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눈밖에 났다 기사회생…"피눈물 나더라"
[백지신탁 걸림돌에 中企청장 포기…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사장 인터뷰]
"애니콜 신화도 수많은 中小 벤처인들의 땀 모인 것"
-중소기업의 비애
삼성전자가 거래 끊으며 회사 문 닫을 위기 몰려
계열사 제품 끼워 팔기에 마음에도 없는 그랜저 타
-창조 경제 하려면
대기업 제품 개발만 지원… R&D 예산정책 바꿔야
朴대통령, 中企 살리려는 단호한 결의 갖고 있다
"강자가 지배하는 정글의 법칙은 자연 질서예요.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생태계는 정글보다 못한, 그야말로 (탐욕이 판치는) 짐승들의 세계였습니다."
21일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주성엔지니어링 본사. 황철주(黃喆周) 사장은 "공정 시장 없이는 창조 경제도 없다"면서 "호랑이 새끼도 일정 기간은 (어미 호랑이로부터) 보호를 받는데, 한국의 기업 경영 환경은 불공정이 판을 치는 '약육강식'의 세계일 뿐"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황 사장을 지난 15일 초대 중소기업청장에 내정했었다. 하지만 황 사장은 공직자윤리법상의 '백지신탁'이란 걸림돌 때문에 사흘 만인 18일 자진해서 사퇴했다.
◀박근혜 정부 초대 중소기업청장으로 내정됐다가 사흘 만에 사퇴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사장이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있는 회사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연구동 건물 앞에 섰다. 그는“창조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라며“창조와 혁신을 하기엔 조직이 너무 커서, 대기업 CEO들은 창조할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 중소기업의 굴곡을 다 겪어
그는 우리나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누구보다 절실하게 체험해 온 인물이다. 1995년 맨손으로 창업한 회사는 독자 기술력으로 삼성전자에 반도체 장비를 납품하며 2001년까지 벤처계를 대표하는 회사가 됐다. 그러나 2001년 삼성전자가 '납품 비리'를 이유로 거래 관계를 단절하면서 회사는 문 닫을 위기로 몰렸다. "누가 잘하고 누가 못했는지 따지고 싶지 않아요. 당시 국세청에서 회사의 모든 서류를 가져가다시피 하며 철저히 뒤졌어요. 내가 감옥에 가지 않은 걸로 결백이 입증된 것 아닐까요?"
황 사장은 "너무 뜨다 보니 재벌들이 '머슴 주제에 너무 컸다'고 생각한 것 같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당시 거래처였던 현대전자를 방문할 땐 회사 정문 1㎞ 앞에서 차에서 내려 걸어갈 정도로 몸을 낮추려고 했어요."
당시 그는 현대차의 최고급 승용차인 그랜저를 타고 다녔다. 좋은 차를 타고 싶어서가 아니라 당시 재벌들의 관행인 '계열사 제품 끼워 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샀던 차였다.
그는 "거래처인 현대전자가 그랜저 등 현대차 10대를 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정가대로 산 뒤 직원들에게 반값에 팔았다"며 "삼성전자에선 계열사가 카드회사를 설립했다며 카드를 쓰라고 해서 그 카드만 썼다"고 말했다.
삼성의 눈 밖에 나자 회사는 지탱하기 어려웠다. 2003년 해외 반도체 업체 임원을 지낸 외국인을 사장으로 영입하고, 삼성과 관계 회복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황 사장은 "나 하나 물러나면 회사는 살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외국인 CEO도 영입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결국 회사를 팔기로 결심했었다"고 했다.
2004년 삼성전자와 일본의 DNS가 합작 설립한 한국DNS는 주성엔지니어링의 주력 제품인 CVD(화학 증착 장비)를 양산(量産)하기로 했다. 황 사장은 "2001년 삼성전자가 납품 비리 감사를 나와서 우리 회사의 모든 걸 가져갔었다"며 "당시엔 감사를 잘 받으면 다시 거래가 될 거란 생각에 받아들였었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납품 단가 후려치기 관행에 대해서도 황 사장은 "당시엔 다 그랬지만 이미 오래전 일"이라며 말을 아꼈다. 다만 그는 "오늘날의 삼성을 만든 '애니콜 신화'도 삼성의 힘으로 이룬 게 아니다"라며 "삼성이 휴대전화 사업을 접은 뒤 1990년대 말 테헤란 밸리의 수많은 벤처기업인이 휴대전화 기술을 세계 수준으로 발전시켰고, 삼성은 이들을 흡수해 애니콜을 만든 것"이라고 했다.
황 사장은 2001년 회사 매각을 위해 미국·일본·유럽 등 전 세계를 돌았다. 그는 "당시 회사 현금 보유액이 1000억원이었는데 외국 업체들이 '1달러에 팔면 사겠다'고 하더라"며 "피눈물이 났다"고 했다. 회사로 돌아온 황 사장은 제일 먼저 공장 외벽에 가로·세로 10m가 넘는 대형 태극기를 부착했다. "미국 사막을 달리다 주유소에 걸린 성조기를 보고 왠지 뭉클했던 적이 있었어요. 회사로 돌아와 직원들에게 그간의 사정을 솔직하게 얘기한 뒤 '태극기를 보며 다시 시작하자. 세계 1등 제품만 만들자'고 다짐했습니다."
