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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고독한 下山

풍월 사선암 2013. 2. 28. 08:43

MB의 고독한 下山

 

최측근 5(정정길·이동관·박형준·곽승준·김상협)이 말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말 1秘史

 

곡종인산(曲終人散).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이 흩어졌다. 중국 당나라 시인 전기(錢起)는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정리(定理)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을 앞둔 청와대의 풍경도 그와 다르지 않은 듯하다. 신구 정권 간의 인수인계 작업이 이뤄지는 와중에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결행해 청와대 분위기는 더욱 뒤숭숭하다. 그런 가운데 지난 5년의 임기를 마감해야 하는 이 대통령의 심정은 어떠할까?

 

출범 초기 연 7% 경제성장률, 10년 후 일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강국 달성을 목표로 한 ‘747’공약은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일찌감치 폐기됐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 등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 실정으로 그 빛이 바랜 듯하다.

 

측근들이 비리사건으로 줄줄이 구속되고, 그의 정치적 대부이자 가장 가까운 혈육인 친형은 구속됐다. 감사원은 이 대통령이 필사적으로 추진해온 4대강사업을 부실이라고 발표해 청와대를 혼비백산케 했다. 거센 비난여론에 휩싸인 특별사면을 설을 앞두고 강행해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23.2%까지 주저앉았다.

 

<월간중앙>은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의 곁을 지켰던 핵심인사 5(정정길 전 대통령실장, 이동관 전 대통령실 홍보수석, 박형준 전 청와대 사회특보,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김상협 대통령실 녹색성장기획관)을 차례로 만났다. 그들의 입을 통해 레임덕이 본격화된 지난 1년간 청와대에서 벌어진 일들과 이 대통령 마음의 행로를 따라가보았다.

 

대통령이 요즘 폭탄주를 자주 마신다더라.” 청와대의 한 소식통이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근황을 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권재창출이 확정된 이후로 평소 신세를 진 지인들을 초청해 만찬을 열고 폭탄주를 돌린다는 말이었다. 대선 이후 꾸준히 이어진 이 만찬은 북한의 3차 핵실험 소식이 들릴 때까지 계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그 자리에 참석한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이 대통령은 요즘도 폭탄주 열 잔은 거뜬히 마신다며 대통령의 주량을 귀띔하기도 했다. 곽 위원장은 술자리에서 대통령의 기분은 매우 즐거워 보였다정권 재창출을 했는데 기분 나쁠 게 뭐 있느냐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5년 임기를 마무리하는 대통령의 심기가 홀가분하기만 할까.

 

<월간중앙>이 만난 다섯 명의 측근 중 한 사람은 지난가을부터 대통령은 외로워했다. 정치적 대부이기도 한 형과 측근들의 구속을 보면서 대통령의 마음은 임기 후반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측근들의 말이 엇갈리는 것을 보면 퇴임을 앞두고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이 대통령의 심정이 어떨지는 쉽게 가늠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활동이 시작된 이후, 이 대통령의 특별사면 문제와 감사원의 4대강사업 부실발표 등을 둘러싸고 신구 권력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구 권력 간에 가장 큰 충돌을 불러온 문제는 129일 이 대통령의 설 특별사면이다. 사면 직후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 조윤선 당선인 대변인은 국민의 지탄을 받을 일이라고 비난했다. 박 당선인 측이 특별사면에 대해 이례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앞서 국가의 4대 권력기관 중 하나인 감사원은 이명박 정부의 최대사업이라고 할 4대강사업에 대해 보 안전, 수질 관리 등 모든 부문에서 문제투성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의 발표 이후 인수위는 조사를 통해 의혹이 있으면 밝히고 고칠 것은 고치고 보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청와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정권 재창출을 했다고 기뻐하는 이 대통령의 마음 한 켠에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전직 대통령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없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국가 권력기관들의 자가발전식 충성경쟁으로 인해 박 당선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특별사면 논란 - 참모들 만류하자 욕먹더라도 하겠다!”

