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여전히 서러운 다문화 자녀들

풍월 사선암 2013. 5. 8. 07:03

[여전히 서러운 다문화 자녀들]<>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 

 

필리핀 엄마알려진 날내 이름은 ! 다문화로 바뀌었다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김우림(가명·13) . 최근 초등학교 같은 반 친구들에게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다. ‘리틀 싸이황민우 군이 다문화가정 어린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이버 공격을 받은 직후의 일이었다. 김 군의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리틀 싸이 설레발치는 거 정말 꼴도 보기 싫어. 너도 다문화라며? 눈앞에서 꺼져.”

 

김 군은 갑자기 돌변한 친구들의 태도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전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요? 친구를 잃은 일도 슬프지만 저는 진짜 조국이 없는 것 같아 더 슬퍼요.” 울먹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2008년 다문화가족지원법 제정 이후 다문화 지원 정책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다문화가정에 대한 차별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사회적 차별을 경험한 다문화가족 비율은 200936.4%에서 지난해 41.3%로 늘었다.

 

다문화라는 말 자체가 주홍글씨

 

어머니가 베트남 출신인 지영아(가명·11) 양은 리틀 싸이가 주목을 받은 뒤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부모에게 두 나라의 문화를 배운 다문화가정 아이가 더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다는 담임선생님의 말도 믿게 됐다.

 

하지만 어머니가 베트남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황 군이 악성 댓글에 시달리자 자신감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지 양은 잠시나마 리틀 싸이를 보며 자신감을 얻었는데. 역시 나 같은 다문화가정 애는 안 되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힘없이 말했다.

 

다문화가정 어린이는 다문화라는 말이 정책용어가 되면서 차별이 더 심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이전까지 친하게 지내다가 다문화라는 주홍글씨가 찍히는 순간, 이름 대신 ! 다문화라는 말을 들을 때가 많았다. 어머니가 베트남 출신인 정희슬(가명·16) 양도 왜 베트남 말을 못하냐는 말이 가장 싫어요. 한국에서 태어났고 안 배워서 모른다고 답하면 친구들은 영어와 베트남 말도 못하면서 무슨 다문화냐고 되물어요라며 속상해했다.

 

다문화 국회의원 1호인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아들이 초등학교를 다니던 2005년 무렵에는 다른 학생과 차이가 없었는데 다문화라는 말이 생기면서 다문화 학생이 됐다면서 다문화 정책이 본격화된 뒤 구분 짓기가 심해졌다고 진단했다.

 

다문화 구분하는 프로그램 지양해야

 

다문화가족지원법 제정 이후 잇따른 지원정책이 오히려 다문화가정 어린이를 위축시키는 역설적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다문화 방과후활동, 다문화 책 지원사업 등 다문화가정 어린이만 따로 모아서 진행하는 행사가 구분 짓기를 심화하고 이는 보이지 않는 차별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필리핀이 고향인 메리 제인 씨는 아들이 다문화가정 문화지원 프로그램으로 경복궁을 두 번이나 갔다 왔다이미 경복궁에 다녀온 학생이 많을 텐데 예산 낭비다. 다문화가정 어린이는 이런 행사를 오히려 불편해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의 고선주 원장은 학교에 다문화 전문가가 없는 상황에서 예산을 쓰기 위해 다문화가정 어린이만 따로 모아 행사를 진행하다가 상처를 주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런 학생만 따로 모으지 않고 다른 학생과 함께 어울려 지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적 지원도 한부모가정이나 조손가정 같은 취약계층 지원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자스민 의원은 다문화만 따로 떼어내 지원하면 다문화가정=저소득층이라는 인식을 고착화시킨다. 다문화가정 어린이를 똑같은 기준으로 대우하고 지원해야 더 효율적이다고 주문했다.