◇“대기업 CEO는 창조 능력 절대 없다”
황 사장은 삼성과 청와대로 대표되는 한국의 경제·정치 권력의 최정점을 몸으로 체험한 흔치 않은 경력을 가졌다. “창조는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는 것으로 중간 간부가 아닌 최고경영자(CEO)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기업 CEO들은 창조할 능력이 절대 없어요. CEO가 직접 창조와 혁신을 하기엔 조직이 너무 거대해졌거든요.”
황 사장은 ‘창조 경제’를 위해선 “정부의 연구·개발(R&D) 정책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그간 정부의 R&D 예산은 대기업들을 위한 제품 개발에만 쓰였어요. 정부 예산은 스스로 연구·개발할 능력이 없는 농업 등의 분야에 집중돼야 해요.”
그는 또 “연구·개발 지원 단계에서부터 기술 개발뿐 아니라 제품의 글로벌 마케팅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며 “지금까지의 정책이 내수 지향적이다 보니 중소 벤처기업들은 대기업에 갖다바칠 연구에만 몰두했고, 이는 중소기업들을 대기업의 ‘머슴’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박 대통령, 중기 정책에 단호한 결의 가져”
황 사장이 중기청장이 됐다면 중소벤처기업의 신제품에 대한 정부의 인증 기간은 대폭 단축됐을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중소 벤처기업들이 신제품 인허가를 받는 동안 미국·일본·유럽 기업들은 그 제품을 먼저 시장에 내놓는다”며 “정부는 신제품을 선(先)인가한 뒤 사후적으로 문제점을 관리하는 정책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과 3년 전부터 분기에 한 번씩 만나 중소기업 정책에 대해 조언을 해온 그는 “박 대통령은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국정 운영에 대해 단호한 결의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역시 박근혜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이 성공할지는 장담하지 못했다. “대통령 혼자서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거든요. 주변에 중소기업을 잘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백지신탁(blind trust)
고위 공직에 임명된 사람은 3000만원 이상의 직무 관련 주식을 금융기관에 백지신탁하고, 수탁기관이 60일 이내에 주식을 모두 처분하도록 한 제도다. 공직자가 직위를 이용해 자기가 보유한 주식이나 채권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 입안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공직자윤리법에 규정돼 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사장이 중기청장 내정 사흘 만에 "회사를 포기할 수 없다"며 자진 사퇴한 배경이 됐다.
조선일보 최현묵 기자 / 2013.03.22 03:06
[논쟁] 주식 백지신탁 제도 개정, 어떻게 봐야 하나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가 최근 “소유한 중소기업 주식을 백지신탁할 수 없다”고 사퇴하자 행정안전부에서 “보관신탁도 가능하게 하겠다”며 관련 법 개정 의사를 밝혔다. 이를 두고 “유능한 기업인의 공직 진출을 위해 필요한 제도 개선”이란 견해와 “수없는 논의 끝에 마련된 걸 인사 실수 한 번 했다고 바꿀 수 있느냐”는 주장이 맞선다. 찬성과 반대, 두 갈래 목소리를 들어봤다.
◆ 기업인의 공직 진출 위해 고칠 필요 있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라는 말이 있다. 본래 뜻은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현명한 답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뜻으로 통한다. 흔히들 정부정책의 가장 큰 문제가 탁상행정이란 지적을 한다. 현장을 모르고 정책을 펼치다 보니 잘한다고 한 것이 오히려 중소기업을 괴롭히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 경험과 전문성을 두루 갖춘 민간인의 공직 진출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가 중소기업청장에 내정되었다는 소식에 중소기업계는 한껏 고무되었다.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생각에서다. 황 대표는 벤처 1세대로 창업의 어려움,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 기술 개발의 실패와 성공의 기쁨을 맛보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기대감은 사흘천하로 끝났다. 황 후보자가 돌연 사의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사퇴 이유는 “공직에 임명되면 보유한 주식을 백지신탁하더라도 60일 내에 모두 매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었다.
중소기업의 손톱 밑 가시를 뽑기 위해 의욕을 불태웠던 황 대표가 오히려 기업인의 공직진출을 가로막는 주식 백지신탁 제도라는 손톱 밑 가시에 발목을 잡힌 셈이 되었다.
그는 코스닥 상장회사인 주성엔지니어링 창업주로서 지분 25.45%를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다. 700억원대 회사 지분을 갑자기 매각하면 주가 폭락으로 주주들의 피해는 불 보듯 뻔하다. 무엇보다 자신이 일군 회사가 공중 분해될 수 있는 상황을 그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같은 중소기업인으로서 그의 마음이 십분 이해된다.
