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포퓰리즘 앞엔 여야가 따로 없다

풍월 사선암 2012. 11. 22. 20:02

포퓰리즘 앞엔 여야가 따로 없다

 

노인표 얻으려 법 어기며 기초노령연금 인상 나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예산소위원회가 법을 어기면서까지 기초노령연금을 20% 올리는 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켜 논란이다. 대선을 앞두고 노인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정책에 여야가 따로 없었다.

 

국회 복지위 예산소위(위원장 이목희 민주통합당 의원)는 지난 20일 회의를 열어 기초노령연금을 국민연금가입자 3년치 평균소득의 5%(97100)에서 6%(116600)로 올리는 증액안을 의결했다. 액수로 따지면 20%를 더 주는 내용이었다. 이대로 하면 예산이 6484억원(지방비 1647억원 포함) 더 필요하게 되고 노령연금예산도 총 5조원으로 늘어난다. 소위는 이날 인상안이 상정되자 위원회 총의로 결정하자며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반대 의견은 아예 없었다. 보건복지부가 기초노령연금법을 들어 연금제도개선 특별위원회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반대했지만 무시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안건 통과에 2~3분도 채 안 걸렸다고 전했다. 예산소위에는 새누리당 김명연·김정록·류지영·민현주·신의진 의원, 민주통합당 이목희·이언주·이학영 의원,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이 참여했다.

 

하지만 예산소위의 증액안 의결은 법률 위반이다. 20081월부터 시행된 기초노령연금법 부칙 제4조의2(연금액의 단계적 인상 경과조치)는 기초노령연금을 2028년까지 국민연금가입자 평균소득의 10%로 단계적으로 올리되 재원 대책, 인상 시기와 방법 등은 국회에 연금제도개선특위를 설치해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19대 국회에는 연금제도개선특위가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앞서 18대 국회에선 특위를 구성하긴 했지만 지난해 8월 이후 회의를 한 번도 열지 않았다. 또 다른 복지부 관계자는 국회에서 만든 법에 명백히 절차가 적혀 있는데도 국회의원들 스스로 이를 어기는 건 정말 문제라고 지적했다.

 

법령 부칙에 이 같은 규정을 둔 이유는 2007년 기초노령연금법을 만들 때 반대가 컸기 때문이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은 모든 노인에게 월 최고 33만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여당인 열린우리당(민주통합당의 전신)포퓰리즘이라고 비난했고 타협 끝에 나온 게 현행 기초노령연금이다.

 

연금 인상안은 이날 소위에 이어 열린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임채민 복지부 장관의 반대에 부딪혀 통과되지 못했다. 예산증액 사항은 정부의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지위는 22일 회의를 열어 인상안을 다시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기초노령연금 관련 공약을 내지 않았고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2017년까지 두 배로 인상하되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처럼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있다. 안철수 후보도 두 배 인상을 공약했다.

 

 

30만 택시표 얻기 위해 1500만 시민 희생시키다

 

국회, 토론도 재정대책도 없이 택시법법사위 처리

법안 발의한 이명수 의원도 너무 과속으로 밀어붙였다

  

대선 때 택시 표를 의식해 너무 과속으로 밀어붙였다.”

 

택시에 대중교통 수단이라는 법적 지위를 주는 대중교통법 개정안(일명 택시법’)21일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직후 새누리당 이명수(재선·아산) 의원이 본지와 통화에서 한 말이다. 그는 법안을 대표발의한 여야 의원 5(새누리당 이병석·이명수·최봉홍, 민주통합당 박기춘·노웅래) 중 한 명이다. 이 의원은 이어 이렇게 서두를 게 아니라 반발하는 버스업계, 정부와 충분히 시행 시기와 재정 지원 대책을 충분히 협의한 뒤 처리하는 게 옳았다고 덧붙였다. 뒤늦은 후회인 셈이다.

 

그의 말대로 이번 개정안 통과는 표 계산에 근거했다고 볼 수 있다. 전국의 택시업계 종사자는 개인택시 16만 명을 포함해 30만 명이다. 이에 비해 22일 총파업을 예고한 버스업계 종사자 수는 10만 명이다. 하루 평균 이용자 수로 따지면 시내버스만 1500만 명으로 압도적이지만, 개정안은 이용자와는 관계가 없다.

 

또 현행 대중교통인 버스에 대한 국고유류보조금과 지방비 등 지원 규모(2011년 기준 13380억원), 그리고 택시에 대한 유류보조금과 세제 혜택(7615억원) 등의 차이에 따른 재원 싸움의 의미도 있다.