 

설을 앞두고 강행한 특별사면에 대한 이 대통령의 집착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지금이 아니면 이 대통령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절박함 말이다. 한 측근에 따르면 대통령은 특별사면 문제로 두 달 넘게 고민하셨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참모들이 안 하시는 게 좋겠다고 말했고, 대통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행했다.

 

이 대통령은 친인척과 임기 중 일어난 일에 연루된 사람은 빼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했지만 17대 대통령선거에서 이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천신일 세중나모회장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포함됨으로써 여론의 비난을 들었다. 특별사면 직후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23.2%로 추락했다.

 

부산에서 만난 박형준 전 사회특보는 다른 부분은 몰라도 이 대통령의 특사 문제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 동아대 교수로 복직해 부산에 체류 중이다. 최근까지 이명박 정부 5년을 결산하는 청와대 백서를 만드는 일을 끝마친 참이었다.

 

이처럼 측근들조차 이 대통령의 특사 강행을 내놓고 환영하기는 어려운 분위기인 듯했다. 측근들은 오히려 이번 특사 문제에 대해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대통령의 가장 약하고 인간적 모습일 수 있다며 이해를 구했다. 박 전 특보는 이 대통령이 이번 정권을 창출하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일종의 빚을 갚으려는 마음도 일부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무리 그래도 현직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특사 문제에 대해 대통령 당선인 측에서 세 번씩이나 반대의사를 발표한 것에 대해 대통령의 심기가 편치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관 전홍보수석은 특사로 풀려나온 최시중 전방통위원장이 지인에게 전화해 이상득 전의원이 나이도 고령인데다 육체적·정신적으로 (감옥) 안에서 무척 힘들어하며 억울함을 끝까지 규명하겠다고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이 말을 전해들었을 대통령의 심정은 말할 수 없이 참담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4대강 감사원 발표 - “양건 감사원장 임명은 차선 아닌 최악 막은 인사

 

측근들의 증언에 따르면 4대강사업이 총체적 부실이라는 지난 117일 감사원의 감사 결과 발표에 대해 대통령의 심기가 편치 않았던 듯하다. 김상협 기획관은 명백히 정권 변동기에 권력기관이 정치적 행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대통령이 불쾌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측근은 양건 감사원장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양건 감사원장은 2011년 봄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가 낙마하면서 어부지리로 자리를 얻었다. 여러 명이 후보 물망에 올랐지만 청문회 등을 이유로 모두 고사했고, 차선으로 된 인물이 양건이다. 최선보다는 최악을 막은 인사였고 당시 대통령도 그리 내켜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박형준 전 특보는 감사원의 발표는 전문적으로 접근했다기보다 임기 말 국가 권력기관의 횡포라고 본다“4대강사업과 관련된 각 정부부처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내린 발표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4대강에 대한 기술적이고 구조적 문제를 짧은 시일 내에 판단하기가 어려운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 발표한 것과 그 내용이 상당히 정치적이라고 덧붙였다.

 

박 전 특보의 말이 길게 이어졌다. “4대강 개발로 인해 홍수 예비비 2조원 정도를 거의 안 썼다. 홍수 대비가 입증된 셈이다. 도대체 4대강(사업)에 대한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들 있는데 솔직히 억울하다. 대통령이 건설 전문가라 공사 입찰부터 아주 짠 기준을 적용해 4대강(사업)을 한 대기업과 토목회사들은 오히려 적자를 봤을 정도다. 4대강(사업)에 권력형 비리를 갖다 대는 건 말도 안 된다.”

 

어찌됐건 감사원의 발표에 따라 4대강사업의 검증은 새 정부의 과제로 남게 됐다. 5인의 측근들은 이런 일이 퇴임을 코앞에 둔 시점에 벌어진 것에 대해 대통령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 있음을 간접적으로 전했다. 이 대통령의 레임덕은 얄궂게도 대선을 앞두고 여권 내에 박근혜 대세론이 부상하면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1년 후반부터 이 대통령의 존재감은 조금씩 옅어져 갔다. 측근들의 말을 빌리자면 청와대에선 박근혜 대세론이 본격화하기 이전에는 차기 예비주자의 물색에 나선 사실이 확인됐다.

