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중산층 別曲

풍월 사선암 2012. 10. 23. 09:30

SNS 달구는 '중산층 別曲'

 

우리 중산층 기준 - 30평 이상 아파트와 500만원 수입 자동차는 2000cc

유럽은 - 페어플레이 정신과 스포츠·음악 즐기는 것

미국에선 - 사회적 약자 돕고 비평지 정기 구독해야

 

5년전 한 노동단체 간부가 기고한 글 최근 다시 확산

"부끄럽다" "씁쓸하다"며 스스로 만든 잣대 올리기도

 

"선진국 중산층은 정신을 보는데, 우리나라는 온통 돈 얘기뿐이네요.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듭니다." 최근 카카오톡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중산층 별곡(別曲)'이라는 글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405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이 글은 미국·영국·프랑스의 중산층 기준과 한국 중산층 기준을 비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글에서 한국의 중산층 기준은 물질적·경제적인 부분에 치우쳐 있지만, 선진국의 중산층 기준은 정신적·사회적인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있어 뚜렷한 대조를 보여준다. 한국의 중산층 기준은 30평 이상 아파트를 가져야 한다는 식이다. 반면 미국 중산층의 기준은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사회적인 약자를 도와야 하며, 부정과 불법에 저항할 줄 알 것,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있을 것 등 네 가지다. 영국도 비슷하다.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은 조르주 퐁피두 전 대통령이 제시한 '삶의 질' 공약 내용을 토대로 했다. 프랑스를 제외하면 이 글에 나오는 기준은 모두 진위 여부가 불분명하다. 영국과 미국 대사관은 "처음 듣는 기준"이라며 "현재로서는 그 기준을 입증할 자료가 없다"고 전했다. 한국의 기준도 정확히 일치하는 조사 결과는 없다.

  

그럼에도 이 글은 지난 7월쯤부터 SNS상에서 급속도로 퍼지며 '중산층 별곡 신드롬'으로 번지고 있다. 지금까지 네티즌들이 이 글을 인터넷에서 퍼 나른 횟수만 수만 건에 달할 정도다.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는 "출처도 불분명하고 단순 비교도 어려운 주제를 다룬 이 글이 인기를 끄는 것은, 경제가 어려워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소수가 되면서 그만큼 중산층에 대한 관심이 커진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특히 중산층이란 주제에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무엇을 갈망하는지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글의 원출처는 2007년 한 노동단체 간부가 기고한 칼럼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간부는 "영국의 기준은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에서 본 것을 옮긴 것이고, 프랑스는 다른 책에서 읽은 것을 인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인용한 프랑스 기준은 실제와 일부 다른데, 이 부분까지 그대로 '중산층 별곡'에 담겨 있다. 퐁피두 전 대통령이 제시한 기준에는 공분에 참여하는 것과 약자를 돕고 봉사활동을 한다는 내용은 없고, 대신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자립시킬 것 등 네 가지 기준이 추가된다.

 

이 글이 화제가 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신만의 중산층 버전'을 앞다퉈 올리고 있다. '단지'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 네티즌은 "일단 온 가족이 즐길 만한 스포츠를 찾고, 말로만 하던 악기를 배워보기로 했다""우리 가족만의 중산층 기준을 하나하나 만들어가 보겠다"는 글을 올렸다. 'kidae76'이라는 네티즌은 "틈날 때마다 여행 다닐 것,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할 것, 스포츠나 악기를 하나 이상 다룰 것, 정기적으로 진보와 보수 측 잡지나 신문을 구독할 것, 위트가 있을 것, 항상 책과 접할 것"이라고 올렸다.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이런 글이 수십 개씩 올라와 있다.

 

 

[만물상] '중산층 別曲'

 

미국인은 한 해 소득이 75000달러쯤이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지난해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진이 45만명을 대상으로 한 갤럽 조사를 분석해 얻은 결론이다. 연구진은 돈을 펑펑 쓴다고 해서 더 큰 행복을 느끼는 건 아니라고 했다. 사람은 비싼 돈을 주고 산 물건에도 곧 싫증을 내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저택을 사도 기쁨은 첫 한 달뿐이다. 다음 달부터는 그저 몸을 누이는 평범한 ''으로 바뀐다. 연구진은 해마다 75000달러 정도를 벌며 가족·친구와 여가를 많이 보내는 사람일수록 행복하다고 했다.

 

미국 심리학자 에드 디너는 "한국인의 낮은 행복감은 지나친 물질주의 때문"이라고 했다. 130개국을 조사했더니 한국이 미국·일본보다 더 물질적 가치의 영향을 크게 받더라고 했다. 행복은 사람과의 인연을 두터이 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도전하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분명히 인식하고, 하루의 생활에도 만족할 줄 아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돈을 행복의 절대적 전제(前提) 조건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그는 이대로 가다간 한국이 더 부자 나라가 되더라도 마음이 차오르는 기쁨과 여유를 누리지 못할 거라고 했다.

 

요즘 SNS에서 '중산층 별곡(別曲)'이라는 글이 퍼진다고 한다. 우리 중산층 기준을 생각나는 대로 정리한 글이다. '빚지지 않고 30평 넘는 아파트에 살고, 500만원 넘게 월급을 받으며 2000cc급 중형차를 몰고, 은행엔 1억원 넘는 돈을 쟁여두고, 해마다 해외여행 다닐 수 있는 처지'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경제적 여유를 누리기가 녹록지 않은 세상이기에 더욱 더 소득이나 생활 형편을 가리키는 통계 숫자에 좌우되는지도 모른다. 지난 8월 어느 설문조사에서 50%'중산층이 아닌 저소득층'이라고 답했을 정도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났다.

 

'중산층 별곡'은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이 1970년대 초 제시한 '삶의 질' 기준도 소개했다. 한 가지 이상의 외국어와 악기를 익히고 스포츠를 즐기며 자식을 고교까지 보내 자립시키는 것이다.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모국어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악기는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게 한다.

 

심리학에선 인간 욕구에 등급을 매겨 '생리적 욕구' 충족이 가장 낮은 단계라고 한다. 우리 사회는 그 단계를 지나 안전하기, 명예 얻기, 자아실현을 바라는 단계까지 향하고 있다. 중산층 문화는 생존 너머 자존(自尊)의 높이를 지향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행복지수를 화폐에 적힌 숫자로 재려 한다. 행복은 눈에 보이는 숫자가 아니다. 마음의 온도계 눈금이 올라가야 뜨겁게 느낄 수 있는 게 행복이다.

 

<기사내용 : 조선일보 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