 

추가 재정이 들어가는 개정안이기에 정부는 지난 15일 국토해양위의 법안 처리에 이어 이날 법사위에서도 택시는 대중교통으로 볼 수 없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법사위 회의에서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은 택시는 다중을 실어나르며 일정한 노선과 운행 시간표가 정해진 대중교통이 아니라 개별 교통수단이라며 세계 어느 나라나 학문적으로도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분류한 나라가 없다고 말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택시업무는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업무이기 때문에 법 통과 때 자치단체의 재정부담이 가중해지고, 택시-버스업계 간 갈등도 심화돼 국민적인 여론 수렴이 필요하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여야 법사위원들은 해당 상임위인 국토위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표결을 밀어붙였다. 새누리당 법사위 간사인 권성동 의원은 법체계나 헌법 위반 사항이 아닌 경우 상임위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법사위의 전통이라 고 말했다. 이어 위원장석에서 사회를 보던 민주통합당 간사인 이춘석 의원이 별도로 법안소위에 회부하지 않고 곧바로 표결을 진행해 만장일치 가결을 선포했다.

 

그러자 김황식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 강창희 국회의장에게 22일 본회의 상정 보류를 부탁한 상태다. 정부 일각에서는 국회가 대선 택시표를 의식해 여야가 본회의 처리를 강행할 경우 이명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법안을 발의한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4·포항북)그동안 버스가 정부 지원으로 발전해온 만큼 이제는 택시업계도 생존권 차원의 지원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민주통합당 박기춘 의원(3·남양주 을)택시에 대한 대중교통 차원의 지원은 여야 총선 공약일 뿐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의 공약이라며 개정안은 국가와 지자체의 재정 지원 근거만 마련해뒀는데 정부가 구체적인 지원방안은 마련하지 않고 버스업계 반발을 조장한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발의자인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은 내가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토해양위 표결 때도 일본 출장 중이어서 참석하지 못했다민주당이 당론이라며 과속으로 밀어붙인 측면이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엄마표 얻으려 대책 없이 무상보육 예산 1조 증액

 

복지위 전체회의 통과 시도

장관이 강력 반대, 회의 중단

 

정치권의 포퓰리즘은 무상보육에도 이어졌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예산소위는 앞서 19일 만장일치로 무상보육으로 유턴(U-turn)하는 예산안을 의결했다.

 

취학 전 아동의 어린이집 보육과 가정 양육수당 예산을 정부안(23237억원)보다 12915억원 늘려 36152억원으로 증액한 것이다. 0~2세 무상보육 대상을 소득 하위 70%로 축소하려던 정부 방침과 달리 전 계층으로 환원(5438억원 증액)했다. 정부가 내년에는 전업주부 자녀들은 반나절만 보육료를 지원하고 맞벌이는 종일 지원하도록 틀을 바꾸려 했지만 국회는 이마저 반영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맞벌이 부부 자녀들이 전업주부 아동에게 밀려 어린이집을 못 잡는 일이 계속 벌어지게 됐다.

 

이 자리에서 손건익 보건복지부 차관이 보육환경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확대하자. 지방재정 문제와 제도의 지속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지만 의원들은 듣지 않았다.

 

지난 90~2세 무상보육 지원 대상을 내년부터 축소한다는 정부 방침이 나왔을 때 대선 주자들과 복지위 의원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이날 소위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대통령 후보가 모두 ‘0~5세 무상보육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소위는 또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0~5세 자녀가 있는 가정에는 소득에 상관없이 매달 20만원씩 양육수당을 지급(7476억원 증액)하기로 했다. 정부는 소득 하위 70%까지 지원하되 3~5세는 10만원만 지원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국회가 상위 30%까지 모든 계층으로 대상을 넓히고 금액도 일괄적으로 20만원으로 올린 것이다.

 

이 같은 소위의 증액안은 20일 오후 열린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제동이 걸렸다.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보육·양육 예산의 증액을 강력히 반대했다. 예산안 의결 직전 오제세(민주통합당) 국회 복지위원장이 증액에 대한 정부 동의 여부에 대해서 의견을 듣도록 하겠다. 임채민 장관, 동의하시냐고 묻자 임 장관은 죄송합니다만 저희는 전체 증액에 대해 동의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자 오 위원장은 국회 사무처 직원을 불러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는 헌법 57조의 규정을 살펴보는 등 대책을 논의했다. 결국 회의는 중단됐다. 복지위 관계자는 정부가 증액에 반대하더라도 일단 상임위에선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예산결산특위의 계수조정소위에서 다시 협의하는 게 통상 절차라며 장관이 대놓고 상임위에서부터 강력하게 반대하는 건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입력 2012.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