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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대장과 오르는 山 - 관악산

풍월 사선암 2012. 9. 14. 18:32

엄홍길 대장과 오르는

산마루 태극기 안고 애국가를 불렀다, 그것도 4절까지

관악산

 

◀엄홍길 대장이 지난 5일 관악산 학바위 국기봉에 올라 휘날리는 태극기를 잡고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엄홍길(52·밀레 기술고문) 대장과 산행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가장 고민스러운 게 올여름 날씨였다. 무더위야 여름이니 그러려니 했지만 잦은 비와 태풍이 문제였다. 우중(雨中) 산행도 나름 묘미가 있었지만 사진 촬영이 힘들어 소위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베테랑 사진기자와 동행했지만 예측 불허의 날씨와 폭우로 제대로 된 산 사진이 나오지 않았다.

 

엄 대장은 인간이 자연에 맞설 수는 없죠라며 산은 언제 어느 곳에서 보고 찍어도 좋지 않나요라고 반문하며 산 예찬론을 펼쳤다. 하지만 사진기자의 욕심은 그렇지 않다. 엄 대장에게 그림이 되는 산을 부탁했다. 그랬더니 불현듯(?) “독도를 가자고 한다. 그는 최근 일본이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명)인가 뭔가라면서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며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를 하겠다는 등의 얘기를 하는데, 우리가 독도가 우리 땅임을 세계에 입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 모두 직접 독도에 자주 가는 일이다면서 독도행을 제의했다.

 

엄 대장의 갑작스러운 제의가 반갑기도 했지만 서로의 일정상 독도행을 감행하기에는 무리였다. 일정상 곤란함을 파악한 엄 대장은 그럼 태극기를 흔들러 가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독도행대신 떠오른 곳이 관악산의 국기봉 순례였다.

 

최근의 사태(독도, 올림픽에서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 등)가슴이 울렁거리고 화가 치민다고 울분을 토하던 엄 대장도 국기봉 순례에 흔쾌히 동의했다. 목표는 관악산과 삼성산에 설치돼 있는 국기봉 11개를 모두 돌아보고 오는 것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관악산의 국기봉 순례는 생각만큼 만만치 않았다. 우선 코스가 장거리다. 제대로 순례를 하자면 10시간 이상의 코스다. 요즈음 종주 산행마니아들 사이에 이 코스를 3시간45분에 주파한 기록이 전설처럼 전해지지만 일반적으로 12시간여가 걸리는 힘든 코스다. 도상 거리로만 무려 27에 달한다.엄 대장에게 감히(?) ‘갈 때까지 가보자면서 순례를 감행한 날은 태풍 볼라벤덴빈이 다행히 서울을 비껴간 지난 5일이었다. 출발은 교통 편의상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뒤쪽이었다.

 

이날 서울대 뒤 제4야영장을 거쳐 학바위국기봉까지 단숨에 올라 태극기를 양팔에 거머쥔 엄 대장은 초딩(초등학교 학생)’처럼 해맑은 표정이었다. 그러곤 갑자기(?)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4절까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중략) 이 기상과 이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기자도 오랜만에 애국가를 4절까지 불렀다. 학바위에서 잠시 숙연했던 분위기는 엄 대장의 또 다른 노래로 반전됐다. 그는 태극기가 바람에 힘차게 날리는 모습을 보고는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라며 동요를 힘차게 불렀다. 엄 대장은 산 정상에서 태극기를 흔든 것이 5년 만의 일이라고 했다. 그가 히말라야 8000m 고봉 16좌 완등의 마지막 봉이었던 로체샤르 남벽을 올랐을 때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또 히말라야 얘기가 시작됐다.

 

그가 히말라야 고봉 완등의 마지막으로 생각했던 로체샤르(해발 8392m)는 주봉 로체(8516m)의 위성봉이었다. 그러나 로체샤르는 엄 대장이 ‘45만에 등정에 성공했던 안나푸르나(8091m)만큼이나 희생을 강요했다고 한다. 그는 로체샤르 등정에서 사랑하는 후배 2명을 잃었다. 박주훈과 황선덕이었다. 로체샤르에 두 번째 도전했던 2003년 가을이었다. 당시 다섯 명이 함께 정상에 도전했는데 엄청나게 내린 눈 때문에 로프를 카라비너(연결 고리)에 통과만 시킨 상태에서 박주훈이 골짜기로 떨어졌다. 정상을 불과 150m 앞두고 당한 변이었다. 엄 대장은 주훈이와 선덕이는 나의 16좌 완등을 기념하기 위해 따라나섰던 용감하고 갸륵한 후배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선덕이와 주훈이의 죽음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죠. 귀국 후에도 나의 욕심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만 같아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엄 대장은 그후 2년여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후배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은 오로지 로체샤르를 정복해 히말라야 16를 완등하는 길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2007년 봄, 정확히 531일 오후 10시쯤 난공불락의 로체샤르 남벽 정상에 태극기를 꽂았다.

 

5년 만에 당시를 회상하며 태극기를 흔들었다는 엄 대장은 히말라야 정상에서 태극기를 흔들었던 마음으로 우리의 산하는 물론 일본으로부터 독도를 지키는 데 앞장서겠습니다독도 및 한반도 산 지킴이를 자임했다.

 

이름에 악()자가 들어가면 험한 산으로 알려져 있다. 관악산(冠嶽山)은 조선시대부터 ‘5()’의 하나였다. 중국에 있는 5(타이산(泰山헝산(衡山쑹산(嵩山화산(華山헝산(恒山))에 빗대 우리도 백악산(白嶽山·현재 북악산)을 중앙으로, 관악산을 남악, 치악산(雉嶽山)을 동악, 감악산(紺嶽山)을 북악, 송악산(松嶽山)을 서악으로 정했고 사계절마다 제를 올렸다. 관악산은 한양의 화산(火山)이었다. 그래서 예전부터 서울에 큰 불이 나면 항상 관악산을 걸고 넘어졌다. 일제강점기인 19292월 한 신문에 경성에 화재가 빈발하는 것이 수년 전 총독부가 해태상을 치웠기 때문이다는 기사가 실렸을 정도다. 최근 남대문 화재 때도 광화문 복원 과정에서 해태상을 치워 재난이 발생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화산이라 그런지 뾰족하게 솟은 바위들이 적지 않다.

 

문화일보 : 20120914() / 박광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