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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출신 ‘SNS 스타’ 혜민 스님

풍월 사선암 2013. 3. 23. 14:18

[매경이 만난 사람] 하버드대 출신 ‘SNS 스타’ 혜민 스님

 

설득·훈계 하지말고 상대방 말 들어주면 저절로 공감 생기죠

인기 비결? 스펙보다 내가 던지는 메시지에 주목한 것 아닐까요

`아이와 새벽에 놀아라` 직장맘 트위터 논란 현실적이지 못해 죄송

트위터 원칙남 비방하지 않는다, 맑고 따뜻하게 쓴다, 정치 문제 거

 

2년 전만 해도 혜민 스님(39미국 햄프셔대 종교학 교수)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버드 출신`이라는 화려한 스펙을 내세운 첫 책 `젊은 날의 깨달음`이 나왔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할리우드 배우 리처드 기어가 한국에 왔을 때와 현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이 뉴욕 법회를 할 때 통역을 맡으며 세상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블로그의 일상적이고 쉬운 글은 단번에 대중 마음을 파고들었다. 올해 초에 발간된 두 번째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그야말로 화룡점정.

 

지금까지 75만부 이상 팔린 이 책으로 스님은 이른바 `연예인 뺨치는` 스타가 됐다. 트위터 폴로어 수와 페이스북 친구(페친)는 각각 20만명. 종교계에서 보기 드문 일이 벌어진 것이다.

 

2년 전부터 스님을 죽 만났던 인연을 계기로 최근 서울 충무로 매경미디어그룹 사옥에서 다시 만났다. 구도자로서 그가 단번에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 과정과 비결이 궁금했고, 사회가 특히 2030대 젊은 층이 왜 그의 메시지에 열광하는지 가늠해 보고 싶었다.

 

요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신데.

 

사실 인기라고 해야 하나? 대중적 관심이 실감나지는 않는다. 황송하기까지 하다. 무엇이 되려고 꼼꼼히 계획한 게 아닌데. 세상 일은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더 좋은 게 있을 수도 있고, 생각지도 않은 일로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종교인에게 `인기`라는 말은 다소 생소한데.

 

인기는 물거품과도 같은 것이다. 한때 책으로 인연이 돼서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뿐이지, 이것도 무상(無常)한 것이니까 잠시 일어났다가 없어질 것으로 본다. 인기가 없어지더라도 원래 그랬던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뿐이다.

 

속칭 `스펙``비주얼`로 스님 인기를 설명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조계종 승려 중에 스펙 좋은 스님이 얼마나 많은지 아나. 사실 학벌(미국 UC버클리 학사, 하버드대 석사, 프린스턴대 박사)이 좋다는 게 도움이 됐겠지만 이것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은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어떻게 행동했는지가 결정적이라고 본다.

 

그 결정적인 것이 무엇인가.

 

지난해 안식년을 서울에서 보내면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마음 치유 콘서트`를 열었다. 그때 젊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듣기 시작했다. 일방적으로 스님이 법문을 말하는 법회 방식은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트위터로 "영어법회도 하고 명상도 합니다"라고 올렸더니 여기저기서 "우리 가도 돼요"라고 묻더라. 오지 말라고 할 수 없어 "오세요" 했더니 처음에는 40~50명이었다가 입소문이 나면서 한 번에 400~500명까지 늘었다.

 

어떤 방식으로 마음을 치유하나.

 

우선 11로 짝을 만든 다음 서로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상황을 유도한다. 일종의 연극이다. 한 명은 최근 나에게 아픈 일이 있었던 것을 고백하고 나머지 한 명은 친구처럼 들어준다. 외롭고 질투하고 등 누구나 겪게 되는 감정을 털어놓는 식이다. 그리고 누워서 명상 호흡을 하고, 끝날 때는 한 사람씩 공개적으로 고민을 얘기한다. 여러 사람이 그 고민을 듣고 다양하게 해결책을 이야기한다. 집단지성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효과는 있었나.