 

MB, 박근혜 대항마 키웠나 - “임기 후반 젊은 청와대위해 김태호 총리카드 밀어

 

측근 5인 중 한 사람의 말. “2010년 초반부터 이명박 대통령은 여권에서 차기 대선 주자로 키울만한 사람들을 청와대로 불러 릴레이 면담했다. 이때 이 대통령과 독대한 사람이 김태호 경남 도지사,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2010년부터 이 대통령이 여권 주요인사를 잇따라 독대했다는 얘기에 귀가 솔깃해져 재차 물었다. “대통령이 박근혜의 대항마를 물색했다는 이야기인가?” “현직 대통령이 여권의 차기 주자를 준비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 않나. 이들 5명의 면담도 그런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보면 된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정권 성공도 중요하지만 정권 재창출 역시 신경이 쓰이는 일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는 당시 대통령은 국정운영을 뒷받침해줄 차기 주자 후보군을 만나본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 대통령은 이들 다섯 명을 만난 후 이 측근들에게 누가 더 낫다는 코멘트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당시 야권을 이기려면 대안은 PK(부산·경남)후보여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던 시점이었다“(그와 비슷한 때에) 청와대가 김태호 (경남)도지사를 총리 후보로 민 데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었다고 언급했다. 당시 대통령실장을 지냈던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도 5명의 여권 인사의 대통령 독대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이 대통령과 함께 6·3사태로 옥고를 치른 오랜 친구이기도 하다.

 

“2002년 이회창 후보가 두 번째로 대선에 나왔을 때 거의 이회창 대 이회창의 싸움이었지 않았나. 그래서 당시 청와대는 이회창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여권 후보를 다변화해 대선 경쟁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자연스럽게 대통령은 그 당시 여권에서 주목받던 인사들을 눈여겨본 것일 뿐 차기 대선주자로까지 확대 해석하기는 좀

 

정 전 실장은 당시 김태호 총리 카드에 대해서도 PK 인맥보다는 젊은 피 수혈을 위한 제스처였다고 해석했다. “이 대통령은 임기 초반 촛불집회로 인한 심한 후유증을 앓았다. 나도 촛불집회 직후 대통령실장으로 들어왔는데 나이가 많았고임기 후반엔 임태희 의원이 대통령실장을 맡고, 그의 런닝메이트로 김태호 카드를 염두에 두고 젊은 청와대를 구상한 것이었다.” 2007년 대선 이후 반MB 이미지를 고수했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정권을 잡은 후 끊임없이 박근혜 대항마를 키웠다는 의혹을 받았던 이명박 대통령. 당시 두 사람은 가장 불편한 관계였다.

 

청와대는 20108월 내각 발표에서 전격적으로 40대의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를 총리로, 이 대통령의 최 측근인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을 특임장관으로 지명해 친박계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당시 친박계 핵심이던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은 김태호 총리, 이재오 장관의 지명은 이 대통령이 자신의 뜻대로 앞으로의 정국과 차기 대권구도를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그때의 논란에 대해 어느 정도 해답이 된 셈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야심 차게 내놓은 김태호 카드는 국회 청문회를 거치면서 물거품이 됐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파동과 청와대 - “서울시장 사퇴 후 MB는 오세훈 버렸다

 

이 대통령은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해 각별했다. 같은 대학 후배에다 서울시장을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깊은 애정을 가졌다. 그래서 오 시장이 기자회견을 하기 전날 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와 임태희 대통령실장, 김효재 정무수석이 달려가 오 시장을 말리지 않았었나. 절대 시장 사퇴는 안 된다고.

 

하지만 오 시장은 시장 직을 사퇴하는 만용을 부렸고 대통령은 다음날 오 시장의 일방적 행동에 대해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날 이후 대통령은 오세훈 카드를 영영 버린 것으로 알고 있다.”

