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 죄로 오늘도 '忍'
설 연휴 끝자락에 부부간 칼부림이 잇따랐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저 역시 사소한 일로 아내와 다투었거든요. 하지만 큰 싸움 없이 무사히 잘 넘겼습니다. 아, 물론 가슴에 참을'인(忍)'자 몇 개 새기긴 했습니다. 부부싸움의 대부분은 시월드(시댁)나 처월드(처가), 자식 문제, 그리고 생각의 차이에서 오는 사소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 하더라도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가 아닙니다. 서로 가슴에 대못을 박거나,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명리학에 의하면 이승에서 잠시 눈 맞았다고 부부가 되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부처인연숙세래(夫妻因緣宿世來).' 부부인연은 전생으로부터 온 것으로, 숙명처럼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부의 연이란 구천 척 하늘 위에서 좁쌀을 떨어뜨릴 때 땅 위에 세워놓은 바늘 끝에 꽂히는 인연과 같다고 합니다. 전생에 얼마나 많은 인연을 쌓았으면 이승에서 부부가 되었겠습니까. 오죽하면 천정배필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렇게 귀한 인연인데, 왜 우리는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하는 원수가 될까요? 모두가 내 탓입니다. 아내가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다른 성격의 사람이란 걸 왜 인정하지 못하는 걸까요. 내 생각과 다른 점을 왜 자꾸 고치려 할까요. 상대를 변하게 하면 그 사람 행복까지 파괴해 버린다는 걸 왜 모를까요.
"난 당신의 백 댄서가 아니야! 나도 주인공이란 말이야. 여주인공!"
부부싸움 뒤끝은 황량한 사막과 같습니다. 이글거리는 태양 속에 서로의 감정만 메말라 갈 뿐입니다. 쇼윈도 부부가 되기 전에 대못을 빼줘야겠습니다. 상처가 덧나기 전에 연고라도 발라줘야겠습니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지만, 여자야말로 남자 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이런 생각만 하고 있을 때, 아내는 용기없는 하수를 위해 오늘도 한 수 접어줍니다."한때 사랑했던 죄로, 내가 참는다."
아내의 가슴엔 나보다 훨씬 많은 참을 '인'자가 새겨져 있을 겁니다.
최순식 드라마작가·동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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