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먹으니까…" 명절에 상처받는 한마디
혜민 스님 / 미 햄프셔대 종교학 교수
고향의 따뜻함과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즐거운 명절이 곧 돌아온다. 평소에는 자주 만나지 못하던 친척들이 오랜만에 한지붕 아래에 모여 조상님께 같이 차례도 지내고 어른들께는 세배도 올리면서 밀렸던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런데 그 즐거워야 할 명절날이 안타깝게도 아이에겐 평생 남는 상처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별 생각 없이 툭툭 던진 고모나 삼촌, 할머니의 말들이 비수가 되어 시간이 지나도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따끔따끔 하면서 아픈 상처로 남는 것이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많은 경우에 아이가 본인의 말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어른들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면 알아도 ‘뭐 그럴 수도 있지, 식구들끼리 무슨 상처냐? 다 너 잘되라고, 다 너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하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아이는 너무도 아픈데도 말이다.
이를 테면 이런 말들이다. 명절 때 밥 먹고 있는 여자 조카애를 보더니 고모가 대뜸 이렇게 말한다. “에휴, 너 살 좀 빼야겠다. 네가 평소에 그렇게 먹으니까 남자가 안 생기는 거야. 너 어렸을 때만 해도 진짜 예뻤는데.” 할머니의 이런 말들도 아프다. “네가 빨리 취직이 되어야 엄마가 덜 힘들 텐데. 부모 등골 좀 그만 빼먹고 얼른 돈 벌어 시집이나 가라.” 큰어머니의 결혼에 관한 말도 아프다. “결혼은 왜 안 하니? 돈은 좀 모았니? 올해는 국수 먹여줄래? 멀쩡한데 왜 결혼을 못해. 눈 좀 낮춰라. 공부만 잘했으면 뭐하니 결혼 잘 못하면 그거 다 헛똑똑이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애가 학교 몇 학년이냐고 물어 보시는 고모부는 대학 입시에 실패해서 재수를 결정한 아이를 보고 이렇게 묻는다. “너, 재수를 왜 하니?”
사실 명절 하면 기억이 나는 일이 하나 있다. 나에겐 자라면서 거의 친누나처럼 가까웠던 사촌 누나가 한 명 있다. 집이 가까워서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은 같이 누나와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누나 집은 우리 집과는 달리 좀 시끄러운 일이 많았는데 그 이유가 누나 부모님께서 부부 싸움이 잦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누나가 중학교 다닐 때 두 분은 이혼을 하셨고, 나는 옆에서 누나가 부모님의 이혼으로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쭉 지켜봐야 했다. 그러다 한참 뒤 우리가 어른이 된 후 누나에게 드디어 애인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연애가 무르익어 결혼 이야기가 오고 갈 때쯤 큰 사건이 하나 터지게 된다.
명절이 되어 매형이 결혼하게 될 누나를 친지들에게 소개를 시켜주려고 집으로 누나를 초대했다. 누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곱게 차려 입고 매형 집에 가서 최선을 다해 좋은 인상을 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부엌에서 음식 하는 것을 열심히 돕다가 잠시 화장실을 가려고 마루를 걸어가는데 저쪽 방 한쪽에서 매형 고모들이 하는 말이 들려 왔단다. “쟤네 부모가 일찍 이혼을 했다네. 아버지 없이 근본 모르고 자란 애야. 우리랑은 사실 격이 맞지 않는데 결혼하겠다고 저렇게 뻔뻔하게 집에까지 찾아온 것 좀 봐.” 이 말을 우연히 엿듣게 된 누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나도 얼마나 누나가 아팠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리다. 아니 세상에, 부모님 이혼한 것이 어떻게 애들 책임이란 말인가? 결국 누나는 매형과 헤어지려 했지만 매형의 끝없는 구애에 아슬아슬하게 둘은 결혼을 했다. 단, 친척들을 봐야 하는 결혼식은 하지 않고 결혼신고만 하고 말이다.
트위터로 한번 물어 보았다. 명절 때 친척들의 말 때문에 아팠던 적이 있었느냐고. 그랬더니 실시간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연이 올라왔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 좋은 명절 때 모여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것일까. 그냥 가족이니까 꼭 남들에게 하듯이 힘들게 말 가려가면서 할 필요가 없어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가까워도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할 말들이 세상에는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애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 하더라도 아이가 아파한다면 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닐까. 사실 애는 뭐가 잘못되었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어른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 차라리 애가 어떤 점 때문에 힘들어 할지 그 마음을 살펴서 응원의 말, 격려의 말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넌 이게 문제야’가 아니고, ‘나도 사실은 너처럼 그랬었어’라고 공감해 주고, ‘넌 분명 잘할 수 있어’라고 믿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멋있는 어른이 되어서 아이들에게 이번 설날만큼은 상처의 명절이 아니고 행복한 명절을 선물했으면 좋겠다.
[중앙일보]입력 2013.02.09 0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