 

한국 사람들은 수동적인 것에 익숙하다.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이 따로 있다. 내 속의 응어리를 풀려면 내가 능동적이 돼야 하고, 다른 사람이 들어주는 게 좋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많이 할 때 행복하다. 솔직히 남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내 얘기를 하는 게 좋지 않나.

 

젊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은 엄청난 깨달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받고 싶어한다. 누군가가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길 원한다. 자비라는 게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 사람이 한번 말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내 말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일단 아프고 서운한 게 있으면 그것을 어루만져 줘야 하는데 우리는 그게 익숙지 않다.

 

스님만의 공감 비법은.

 

공감의 기본은 잘 들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에 대해 약간의 애정은 있어야 한다. 저 친구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상대가 내 말을 들어주면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다. 남을 설득훈계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내 생각과 남 생각을 똑같은 모양으로 맞추려고 하면 상처가 생긴다. 아무리 노력해도 생각은 맞출 수가 없다.

 

, 한번 물어보자. 도대체 내 생각이 옳다고 증명하는 게 중요한가. 아니면 앞에 있는 사람과 같이 행복한 게 중요한가.

 

얼마 전 직장맘들에게 "아이들과 새벽 6시에 놀아주라"고 해서 원성을 샀다.

 

이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웃음). 그때 느낀 게 뭐냐면 나름대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한 말인데 한마디 잘못하면 큰일 나겠구나, 신중해야겠다, 또 내 말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서 듣는구나 생각했다. "아침에 아이들과 놀아주고 출근하면 하루가 행복하다"고 누군가 한 말이 떠올라 그렇게 트위터에 글을 올렸는데, 현실적이지 못했다. 죄송하다.

 

`경험 없는` 스님들이 현실 문제에 구체적으로 조언을 해줘야 하느냐에 대해 논란이 있는데.

 

맞다. 난 애도 못 낳아 봤고, 결혼 생활도 안 해서 모른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고민하는 게 거창한 게 아니라 일상적인 문제들이다. 관계 속에서 갈등하고, 자녀 문제와 연애 상담 등을 한다. 그런 걸 묻고, 또 들어주다 보니 얘기하게 된다. 무조건 상대편 관점에서 들어주는 게 자비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경험을 하지 않아서인지 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도 하다.

 

트위터에서 짧은 글을 쓰는데, 원칙이 있나.

 

내가 옳아도 글에서 미움이 느껴지면 안 된다. 남을 비방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봤을 때 맑고 따뜻한 글이어야 한다는 세 가지 원칙을 갖고 있다. 또 정치적 문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법정 스님과 자주 비교되곤 하는데.

 

노보살님들이 법정 스님처럼 되라고 자주 이야기한다. 그럴 때마다 "전 저만의 빛깔을 가진 혜민 스님이 될래요"라고 말한다. 요즘은 법정 스님이 왜 오두막집에서 살았을까 이해가 되기도 한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들이 뭔가를 요구할 때 들어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 `아예 듣지 말아야지`라는 생각도 들 것이다. 나 또한 휴대폰이나 블로그에 문자나 고민상담이 많이 들어오는데 일일이 답변할 시간이 없다. 아마 일부에서는 무시당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솔직히 손오공이 아닌 이상 어려움이 많다.

 

불교계에서는 깨달음을 얻고 밝은 눈을 갖춘 뒤라야 중생을 구제할 수 있다고 하는데.

 

큰스님들처럼 거룩하게 말씀을 못한다. 그게 제 단점이다. 다정하고 친절한 스님, 동네 지나가는 스님처럼 얘기하지 않나. 그러니 말에 위엄이나 권위가 없다. 그게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나를 친근하게 느끼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누구든 부담 없이 내게 얘기를 거니까.

 

시대적인 분위기가 스님을 요구한 게 아닐까.

