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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기피하는 의사들…요즘 의대생 `정재영`에 빠졌다

풍월 사선암 2012. 9. 16. 16:30

수술 기피하는 의사들요즘 의대생 `정재영`에 빠졌다

 

젊은 의사들 돈보다 '삶의 질' 중시마취·방사선·진단의학과도 선호

'고위험·중노동' 외과·흉부외과 썰렁저출산으로 산부인과·소아과 찬밥

 

◀<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최고 경쟁률 > 올해 최고 인기 진료과로 떠오른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전공의들이 서관식 교수(왼쪽 두번째)로부터 기립경사대를 활용한 환자 치료법을 배우고 있다

 

마취과 전문의 강모씨(37)는 지난 6월 수도권의 한 대형병원에서 서울 강남에 있는 척추전문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병원은 응급실이 없어 야간 근무가 없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칼퇴근한다. 강씨는 요즘 저녁마다 가족과 함께 집 주변 공원을 산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한다. 1주일에 사흘은 영어학원에 다니고 주말엔 암벽등반 교육을 받는다.

 

서울 A대학병원에서 진단의학과 레지던트(전공의)로 근무하고 있는 한모씨(29·). 한씨는 작년까지 다른 병원에서 외과 레지던트로 근무했다. 하지만 밤낮 이어지는 야근에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겹쳐 1년간의 경력을 버리고 전공을 바꿨다.

 

의대생들의 전공 선호도가 급변하고 있다. 요즘은 정재영(정신건강의학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마방진(마취과·방사선과·진단의학과)’이 뜨고 있다. 1990년대부터 고액 연봉의 대명사로 불렸던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을 위협하고 있다. 1980년대까지 최고 인기 과였던 소아과, 외과, 산부인과가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과 비교된다. 메스(수술용 칼)를 잡는 진료과의 인기가 떨어진 반면 정시 출퇴근이 가능한 과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젊은 의사들 사이에 삶의 질을 중시하는 풍조가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2012년 전공의 모집 현황에 따르면 정신건강의학과(옛 정신과)162명 정원에 271명이 몰려 167.3%의 높은 지원율을 보였다. 지원율만 놓고 보면 압도적인 1위다. 재활의학과(125.2%), 영상의학과(128.7%) 등도 정원보다 월등히 많은 의사가 몰렸다. ‘마방진의 경우 각각 정원의 92.1%, 100%, 87.2%를 확보했다.

 

2003년 방사선과와 진단의학과가 각각 정원의 45%, 37.2%를 확보한 것에 비하면 10년 만에 두 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반면 수술이 많은 흉부외과는 지난해보다 정원을 줄였는데도 60명 모집에 25명만이 지원, 41.7%의 저조한 지원율을 보였다. 외과·산부인과·비뇨기과 등도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심지어 경북대병원 부산대병원 등의 흉부외과에서는 전공의 지망생이 한 명도 없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외과계열 선호 현상이 심했던 서울대병원은 올해 전공의 모집 결과 6명 모집에 10명이 지원한 재활의학과의 경쟁률이 가장 높았다. 반면 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비뇨기과는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의대생들이 과거 의료계의 꽃으로 불렸던 수술 전공(흉부외과·외과·산부인과 등)을 기피하고 있는 것이다. 강북에 있는 한 병원 영상의학과에 근무하는 전문의 이모씨(34)리스크가 큰 외과계열 전공보다 안정적이고 위험 부담이 낮은 과를 선택하는 게 대세라며 경기 불황으로 개업의 대신 월급쟁이 의사를 선호하는 현상도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현 정부 들어 의료수가가 계속 떨어지면서 전공 간 수입 격차가 크게 줄어든 것도 이 같은 추세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연세대 의료복지연구소는 적정 의사인력 및 전문 분야별 전공의 수급 추계 연구를 통해 2015년 재활의학과·정신과·성형외과·피부과는 20% 이상 공급 과잉이 빚어질 전망인 반면 흉부외과·외과·이비인후과·산부인과는 공급 부족이 심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힘들고 어려운 진료과를 피하는 의사가 많아지면 특정 분야 의사를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시기가 올 수도 있다는 게 의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준혁 기자

 

1500에 아파트 줘도 일 할 사람 없어

 

수술 꺼리는 의대생

올 후반기 전문의 모집 / 서울대병원 외과지원 '0' 지방 대학병원도 마찬가지

산부인과는 이미 '기피 전공과' / '의료계 심장' 흉부외과도 추락

 

'정재영'에 빠지다

최고 인기과는 정신과 / 162명 모집에 271명 지원

재활·영상의학과 수요도 급증 / 평균월급 1500만원5년새 두배 / 응급상황·야근 없어 젊은의사 선호

 

