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생활/건강,의학

스마트한 문명 속에서 퇴화하는 현대인들

풍월 사선암 2012. 12. 20. 18:55

[김철중의 생로병사]'스마트'한 문명 속에서 '퇴화'하는 현대인들

 

뇌는 근육과 같은 속성 있어 머리 안 쓰면 금세 굳고 가늘어져

신체 활동 부족한 요즘 사람들 일부러 헬스클럽 가서 운동하듯

노년까지 싱싱한 머리 쓰려면 '브레인 피트니스' 꾸준히 해야

 

나이 쉰줄이 넘어가면 다들 "이제 내 머리가 굳었나 봐"라고 한탄하듯 말한다. 예전 같으면 뭔가를 떠올릴 때 0.5초도 안 걸려 나오던 것이 요즘은 머릿속에서만 맴돌 때가 잦다고 푸념한다. 애써 외웠던 것도 돌아서면 까먹고, 머리를 흔들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라고 씁쓸해한다. 기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것을 외우는 암기력이나 알았던 것을 떠올리는 회상 능력은 감소하기 마련이다. 뇌는 시냅스라는 신경 줄기가 얽히고설킨 전자 네트워크를 통해 기억을 저장하고 불러낸다. 전자 제품의 연식이 오래되면 구동 능력이 떨어지듯, 전자회로 덩어리인 우리의 뇌도 그렇게 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노화 현상은 되돌리기 어렵다고 믿었다. 어렸을 때라면 몰라도 성인의 뇌 기능이 쉽게 바뀌겠는가. 뇌 조직은 나이를 먹을수록 위축되어 줄어들 뿐 다시 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고무지우개가 닳아 없어지듯 말이다. 하지만 최신 연구에 따르면 뇌는 자신이 하기에 따라서 조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됐다.

 

2004년 과학 잡지 네이처에 소개된 연구 결과는 이를 증명한다. 신경과학 연구진은 신체 건강한 20대 자원봉사자에게 양손으로 3개의 공을 순차적으로 잡아 돌리는 저글링(juggling) 훈련을 3개월 동안 시켰다. 그러고 나서 저글링 훈련 전에 찍은 뇌 MRI와 석 달 훈련 후에 찍은 MRI 사진을 비교했다.

 

그러자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신경 줄기가 모여 있는 뇌 피질이 두꺼워진 것이다. 저글링 훈련을 통해 양손과 뇌의 조화 기능만 향상된 것이 아니라 뇌 구조가 바뀐 것이다. 뇌도 훈련하기에 따라서는 성형이 된다는 의미다.

 

이런 변화가 그래도 뇌가 싱싱한 젊은 사람이니까 가능했겠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독일 함부르크 신경과학 연구진은 60세 이상의 나이 든 사람에게 저글링 훈련을 시키고 앞서 연구처럼 뇌 조직의 변화를 관찰했다. 물론 그들은 20대처럼 저글링을 능숙하게 잘 해내지 못했지만, 결과는 젊은 사람과 같았다. 기억을 관할하는 뇌 조직인 해마(海馬)의 두께가 커졌다.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이다. 저글링을 통해 뇌 조직이 두꺼워졌던 사람들에게 이번에는 저글링 훈련을 3개월 동안 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다시 뇌 MRI를 찍었더니 커졌던 그 부위가 원상태로 돌아왔다. 뇌 훈련을 하면 뇌 조직이 커지고, 안 하면 다시 줄어든다는 얘기다. 헬스클럽에서 역기를 드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수개월 하면 팔 근육이 커지고, 몇 달 쉬면 팔 근육은 다시 줄어든다. 뇌도 그런 골격근과 같은 속성을 가진 것이다(그래서 머리를 쓰면 진땀이 났나 보다). 이런 현상을 두고 뇌 기능 연구의 권위자인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나덕렬 교수는 "뇌에 알통이 있다"고 표현한다.

 

요즘 자동차로 낯선 길을 갈 때 흔히 내비게이션을 이용한다. 그것이 안내하는 대로 기계적으로 운전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와 있다. 길 찾기의 번거로움을 내비게이션이 덜어줬다. 하지만 나 교수가 머리 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소개하는 연구를 보면 내비게이션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영국에서의 실험이다. 런던에서 택시 운전사가 되려면 길 찾기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수천개의 장소와 길목을 헤매지 않고 다닐 수 있어야 자격을 준다. 통상 2년의 훈련이 필요하다. 런던대 신경과학 연구팀이 택시 운전사들을 데려와 뇌 MRI를 찍어 봤더니 기억을 관할하는 해마가 일반인보다 훨씬 커져 있었다. 그만큼 뇌 세포의 수가 늘었다. 경력이 오래된 운전기사일수록 그런 경향이 뚜렷했다. 머리를 쓰면 쓸수록 뇌기능도 좋아지고, 뇌도 커진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암기와 연산 훈련, 새로운 학습과 배움을 끊임없이 실천한 사람일수록 치매에 적게 걸린다. 그들에게는 설사 치매가 오더라도 더디게 오고, 치매를 앓더라도 약하게 앓게 된다.

 

우리는 일상처럼 멍하니 TV를 지켜보고, 궁금한 게 생기면 즉시 인터넷을 돌리고, 스마트폰을 누른다. 생각이 사라졌다. 베개 벨 때와 모자 쓸 때 말고는 내 머리를 대신 해줄 것들이 많아졌다. 접하는 정보의 양은 늘었지만 사고를 구체화하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능력은 나이가 들수록 줄어들고 있다. 현대인은 뇌를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셈이다.

 

미국에서는 요즘 헬스클럽처럼 기억 훈련을 시키고 연산 기능을 향상시키는 이른바 '브레인 피트니스 센터'가 속속 생기고 있다. 뇌를 자극하라는 뜻의 '바이브란트(vibrant) 브레인' 교육 센터들도 나온다.

 

인류가 농경 사회와 산업화 사회를 거쳐 정보화 사회로 넘어오면서 우리의 신체 활동은 급속히 줄었다. 이에 일부러 몸을 움직이는 헬스클럽이 등장했다. 스마트한 문명 속에 머리 쓸 일이 줄어들면서 이제 억지로라도 브레인 헬스클럽에 다녀야 할 판이다.

 

의학전문기자·의사

첨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