주식 백지신탁 제도는 공직자가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정책을 집행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공직자들이 직위를 남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것을 방지하도록 한 법의 취지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양한 경험을 쌓은 능력 있는 기업인들이 공직에 참여해 국가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현 제도에서는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국가를 위해 쓰고 싶 어도 평생 일군 회사를 영원히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8월 주식 백지신탁 제도에 대해 합헌 결정은 내렸지만, 합헌·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이 각각 4명으로 같았을 정도로 의견이 분분했다.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일률적으로 주식 매각과 백지신탁을 강제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판단이었다.
공직자윤리법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유능한 기업인들에게 공직 진출의 길을 열어줄 묘수를 찾아야 한다. 현재 공무원들은 획일적이고 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기업인은 다르다. 시시각각 변하는 경영 환경에 대응하는 민첩함을 가지고 있다. 기업인이 공직에 활발히 참여할 때 공직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창조경제의 꽃을 피울 수 있다. 또한 기업인이야말로 어느 곳에 어떤 일자리가 필요한지 가장 잘 알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창업 기업인이나 최대주주가 공직을 맡을 경우 보유 주식을 보관 신탁하도록 하고 공직에서 퇴임 시 주가 평균 상승률을 초과하는 이익을 사회 환원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하니 바람직해 보인다. “황 대표와 같은 문제로 기업인의 공직 진출이 막힌다면 대한민국 공직은 결국 공무원끼리의 리그로 전락할 것”이라는 어느 한 벤처기업 대표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이 재 광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 부실 검증 두고 제도 탓 … 부동산도 포함토록 해야
“고위 공직자의 자산백지신탁제도를 도입하고, 재산공개 제도를 강화하겠습니다. 국회의원과 차관급 이상 공직자의 부동산과 유가증권을 법률이 정하는 금융기관에 백지신탁하도록 입법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고위 공직자가 임기 내에 재산증식에 일절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9년 전인 2004년에 박근혜 대통령이 한 약속이다. 탄핵 역풍에 휘청거리던 한나라당 대표가 된 박 대통령은 ‘천막당사’ 시대를 열면서 4·15총선 직전 ‘실천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11개 항을 제시했다. 백지신탁 약속도 거기에 들어 있었는데 아쉽게도 현재로서는 주식백지신탁만 제도화된 상태다.
그런데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가 백지신탁은 곤란하다면서 사임하자 정부와 여당은 제도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얼마 전 김용준 국무총리 내정자가 사퇴했을 때 박 대통령이 청문회를 “신상털기”라고 폄훼하자 여권에서는 청문회 제도를 고친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다시 제도 탓을 하고 나섰다. 제도가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닌데도 난데없이 제도를 탓하는 정부와 여당의 모양새가 좋지 않다. 내부의 부실한 인사 검증 책임을 바깥으로 돌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공직자의 영향력을 이용한 재산 증식을 막자는 취지만 살린다면 정부가 마련하는 것으로 알려진 ‘보관신탁’도 원론적으로는 나쁘지 않다. 다만 언론에 보도된 정부안(보관신탁한 주식의 의결권 제한과 주가 이익초과분의 사회 환원 등)에는 신탁 해지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공직자윤리법(제17조)에서 퇴직 공직자 취업 제한 기간을 2년으로 한 것과 균형을 맞추자면 퇴직한 후 적어도 2년은 지난 다음에 해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제도를 고친다면 보관신탁보다 우선순위가 훨씬 앞서는 것이 있다. ‘원칙과 신뢰’를 중시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오래된 ‘실천 약속’부터 완전히 실천해야 한다는 점이다.
첫째로 실천 약속의 정신에 충실하려면 주식백지신탁의 경우에 고위 공직자의 직무관련성을 최대한 넓게 잡아야 한다. 캐나다처럼 모든 주식을 신탁 대상으로 하면 더 좋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 시가 3조원대의 현대중공업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만 직무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백지신탁을 면제받았다는데, 국회의원이나 장·차관의 영향력은 전방위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이런 결정을 납득할 수 있을까?
둘째로 부동산 백지신탁도 필요하다. 부동산 투기 의혹이 국회 인사청문회의 단골손님이라는 사실을 보더라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실수요 이외의 목적으로 보유하는 부동산을 백지신탁하되, 매입 가격의 원리금과 신탁 시점의 시가 중 적은 금액을 신탁가액으로 간주하고 해지 시점에 신탁가액에 이자를 붙여 돌려주는 방식이다. 청문회 후보자들은 한결같이 재산 증식 목적이 아니었다고 하므로 이렇게 해도 전혀 억울하지 않을 것이다. 또 후보자가 이 방식을 흔쾌히 수용한다면 국민도 위장전입 등 부동산 거래와 관련한 위법성이 없는 한 따가운 시선을 너그러이 거두어 줄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시급한 과제를 외면한 채 주식의 보관신탁만 추가하려고 한다면 대통령은 ‘원칙과 신뢰’라는 이미지를 구기게 되고 정부와 여당은 국민이 아닌 대통령의 심기만 살핀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김 윤 상 경북대 교수 행정학부
[중앙일보]입력 2013.03.23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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