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낮은 목소리로]오십에 안부를 묻다

풍월 사선암 2012. 10. 20. 09:13

[낮은 목소리로]오십에 안부를 묻다

 

한상봉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흰 머리카락이 난데없이 늘었다. 늘 청년인 줄 알았는데, 불쑥 쉰 줄에 들어서고, 노안으로 침침한 눈을 자주 비빈다. 애석하게 먼저 이승을 하직한 시인 고정희는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아서, 오히려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 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고 전했다. 그 사십대를 넘어 오십대에 들어서야 뒤늦게 인연을 생각한다.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을 동시에 가늠하면서, 생각해보면 살아온 날들이란, 그 세월의 갈피 속에서 찾아낸 사람들에 대한 기억에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때 그 사람, 그 얼굴들이 삼삼하게 떠오르고 그 말씨와 억양이 귀에 쟁쟁할수록 내 삶에 온기와 촉촉함이 묻어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들 중에는 지금도 교신(交信)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이젠 소식을 알 수 없는 인연도 있다. 소식이 끊어진 벗을 찾아 나서고픈 마음이 들 때, 우린 조금 늙어버린 것이고, 우린 조금 사람다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야 그 사람이 그립지만, 그 사람은 오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 쓸쓸해지는 게 오십대다.

 

악양, 볕 좋은 곳에 사는 시인 박남준은 정리된 사람이란 섬뜩한 시에서 이렇게 썼다.

   

깁고 기워 해묵은 것 낡은 수첩을 바꾼다. 거기 이미 지워져 안부가 두절된 이름과 건너뛰어 다시 옮겨지지 않는 이름과 이제 세상의 사람이 아닌 이름들이 있다. 이 밤, 누군가의 기억에도 내 이름 지워지고 건너뛰고 붉은 줄 죽죽 그어질 것이다.”

 

저도 모르게 기억에서 정리해버린 사람이 있을 법하고, 그도 나를 정리하였을까, 궁금한 사람도 있다. 산골에 숨어버린 시인의 심정은 얼마나 절박했을까. 우리가 수첩을 바꿀 때마다 옮겨지지 않은 이름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당장의 필요에 응답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당장의 필요라는 것조차 시간이 흐르면 해당사항이 달라지고, 그래서 잃어버린 주소와 연락처를 뒤늦게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남는 것은 정말 관계뿐이다. 그 얼굴뿐이다. 수행을 하자고 홀로 암자에 들어앉아 있는 게 아니라면, 호화저택에 들어앉은들 그리운 얼굴을 보는 것보다 행복하진 못할 것이다. 그 사람이 가족이라면 더욱 그러하겠다. 가족이란 내 생애의 처음부터 가장 오래 이해타산 없이 서로 마음을 새기고 기쁨은 물론 아픔마저 운명처럼 나누어 가졌던 사람들이다.

 

수년 전에 지금 내 나이보다 적은 사십대 중반에 둘째 형이 위암으로 이승을 떠났다. 경주에서 포항 가는 길목에 형 묘소가 있다. 무주를 거쳐 경주에 살다 서울로 돌아온 지 벌써 삼년이 넘어가는데, 그동안 묘소를 한번도 찾아보지 못한 자책이 갑자기 일었다. 이십대 중반에 고향을 떠나 객지인 김해에 자리 잡았던 형은 김해에서 인천까지, 먼 거리 탓이겠지만 명절에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십여년 동안 그리 살다보니, 평소에는 잊고 살다가 문득 그 얼굴 떠올리고 다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로 위로했다. 형은 식솔들을 거느리고 김해에서 편안하게 뿌리내리는가 싶더니 병을 얻었다.

 

듣고 보지 않는 그 세월 동안 형에게도 상처가 있었을 것이다. 생애를 할퀴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다급한 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 무조건 받아주고 안아줄 누군가가 필요했을 텐데, 가족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사연 가운데 형은 때로 외로웠을 것이다. 그 형이 가족의 정을 다시 나누게 된 것은 투병 중에서였다. 형은 치료차 전주와 인천에 와서 지냈는데, 이때에야 가족들은 총동원되어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가족지정(家族之情)’을 한꺼번에 채우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럴 때 도움을 주고받는 가족의 모습은 아름답다. 아니 눈물겹다. 서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눈에 선하게 밟힌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우리가 가족임을 지금부터 확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도 느끼게 된다. ‘가족이란 단순히 핏줄을 나누었다는 사실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러니 일상 속에서 늘 안부를 묻고, 서로 그대는 내 사람임을 믿게 해주어야 한다. 마음만으로 부족하고 틈틈이 새새 내 사랑을 표현하여야 한다. 수시로 목소리를 들려주고, 적막한 한 세상 기꺼이 동반하자고 청해야 한다. 내 너를 항시 기억하고 있음을, 그래서 우린 마음으로 크게 부자임을 은근하게 선포해야 한다.

 

예전에 무주 산골에 살면서 적막한 방에 누워 아내와 우리가 지금 죽으면 누군가 애써 찾아와 줄까?”하며, 폭풍우도 아랑곳없이 군말 없이 이유 없이 무조건 우리 얼굴 보자며 찾아와 줄 사람이 누구일까, 일일이 헤아려본 적이 있었다. 처음엔 스무 명쯤 되다가 정말, 정말?”하고 되물으면서 결국 세 사람만 남았다. 그게 내 인생의 반경이다, 그게 내 삶의 수준이다 싶었다. ‘사랑하다 죽어버려라라고 말한 시인이 있지만, 그렇게 죽으면 결코 죽음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다복한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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