한 골퍼가 많은 한국은 골프채 팔기 아주 좋은 시장이라면서도 골프채를 자주 바꾸기보다는 스윙을 교정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스윙을 바꾸려면 시간과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골프채를 선택하면 이런 노력을 어느정도 생략해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그는 좋은 골프채를 고르는 팁(tip)으로 자신의 스윙 스피드를 반드시 체크해 알아둘 것을 권했다. 그런 다음 맞는 샤프트 강도를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른바 헤드의 무게로 치는 스윙 타입이라면 다소 무거운 채를 사용하고, 그립의 경우 손보다 작으면 너무 꽉 잡게 돼 잘못된 샷의 원인이 되므로 두꺼운 느낌이 드는 그립이 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덧붙였다.

 

문화일보  20130516() 최명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