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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시차를 둔 부녀대통령의 미국방문 `격세지감`

풍월 사선암 2013. 5. 10. 22:58

 

반세기 시차를 둔 부녀대통령의 미국방문 `격세지감`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같은 대통령 자격이지만 반세기의 시차를 둔 부녀의 방미길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일 취임 후 첫 방미길에 올랐다. 시계추를 52년전으로 돌려보면 아버지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때가 오버랩된다. 박 전 대통령은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자격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다. 5·16 에 성공한 지 1년 뒤였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케네디 대통령에게 경제개발을 위한 차관과 경제원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1917년생 동갑내기 JFK는 매몰차게 거절했고, 돈을 빌리기 위해 독일로 쓸쓸히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게다가 민선 대통령이 아닌 그는 정통성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케네디 대통령에게 환대조차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케네디와 마주 앉아 검정 선글라스를 끼고 담배를 피우던 박 전 대통령의 당당한 모습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52년이 지난 후, 딸인 박 대통령은 같은 장소에서 오는 7(현지시간) ‘블랙 케네디라 불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진다.

 

현격히 달라진 한국의 위상 때문일까. 딸인 박 대통령의 첫 방미는 당시 아버지가 겪었던 설움을 단번에 씻어낼 정도로 규모와 성격 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아버지는 국빈 자격이었지만 딸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의 국가원수로서 당당히 미국 땅을 밟는다. 또 정통성이나 자질을 지적받지도 지원을 요청하는 입장이 아닌 포괄적 전략 동맹국의 최고지도자 자격으로 동등한 위치에서 미국 정상을 마주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양국 정상은 한·FTA 등 경제통상협력 증진 등 파트너십 강화를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은 물론, 한미동맹 60주년을 기념하는 공동선언을 채택함으로써 동반자적 관계도 재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미 수행길의 분위기도 확 달라졌다. 52년전 박 전 대통령에겐 전용기조차 없었다. 일본까지는 대한항공의 전신인 KNA 전세기를 이용했으며 일본에선 미국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기를 타야 했다. 1965년 방미 시에는 존슨 미 대통령이 보내준 보잉 707기를 이용하기도 했다. 수행단 규모도 유양수 국가재건최고회의 외교국방위원장을 비롯해 15명에 불과했다.

 

반면 딸 박 대통령은 전용기를 타고 미국 순방길에 오르는 것은 물론, 200명이 넘는 수행단과 함께 한다. 특히 삼성·현대차·LG 등 글로벌 대기업 총수를 비롯한 52명의 경제사절단이 역대 사상 최대규모로 동행해 GM과 퀄컴, 보잉 등 미국 경제계 거물들과 만난다.

 

여기에 박 대통령은 국빈방문이 아닌공식실무방문임에도 미국 의회 초청을 받아 이례적으로 상·하원 합동회의 연단에 선다. 미국 기자협회, 외교협회, 아시아협회에서 연설했던 아버지와는 격이 다르다.

 

한국 출신 국제기구 수장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의 면담 등 아버지 때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정들은 달라진 국격을 실감케 한다.

 

 

아버지는 차관 퇴짜 딸은 미국에 투자국 대통령으로

 

부녀 대통령, 52년의 격세지감

 

6일 오전 8(한국시간). 미국 뉴욕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동포간담회장에 박근혜 대통령이 들어섰다. 붉은색 옷고름을 단 미색 한복 차림이었다.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방문에 이어 52년의 시차를 두고 그의 딸 박 대통령이 교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450여 명의 교민들은 일제히 일어나 박수로 박 대통령을 맞이했다. 이어 박 대통령의 격려사가 시작됐지만 기립박수가 이어지는 바람에 박 대통령이 앉으십시오라며 좌중을 정리하고 나서야 행사가 진행될 수 있었다.

 

박 대통령은 동포 여러분을 만나 뵐 때면 고맙고 자랑스러우면서도 애틋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고 인사말을 했다. 이어 지난 3·1절에 뉴욕 한복판 타임스스퀘어에서 독도 광고가 방영됐고, 작년 말엔 뉴욕주 하원선거에서 한인 역사상 최초로 김태석 의원이 당선되는 경사도 있었다대한민국이 동포 여러분의 자랑이듯 동포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는 것 때문에 걱정이 클 것이지만 걱정하지 말라빈틈없는 안보 태세를 유지하고 미국·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공조를 강화하면서 단호하고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채권에 대한 외국인들의 순매수도 계속되고 있다우리 경제가 북한의 위협 정도로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세계가 알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격려사가 이어지는 동안 15차례의 박수가 나왔다. 맺음말 뒤에도 한동안 기립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이날 간담회에는 성공한 한인들이 총출동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와 뉴저지 통합한국학교 중창단의 환영 음악공연도 이어졌다. 민승기 뉴욕한인회장은 환영사를 통해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에게 투표를 했던 유권자가 함께하는 자리라 의미가 더 크다지속적인 경제발전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숨겨진 민생의 어려움은 어머니의 심정으로 조국을 이끌어달라고 당부했다. 강병목 전 뉴욕한인경제인협회장은 동포 경제인들과 모국 중소기업 간에 경제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지원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국 언론들도 박 대통령의 방문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경제사절단에 삼성·LG 등 재계 거물이 포함된 사실을 집중 조명했다. USA투데이는 박 대통령을 대한민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라고 소개하며 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은 첫 대면에서 양국 공조 강화뿐 아니라 북한과 조건부 대화를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박 대통령의 방미는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의 방미 때와 여러 가지로 대조적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1961년 방미 당시 김포공항에서 KNA(대한항공의 전신) 특별기로 일본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전용기나 전세기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는 하네다 공항에서 미국 노스웨스트항공을 타고 앵커리지에 내려 다시 시애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시애틀에서 또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시카고를 경유하고서야 워싱턴에 도착했다. 꼬박 사흘이 걸렸다. 박 전 대통령은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에게 베트남 파병을 제안하면서 한국처럼 자립 의지가 있는 국가에 차관을 제공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1917년생 동갑내기 케네디 전 대통령은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박 전 대통령은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고, 그들의 임금을 담보로 한 15000만 마르크의 차관을 얻어냈다. 반세기 만에 세계에서 가장 못살던 차관국투자국으로 발전한 데는 이 돈이 초석이 됐다.

 

52년이 지나 박 대통령은 전세기 편으로 13시간30분 만에 뉴욕에 도착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 구본무 LG 회장 등 52명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경제사절단도 동반했다. 뉴욕 경찰은 박 대통령이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숙소인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 이르는 동안 헬기 경호와 뉴욕 시내 교통통제까지 실시했다.

 

반기문 사무총장 면담=박 대통령은 6일 오전(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를 방문해 반 총장과 면담을 하고 한반도 문제와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박 대통령이 2009년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지원을 위한 특사로서 유럽에서 반 총장을 면담한 이래 3년 반 만이다.

 

[중앙일보]입력 2013.05.07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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