 

이동관 전 홍보수석의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김태호 총리 후보의 낙마 이후 청와대서 눈여겨본 차기 주자는 오세훈 서울 시장이었던 것 같다. 당시 청와대가 오 시장에게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시장 직을 걸게 하고 보수세력을 결집시켜 여권의 유력한 대선후보로 키우려했다는 시나리오가 떠돌았다. 하지만 2011826일 오 시장은 주민투표 개표 무산을 책임지고 시장 직에서 물러났다. 김태호에 이은 오세훈 카드가 날아가버린 것이다.

 

당시 이를 진두에서 지휘한 것이 박형준 전 사회특보였다는 기사가 일부 언론에 실리면서 이 대통령의 의중이 다시 관심사로 떠올랐다. 당시 박 전 특보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사실을 부인했었다. 하지만 이번 취재 과정에서 박형준 연출설을 뒷받침할 발언이 나왔다. 실제로 인터뷰에 응한 측근 중에서 오세훈 전 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박형준 전 수석이 기획했다고 말했다.

 

한 측근은 오세훈 시장의 사퇴는 전적으로 박형준 전 특보의 전형적인 실패 사례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PK 출신의 김태호를 총리로 추천한 것도 박형준이다. 그는 김태호와 오세훈 카드가 연거푸 실패하면서 청와대 내에서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박 전 특보는 근거 없는 모함이자 당시 상황을 알지도 못하고 하는 말들이라고 재차 부인했다. 그는 김태호 총리 카드에 수긍한 건 사실이지만 김태호 도지사를 최초로 추천하지 않았고, 오세훈 기획설은 시점 상으로도 맞지 않는 얘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에 대해 오세훈 전 시장의 최 측근도 오 전 시장과 박 전 특보가 고등학교 선후배인 건 맞지만 20106·2 지방선거 이후 두 사람은 사적으로 단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오전 시장이 당시 청와대 기획으로 수동적으로 움직였다는 말은 심각한 모욕이라고 반박했다.

 

서울시 의회는 6·10 지방선거 이후 야당이 의석 수 4분의 3을 차지했었다. 오 전 시장 측의 말에 따르면,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다수인 야당 시의원들이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 시행을 담보로 110건의 서울시 조례 중 단 한 건도 처리하지 않은 비상시국에서 오 전 시장의 사활을 건 승부수였다고 부연했다.

 

당시 오 전 시장은 당장 전면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할 경우 서울시 예산에 심각한 타격이 올 것이라는 예상에 단계적 실시를 주장했었다. 무상 급식 주민투표가 청와대 기획이었는지, 또는 박 전 특보 개인의 공명심 때문이었는지의 진위 여부를 떠나 발언이 엇갈린다. 당시 청와대 안에서의 불통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MB와 안철수 카드의 진실 - “안철수 후보를 어떻게 말하실겁니까?” “그건내가 알아서 할게

 

오세훈 시장의 낙마를 틈 타 떠오른 인물이 당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다. 안 전 원장이 대선 후보로 등장한 후 이 대통령은 오랫동안 의심을 받았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당선인이 지금까지도 이 대통령이 안철수 전 원장을 민다고 의심하고 있다느니, 지난해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도 친박 핵심 인사가 안 전 원장의 뒷조사를 했다느니 하는 설이 나돌았다.

 

안 전 원장이 갑자기 국정교과서에 실리고, 지상파 방송에 자주 등장한 것은 현직 대통령의 입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그럴 듯한 해석이 배경이었다.