 

완득이마이 리틀 히어로같은 영화가 다문화가정 어린이의 상처를 더 키우는 부작용 역시 고칠 부분이다. 다문화가정 어린이를 피부가 검고 가난한 모습으로 천편일률적으로 묘사해 편견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 딸을 키우는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하잉 씨는 영화 속 주인공은 항상 못난 모습으로 나오니까 마음이 씁쓸했다. 한국 어린이들이 이걸 보고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될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여전히 서러운 다문화 자녀들]<> 인종차별 방지 장치가 없다

 

인종차별금지법 없는 한국비하 욕설도 벌금 100만원

 

◀다문화 어린이들 정보통신기술 신기해요” ‘리틀 싸이황민우 군에 대한 온라인 악플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숨어있는 인종차별적 시각을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6SK텔레콤 초청으로 서울 중구 을지로 정보통신기술 체험관 티움을 방문한 지구촌 학교의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이 정보통신기술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최근 누리꾼 10여 명으로부터 사이버테러를 당한 리틀 싸이황민우 군(8).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에 등장했다가 유명해진 뒤 신곡 젠틀맨의 패러디 뮤직비디오까지 찍어 큰 관심을 모았지만 정작 황 군은 악플 탓에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잡종’ ‘뿌리부터 쓰레기라는 댓글이 올라왔다는 걸 알고는 의기소침해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2학년생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이다. 황 군의 소속사는 8, 9일경 서울 강남경찰서에 악플을 올린 누리꾼들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할 예정이다.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없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려는 것이다.

 

다문화 인구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현행법은 이들의 인격권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인종차별금지법이 없는 현행법 체계에서 황 군을 향해 악플을 날린 누리꾼에게는 모욕죄 정도만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모욕죄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당사자에게 모욕감을 줬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명예훼손보다 처벌이 가볍다. 게다가 피해자가 직접 고소해야 성립하는 친고죄다. 국내에선 동남아시아인이나 중국동포(조선족) 등의 외국인 노동자가 인종차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고소했다가 일자리마저 잃을 것을 우려해 법에 호소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내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에 대한 기소는 2009년 처음 이뤄졌다. 인도에서 온 보노짓 후세인 성공회대 연구교수(31)20097월 버스 안에서 한국인 친구와 대화를 하다 30대 회사원에게서 시끄러워, 더러운 ××! 너 어디서 왔어?” “냄새나는 ××, 너 아랍에서 왔어?”라는 욕설을 들었다. 후세인 교수는 그 회사원을 경찰에 고소했고 회사원은 모욕죄로 약식 기소돼 벌금 100만 원 형을 받았다. 이후에는 인종차별이 모욕죄로 처벌된 사례가 거의 없다. 황 군이 당한 경우처럼 미성숙한 사회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공공연히 인종차별적 언행을 자행하고 있지만 법은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우리보다 일찍 다문화사회가 정착된 선진국에선 인종차별을 엄격히 처벌한다. 영국인 선원 윌리엄 블라이싱(41)은 지난해 10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퀸스파크레인저스(QPR)와 에버턴의 경기를 관람하면서 박지성에게 칭크(chink·‘찢어진 눈이란 뜻으로 동양인을 비하하는 말)를 쓰러뜨려!”, 나이지리아인 빅토르 아니체베(에버턴)에겐 저 망할 검은 원숭이!”라고 소리쳤다. 이를 들은 관중 두 명이 블라이싱을 경기장 관계자에게 신고했고, 블라이싱은 유죄로 기소돼 벌금 2500파운드(426만 원)와 함께 축구장 출입을 금지당했다. 영국은 1965년 인종차별금지법을 만들었고, 2010년엔 인종 성별 장애 임금 등 각종 차별금지법을 통합한 평등법을 통해 차별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국내에선 2007년 법무부가 처음 차별금지법 제정안을 입법 예고한 이래 차별 금지를 법제화하려는 시도가 수차례 있었다. 하지만 인종뿐 아니라 성별, 장애, 나이, 종교, 사상, 성적 취향 등까지 포괄적으로 다뤄 각계의 반대에 부닥쳤다. 주로 동성애에 반발하는 종교계의 반발이 컸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외국인에 대한 인격 모독을 모욕죄만으로 처벌하기엔 법률상 문제가 많다유색인종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처벌하는 차별금지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 현실 못지않게 시민의식도 성숙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지성이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외국에서 차별받은 데 분노하면서도 정작 국내에서 뛰고 있는 흑인 선수들에게는 쉽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내는 게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소사(KIA) 리즈(LG) 바티스타(한화·이상 도미니카공화국) 등 흑인 외국인 투수가 선발 등판하는 날엔 관중석에서 오늘 선발은 검OO” “OO가 탄력이 좋다는 식으로 이들의 피부색을 조롱하는 인종차별적 발언이 터져 나온다. 인터넷에서 이들을 비하하는 글들도 쉽게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