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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어 같은 은행 용어

풍월 사선암 2013. 2. 15. 21:47

대체 송금·미결제 타점권? 누가 번역 좀 해주세요

   

[외계어 같은 은행 용어]

"네트점 통장, 이수관 처리"?

"다른 지점에서 낸 통장이니 우리지점으로 옮겨야 한다"는 뜻

은행원도 헷갈리는 경우 많아

납입최고기간·장해 지급률보험업계도 암호같은 말 많아

 

"고객님, 말씀하신 100만원은 '대체'로 송금해 드렸습니다. 나머지 돈은 '미결제 타점권'이 있어서 아직 인출이 안 됩니다."

 

최근 은행 창구 직원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주부 김모(32)씨는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쉬운 말로 다시 설명해 달라고 했더니 대체는 한 통장에서 다른 통장으로 바로 송금하는 것, 미결제 타점권은 다른 은행이 발행한 수표로 하루 전에 입금된 돈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김씨는 "아주 쉬운 뜻인데 굳이 '외계어' 같은 금융 용어를 써대니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외계어 같은 은행 용어고객만 골탕

 

지난해 9월 은행연합회가 금융 용어를 고객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든다며 '용어 순화'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일선 은행 창구에서는 번역 수준의 설명이 없으면 알기 힘든 용어들이 버젓이 쓰이고 있다.

 

예를 들면 '대출 기간을 연장하려면 일부를 먼저 갚아야 한다'고 쉽게 말하면 될 것을 은행에서는 굳이 낯선 한자어를 써서 '내입(內入·갚을 돈의 일부를 먼저 내는 것)해야 한다'고 한다. '다른 지점에서 낸 통장이니 우리 지점으로 옮겨야 한다'는 간단한 이야기를 '네트(NET)점 통장이니 이수관(移受管) 처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 밖에 기대상환(기존 대출 상환), 한도대출(마이너스통장 대출), 당발송금(해외로 외화를 송금), 타발송금(해외로부터의 외화 송금), 현찰 매도율(고객이 외화를 살 때 환율), 현찰 매입률(고객이 외화를 팔 때 환율)처럼 소비자가 알기 힘든 용어가 하나 둘이 아니다.

 

한 시중은행 팀장은 "은행 내부에서 관행적으로 써 왔던 전문 용어가 입에 붙어 고객들을 상대할 때도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곤 한다"고 말했다.

 

이런 용어 중에는 은행원 스스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게 적지 않다. 한 시중은행 인사부서 관계자는 "신입행원 교육 때 용어를 한자로 써주고 하나하나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일이 흔하다""은행원 스스로도 어려운 용어를 창구에서 써대니 고객은 얼마나 불편하겠나"라고 말했다.

 

보험계약 내용 설명 안 되는 상품설명서

 

외계어 사용은 보험 업계도 마찬가지다. 직장인 이모(41)씨는 3년 전 가입한 생명보험의 상품설명서를 다시 꺼내봤다. 어떤 사고를 당하면 얼마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A4 용지 14장에 깨알 같은 글씨가 박힌 설명서는 도움이 안 됐다.

 

'중대한 암으로 진단이 확정되면 2500만원 지급'이라고 돼 있었지만 정작 '중대한 암'에 어떤 암이 포함되는지 알려주는 대목을 찾을 수 없었다. 보험회사 직원에게 물었더니 "영업소에 비치돼 있는 300~400쪽 분량의 약관을 뒤져봐야 한다"는 대답이 나왔다. 김씨는 "중대한 암의 대표적인 사례 한두 가지만 적어줘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텐데 그런 배려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중대한 암은 갑상선암, 초기 전립선암, 대장점막내암 등을 제외한 악성종양을 뜻한다.

 

설명서에는 또 '장해지급률(신체에 장해가 생긴 정도에 따라 보험금을 산정할 때 적용하는 비율)' '공시이율(보험회사가 적용하는 이자율)' '납입최고기간(납입을 독촉하는 안내 기간)'처럼 암호 같은 말이 많았지만, 적절한 설명은 찾을 수 없었다.

 

금융사 '온라인 교육' '역할극' 하며 노력 중

 

외계어 같은 금융 용어를 줄이기 위해 금융회사도 나름 노력하고 있긴 하다. 우리은행은 작년 11'고객이 편리한 은행 용어집'을 만들어 전체 행원을 대상으로 온라인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실제 창구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그동안 써오던 어려운 용어를 어떻게 바꿔 말하면 고객들이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 되는지 사례식으로 알려준다. 예컨대 "입금하신 100만원 중 '타점권' 10만원은 '익영업일'에 자금화됩니다""입금하신 100만원 중 '다른 은행 수표' 10만원은 '다음 영업일'에 출금됩니다"로 풀어서 말하게 하는 식이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말부터 상품설명서에서 고객들이 이해할 수 없는 외계어를 솎아냈다. '예입일''입금일', '분할 해지''일부 인출', '평잔''평균 잔액', '증빙''확인'으로 각각 바꿨다. 이 은행은 새로 바꾼 쉬운 용어가 현장에서 바로 쓰일 수 있도록 각 지점에서 행원들이 역할극을 하면서 새 용어가 입에 붙도록 연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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