 

우리 사회가 누군가가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누군가가 들어주기 시작하니까 그런 것 같다. 항상 자기 얘기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따뜻하게 상대방 편이 돼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했구나. 지금까지 우리는 물질적인 가치를 성공 잣대로 삼았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도태되지 않으려고 달리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먹고살 때가 되니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휴가철인데, 어떻게 휴가를 보내면 좋을까.

 

사람들이 휴가도 가지 못할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들 한다. 올여름 휴가는 나와 가족, 친구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보냈으면 한다.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평소에 못했던 얘기도 하는 게 바로 가장 큰 행복의 지름길 아닐까.

 

앞으로 계획은.

 

8월 초에 미국에 돌아간다. 강의가 시작되기 전 휴식을 취하고 수행도 계속할 것이다. 요즘 들어 잘살아야겠다 생각한다. 혼자 잘사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잘살 수 있도록 내가 많이 노력해야겠다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젊은 스님이 정말로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종교인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하는데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훌륭한 종교인으로 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다만 사람들 관심이 나에게 머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사시사철 옷을 새로 사 입지 못하는 아이들이 우리나라에 100만명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힘을 쏟고 싶다.

 

He is

 

그를 키운건 가난영화감독 꿈꾸다 뉴욕서 출가

 

스님은 1973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집은 가난했다. 화장실 한 칸을 네 집이 같이 썼을 정도다. 화장실에는 문이 두 개가 있었는데, 그는 어느 곳에서 문이 열릴지 늘 초조한 마음이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는 가장 큰 스트레스가 친구들이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집에는 전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난이 그를 키웠던 것일까. 유년 시절 고민과 방황을 밑거름으로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노래하는 우리 사회 멘토가 됐으니 말이다.

 

"절 보면 아무 걱정 없이 자란 부잣집 아들쯤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더군요. 사실은 정말 가난하게 자랐어요."

 

작은아버지가 있는 미국 서부로 유학을 갔는데, 당시만 해도 영화감독이 꿈이었다.

 

그러나 막상 UC버클리 신입생 시절 영화를 찍고 난 뒤 미련없이 꿈을 접었다. "영화를 찍으면 다 아름답게 나오는 줄 알았는데 막상 해 보니 그렇지 않더라고요. 재능이 없었던 거죠."

 

그리고 때마침 불교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그때 선택한 전공이 종교학이다. 영화와 불교 사이에는 `창조적이고 틀을 깬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다르다. 하나는 이미지를, 하나는 본질을 중시한다.

 

대학 시절 친한 친구가 자살한 뒤 불교를 학문이 아닌 종교로 경험하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을까.

 

그는 1998년 뉴욕 불광선원 주지 휘광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000년 봄에는 경남 해인사에서 6개월 행자 생활을 했다. 예비 승려 자격인 사미계를 그때 받았다. 하버드대 비교종교학 석사 과정을 밟던 중이었다.

 

"하버드대에 갔을 때는 정말 기분이 좋았죠. 그런데 그런 생각은 금세 사라졌어요. 내가 가장 바라던 장소에 있는데도 행복하지 않았죠.”

 

그는 프린스턴대에서 받은 박사 논문을 인정받아 2008년 직지사에서 정식 승려 자격인 구족계를 받았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정식 승려가 된 지 4년 만에 그는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스님 가운데 한 명이 된 것이다.

 

현재는 매사추세츠주 햄프셔대에서 종교를 가르치는 정식 교수이자 뉴욕 불광선원 부주지다. 그에게 여전히 사람들이 하는 질문은 두 가지다. `왜 스님이 됐느냐` `출가한 게 후회되지 않느냐`.

 

"깨달으려는 열망으로 출가했는데 여전히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람들은 내가 승려로서 포기한 것, 잃은 것에만 집중해요. 출가 후 제가 무엇을 얻었는지는 관심이 없지요." 무엇을 얻었냐고 묻자 그는 `마음 공부`라고 했다.

 

"지금 전 수행하고 공부하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어요. 가장 행복할 때가 도반(친구)들과 법담을 나눌 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