◀최근 마취통증의학과를 지원하는 의대생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현민 강남연세사랑병원 마취과장이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최근 안방극장에는 의사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KBS ‘브레인’, MBC ‘닥터진’ ‘골든타임’, SBS ‘신의’, OCN ‘신의 퀴즈등 지상파와 케이블방송을 통틀어 전파를 탔거나 방송 중인 메디컬 드라마만 5편에 이른다. 이달엔 MBC ‘마의’, tvN ‘3병원등 두 편의 의학 소재 드라마가 또다시 전파를 탔다. 메디컬 드라마가 유행처럼 이어진다. 시청자들은 피 튀기는 수술 장면, 응급 환자의 처치법을 놓고 외과 의사들끼리 다투는 모습 등을 보며 기존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리얼리티를 느낀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드라마와 많이 다르다. 최근 몇 년 새 대학병원에선 메스(수술용 칼)를 선택하는 외과 의사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수술 꺼리는 의대생외과·산부인과 기피

 

지난달 마감한 2012년 후반기 전공의 모집 원서 접수 현황을 분석한 결과 외과 계열은 이른바 5’로 분류되는 대형병원(아산 삼성서울 서울대 가톨릭서울성모 세브란스)조차 미달이 속출했다. 특히 서울대병원은 외과에서 3명을 모집했지만 단 한 명의 지원자도 없었다. 서울아산병원 비뇨기과도 지원자가 전무했다. 세브란스 산부인과(모집정원 5), 비뇨기과(4) 등도 지원자를 찾지 못했다. 서울성모병원은 산부인과(6비뇨기과(7)에서 지원률 제로(0)’를 기록했다.

 

한양대병원, 경북대병원, 부산대병원, 고려대안암병원 등은 흉부외과 지원자가 아예 한 명도 없었다. 의대생들 사이에 명문대 병원이라도 외과 계열은 싫다는 거부감이 확산되고 있는 증거다. 지역병원은 사정이 더 좋지 않다. 심장수술의 대가인 송명근 교수효과로 매년 정원을 채웠던 건국대병원(충주) 흉부외과와 아덴만의 영웅석해균 선장을 수술한 이국종 교수가 재직 중인 아주대병원(수원) 외과 역시 미달 사태를 빚었다.

 

산부인과는 이미 기피 전공과가 된 지 오래고, 최근 들어 비뇨기과도 전문의 배출이 쉽지 않다. ‘5’ 가운데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을 제외하고 모두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전문의 자격 취득 후 개원해도 미래가 불투명하고, 의대생 중 여학생 비율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게 원인이다.

 

최근 1~2년 새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제네릭(복제약)20여종이나 출시되는 등 비뇨기과에 대한 의사 수요가 많을 것 같지만 내과·이비인후과 등에서 비뇨기과 의사가 해야 할 처방(처방료 5000)을 대신 하는 사례가 늘면서 오히려 비뇨기과 폐업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응급상황 없는 정신과 등 인기

 

현재 레지던트 지원율만 놓고 보면 최고의 인기 전공과는 정신건강의학과다. 올해 레지던트 지원 현황을 보면 정신과는 162명 정원에 271명이 지원해 1.67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다른 과에 대한 경쟁률을 압도하는 1위다. 의사 전문 헤드헌팅업체 초빙닷컴(대표 조철흔)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45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정신과 전문의 평균 월급은 1423만원에 달했다. 2007(885만원)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액수다.

 

충남 전남 경북 등의 지방병원에선 정신과 전문의 월급이 2000만원을 넘는 곳도 있다.

 

정신과 전문의 몸값이 급등한 것은 우울증 치매 등 정신질환자 수가 해마다 증가하면서 수요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 보건복지부는 국내에서 정신질환 치료를 받은 환자 수가 2004193만명에서 2006225만명2008256만명, 2010284명으로 연평균 7.5%씩 증가한 것으로 추산했다.

 

전국 수련병원의 정신과 레지던트 지원율도 전체 진료과목 중 최고다. 지난해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성모병원은 5·10명 모집에 각각 10·22명이 지원하는 등 2 1이 넘는 경쟁률을 보였다.

 

서울대병원도 지난해 정신과 레지던트 9명 모집에 18명이 지원, 전체 평균을 앞질렀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과 교수(44)지방 중소도시의 경우 승용차와 아파트를 제시해도 정신과 의사를 구하지 못하는 사례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재활의학 전문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교통사고 뇌졸중 심장병 등으로 후유증을 겪는 환자가 증가하고 재활·요양병원이 수도권 또는 대도시 외곽에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05700~800만원이던 월급 수준이 최근에는 1300~1500만원으로 배 가까이 상승했다.

 

영상의학과도 마찬가지다. 정형외과 산부인과 내과 외과 등이 전문병원으로 탈바꿈하면서 수술 전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촬영검사와 판독을 늘리자 수요가 크게 늘었다.

 

마취과와 방사선과, 진단의학과에 대한 인기도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촌의 한 병원 진단검사의학과에 근무하는 전문의 임모씨(35)야근이나 응급 상황이 없고 의료기기에서 나오는 검사 결과만 해독하면 되기 때문에 다른 의사들에 비해 편하다수술에 대한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외과 등은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이 워낙 크다. 과거처럼 외과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한경 / 입력: 2012-09-14 / 이준혁/이해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