 

<월간중앙>이 만난 5명의 측근들은 이 대통령의 안 전 원장 지원설에 대해 의견이 서로 엇갈렸다. 한 측근에 따르면 20118월 초 미래기획위에서 개최한 2차 신성장동력평가위원회 회의가 열리던 날 안 전 원장이 정치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를 얼핏 듣고 그를 다른 방으로 은밀히 불러 이렇게 질문했다고 한다.(안철수 전 원장은 2008년부터 2011년 말 즈음까지 청와대의 대통령자문기관인 미래기획위원회 멤버였다.) “안 원장님, 정치하실 생각 있으십니까?” 그랬더니 안 전 원장은 그 자리에서 당장은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는 안 전 원장의 어법이 하도 독특해 곰곰이 생각하고 들어야 하는 말이지만 당시 그 말은 진정성이 있게 들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사태로 사퇴하면서 정치적 공간이 생겼고, 안 전 원장은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급속하게 정치권에 빨려 들어간 것으로 추측했다.

 

그는 내가 아는 선은 거기까지고 이 대통령은 안 전 원장에 대해 단 한번도 거론을 하거나 지원을 당부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에도 대통령은 식사 자리에서 곽승준 위원장을 야단치며 대선 때 쓸데 없는 말이 나돌게 한 책임을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선 당시 곽 위원장은 청와대와 안 전 원장 간의 다리를 놓아준 인물로 구설수에 올랐었다. 이에 대해 곽 위원장은 명백한 오해라고 손사래를 쳤다.

 

왜 그런 말이 돌았는지 잘 모르겠다. 대통령은 안철수라는 인물이 혜성같이 등장한 사람인 건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대통령을 하기엔 역량이 다소 부족하다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내 앞에서 단 한번도 그를 차기 주자로 거론한 적은 없었다. 대통령은 이미 2011년에 박근혜 후보 외에 대안이 없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이동관 전 홍보수석의 이야기는 사뭇 다르다. 이 대통령은 안 전 원장이 대선 판에 나온 것을 일견 반가워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안철수라는 인물이 2007년 대선 당시의 자신과 매우 비슷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2007년 대선에서도 여론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환멸로 인해 새 정치를 해주길 바라는 기대감이 넘치지 않았나.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나왔을 때도 정치인으로 보기보다 비즈니스맨 신화의 주인공으로 기성 정치의 틀을 깨주길 바라는 대중의 욕구가 분명 있었다. 대통령이 안철수라는 인물을 눈 여겨 보고 있던 게 틀림없다.”

 

201199KBS에서 생중계된 추석맞이 특별기획의 이명박 대통령과의 대화에 나간 대통령은 안철수 현상에 대한 질문에 대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한다고 답해 화제가 됐다. 당시 이 전 수석은 방송 전 날 대통령에게 안철수 후보에 대해 분명히 질문이 있을 텐데 뭐라고 답하시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이 대통령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만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생방송에 나가 올것이 왔다고 말한것이다.

 

대통령은 이미 2011년 박근혜 이외의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는 곽 위원장의 말과는 조금 엇갈리는 발언이다. 하지만 이날 방송에서의 이 대통령의 답변만으로 본다면 이 전 수석의 말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지난해 중반 이후 안 전 원장이 야권 단일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청와대의 관심사에서 점점 멀어진 것으로 보인다.

 

실세들의 암투와 박근혜 대세론’- “임태희, 대통령 참모 역할 제대로 못했다

 

측근들의 증언에 따르면 대통령이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를 궁리하고 있던 와중인 2010년과 그 이듬해인 20114·27 재보선을 전후해 청와대에서는 실세 간의 암투가 벌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청와대 권력지도는 크게 정치인 라인인 이상득-임태희-원희룡-박영준의 한 축과 언론인 계통의 최시중-이동관-신재민의 또 다른 한 축으로 양분됐다는 것이다.

 

임태희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은 20107월 정정길 대통령실장 후임으로 청와대에 입성한다. 그는 과거 민정당 대표를지낸 권익현씨의 사위이자 20여년전 이 대통령을 포함해 허화평·최병렬 의원등이 주도해서 만든 <한백회>의 멤버로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이나 이 대통령에게는 거의 양아들같은 존재였다.

 

한 측근은 임태희라는 인물은 고용노동부 장관, 대통령실장 등 이번 정부의 양지에 있던 실세 중 실세였다이 대통령은 당 대표를 시킬까? 총리를 시킬까? 좋은 자리를 다 주고 싶어했을 정도로 아끼던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차기 대권을 꿈꾸다 결국 이 대통령의 눈밖에 났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측근 중 다수는 임태희 전 실장이 대통령의 참모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고 그를 깎아내렸다. 측근 중 일부는 주류 중 친박계 색채가 강한 임태희 전 실장과 정진석 정무수석이 청와대에 들어오면서 청와대가 너무 일찍 박근혜 대세론에 백기투항을 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정진석 정무수석은 20106월 지방선거 패배 이후, 임 전 실장은 같은 해 7월 청와대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청와대 입성 후 두 차례 이명박-박근혜 회동을 성사시켰고, 당시 박 전 한나라당 대표를 유럽 특사로 추천하는 등 계파 갈등을 누그러뜨렸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박근혜 대세론이 빨리 확산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오해를 받으며 대통령의 또 다른 참모들로부터 견제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20114·27 재보선 때 임 전 실장이 보여준 행동에 이 대통령이 격노했다고 말했다. “4·27 재보선을 전후해서 이 두 사람이 너무 박근혜 쪽에 줄을 대고 있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때 임 전 실장이 분당 을에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를 강하게 미는 바람에 여당의 텃밭을 뺏기지 않았나. 청와대 안에서도 분당에서 지면 다 진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임 전 실장이 훗날 자기 자리를 만들어놓기 위해 강재섭 카드를 분당 을에 못박았다는 얘기도 나왔다. 결국 MB정부는 막판에 2010년 지방선거와 이듬해 분당을 보궐선거, 서울시장 선거를 연거푸 지면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거다.”

 

여기까지는 언론에 일부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이 말에 한마디를 더 보탰다. “분당 선거에서 지고 청와대에서 임 전 실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얘기가 강하게 제기됐지만 결국 그러질 못했다. SD(이상득 전 의원)나 최시중의 최측근이라 함부로 내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임기 후반 남은 역할이 있다고 말리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한 측근의 말은 더 귀가 솔깃했다. “4·27 재보선이 끝나고아마 오세훈 시장이 사퇴한 뒤였을 거다(그는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대통령이 급기야 농반진반으로 정진석 수석을 가리키며 당신은 친박이잖아!’ 하고 말했다. 화가 나서 한 말은 아니었더라도 그 말을 했을 때의 대통령 심정을 미뤄 짐작해보라.”

 

이 대통령이 했다는 그 말은 사실이었을까? 현재 국회 사무총장으로 자리로 옮긴 정진석 전 수석에게 진위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렇다. “그때 회의에서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한 건 인정한다. 하지만 절대 진지한 뉘앙스는 아니었다. 대통령은 내가 박근혜 당선인과 같은 세종시 원안 이행 찬성파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청와대로 불렀다. 나는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 줄기차게 정권 재창출을 위해 박근혜를 끌어안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라 대통령이 그런 취지에서 가볍게 한 말로 기억한다.”

 

또 다른 측근은 지난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 임 전 실장이 출마한 것에 대해서도 청와대의 뜻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페이스메이커로 나가 판을 뜨겁게 해야 우리 쪽이 유리하다는 것이 임 전 실장의 논리였다. 청와대는 임 전 실장에게 청와대를 팔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임 전 실장이 박근혜 후보와 너무 각을 세우자 청와대와 대통령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임 전 실장이 여권의 대선 경선 후보로 나왔을 때 정치권에서는 향후 MB를 엄호하고 친이계를 대변하기 위해 나왔다는 설부터 박근혜 후보와 사전교감 아래 뛰어들었다는 설이 무성했다. 하지만 그가 박 후보와 각을 세우면서 정치인으로서 차차기 대권을 염두에 둔 승부수가 아닌지 의문을 낳기도 했다.

 

대통령도 솔직히상처 받았다

 

또 다른 측근은 지난해 4·11 총선 공천이 후반으로 치닫고 있을 때 친이계의 대거 낙천 가능성이 회자되던 시점의 일화 한 토막을 들려줬다.

 

어느 날 임 전 실장에게 전화가 왔는데 지금 공천 국면에서 보면 친이계가 일방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것 같으니 거사를 하든지 대응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내가 정치는 그렇게 하는 거다. 당신이 기치를 들어보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마치 자신이 친이계를 설득해 그들이 스스로 공천을 다른 쪽에 양보하도록 한 것이 자신의 공인 것처럼 언론에 나와 말하더라. 기가 찼다.”

 

그는 지금 한 말을 그대로 써도 되겠느냐?”고 묻자 이름을 거론하지 않는 선에서 괜찮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마 그 전화는 나뿐 아니라 다른 친이계 사람들도 받았을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임 전 실장이 대통령의 측근들에게 단단히 미운 털이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일부는 공적(公敵)”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이에 대한 당사자의 해명을 듣고 싶었다. 임태희 전 실장과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직접 답변을 들을 수는 없었다. 대신 측근을 통해 인터뷰 내용을 상세히 전했더니 한나절 뒤 긍정도 부정도 아닌 다음과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그 부분에 대해 일일이 해명할 필요를 못 느낀다.”

 

대통령 최측근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이 대통령은 2011년까지 굳이 박근혜 대항마가 아니더라도 차기 여권 주자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보였지만 박근혜 후보 외에는 마땅한 카드를 찾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과 정진석 전 정무수석이 청와대 핵심부에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박근혜 대세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92일 대선을 100여 일 앞둔 시점에서 박근혜 후보와 100분 간의 단독회동을 했다.

 

한 측근에 따르면 그 회동 전후 이 대통령은 이재오 의원을 청와대로 불러 박근혜 후보를 흠 잡고 다니지 마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이재오 최측근으로 알려진 권택기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특임 차관에 앉힌 것도 그 즈음 일이다.

 

곽승준 위원장은 대선을 한달 여 앞둔 지난해 11월 이 대통령과의 식사 자리에서 나눈 대화를 언급했다. “대통령과 오찬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이제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하시더라. 26년 만에 여당의 당적을 유지한 채 청와대를 떠나는 대통령이 돼서 기쁘다는 뉘앙스의 말도 자주 오갔다.”

 

곽 위원장은 1219일 선거 당일과 바로 다음날 식사 자리에서 이 대통령이 한 말도 기억했다. “선거 날 오찬 중에 대통령은 박근혜 후보가 제일 세다. 이길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 시간까지만 해도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몰랐던 것 아닌가. 그런데 무척이나 확신 있게 얘기하길래 좀 놀랐다. 결국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지 않았나.”

 

이 대통령은 결국 임기 동안 박근혜 당선인과의 불편한 관계로 오해 받던 것을 해명하고 싶었던 것일까?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의 말을 들어보자. “대통령도솔직히 2007년 경선할 때 상처를 많이 받았다. BBK, 재산 문제 등등 박근혜 당선인 측도 마찬가지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피차 간 경선 과정이 너무 격렬했던 것 같다. 친박연대 만든 것도 그렇고그렇다고 어떻게 지난 총선에서 그렇게까지(친이계의 대거 공천탈락을 말함) 할 줄은서로 섭섭한 게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대통령은 아마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했을 거다.”

 

MB가 진짜 듣고 싶었던 말 -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한 대통령

 

이 밖에도 측근들은 마지막 청와대에 대한 소소한 풍경들을 쏟아냈다. 5인의 측근 외에 추가로 만난 김영수 연설기록비서관은 대통령이 나로호 발사의 세 번째 시도를 앞두고 꼭 우리 정부서 쏘아야 하나. 또 실패하면 어쩌지라는 인간적 고뇌를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박형준 전 특보는 택시법 강행은 전형적인 MB 스타일이라며 성과와 실무 중심주의로 욕 먹더라도 이익집단의 정치적 요구에 휘둘리지 않겠다. 이런 식으로 정부의 재정 쓰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는 뜻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곽승준 위원장은 5년 전 대통령과의 택시 논쟁을 기억해내며 대통령의 뜻을 부연했다.

 

이 대통령은 철저한 분이다. 2007년 대통령이 내게 택시가 대중교통이냐 아니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대중교통이라고 말했다가 혼 난 적이 있다. 대통령은 택시가 정시에 정해진 노선을 따라가지 않고, 기사가 자의적으로 승차거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대중교통이 아니다고 말해주었다.”

 

대통령의 택시법 거부도 하루아침에 결정한 일이 아니라 기본적인 철학과 생각을 바탕으로 심사숙고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 번에 문제가 불거진 택시법의 정확한 명칭은 국회에서 제출한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법 개정안이다. 주요 쟁점이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해서 그에 걸맞은 지원책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대통령은 특정 이익집단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불필요한 예산과 경비를 쓸 수 없다는 원칙을 제시하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곽 위원장의 말로 유추해보면 대통령은 예전부터 택시가 대중교통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졌던 듯하다.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은 “2009년 대통령이 재산헌납을 앞두고 친구이자 참모인 자신에게 꼭 빚 독촉 받는 것처럼 하게 돼 아쉽다는 말을 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사회환원을 한다는 차원에서 멋지고 폼 나게 하고 싶었는데 서둘러 하라는 여론의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한 것 같은 아쉬움의 표현이라고 그는 부연 설명했다. 예전부터 대통령의 친구이자 동료였던 정 전 실장에 따르면 대통령은 과거 어머님이 너는 나중에 돈 벌면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도록 하라는 말씀을 자주 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을 오랫동안 지켜본 정치권의 한 인사는 “MB는 자신은 나라를 위해 일하는 최고위층 공무원이지 정치인은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19월 미국 시애틀을 방문해 빌 게이츠를 만나는 자리에서도 미국의 사진기자가 활짝 웃을 것을 요구하자 MB가 바로 손을 들어 “I am not politician!”이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김상협 기획관은 이명박 대통령 임기 5년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일하는 대통령이었다고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대통령은 UAE 원전을 수주할때 입찰 결정권을 쥔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왕세자에게 하루에도 수시로 전화할 정도로 공을들였다.외교부가 대통령의 체면 운운해도 결코 고집을 꺾지않았다고한다.

 

UAE 원전 수주가 사실상 프랑스 아레바 컨소시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은 한국형 원자로 400억 달러 수출을 성공시킨 일등공신이라는 것이다. 김 기획관은 임기 내내 새벽 5시에 일어나 모든 신문을 읽고 나오는 대통령 앞에서 수석비서관들이 현안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못해 쩔쩔매는 날이 많았다는 일화도 기억해냈다.

 

곽승준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은 역대 한국 대통령 중 외교를 가장 잘한 인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에게 브라더(Brother)!’ 소리를 듣기까지 대통령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5인의 측근은 공통적으로 이 대통령이 임기초기 꿈꾸었던 ‘747’ 공약 같은 경제 성장에 대한 찬란한 꿈이 주저앉은 점을 가장 아쉬운 점이라고 꼽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임기 내내 위기관리와 방어에 치우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와중에도 한국이 경제위기를 잘 극복할 수있었던데에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작용했음을 기억해주길 바랐다. G20 개최를 통해 국격을 높인일에 대해서도 제대로 평가받기를 바랐다.

 

그중 몇몇은 대통령이 성과지향적인 리더십 스타일로 인해 국가와 국민 간 소통에 실패해 임기 내내 불통이미지라는 수모를 겪은 점에 대해선 뼈아파했다. 하지만 5인의 측근들 모두 “MB는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일을 열심히 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그 평가는 후대에 남겨놓을 일이다.

 

201303월호<자료 : 월간중앙(박미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