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소년범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풍월 사선암 2012. 8. 13. 17:08

김귀옥판사에게 듣는 소년범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아이들은 잠시 흔들릴 수 있어요.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건 부모를 포함한 우리 어른들의 몫이죠"

 

'무서운 10'라는 말을 요즘만큼 절감했던 때가 없던 것 같다. 고등학생들이 유흥비 마련을 위해 중학생을 집단 폭행하다 숨지게 하고 초등학생을 납치해 성매매를 시킨 중학생들이 붙잡히기도 했다. 날로 흉포화 되어가는 청소년 범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요즘,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청소년 범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보듬어야 할지 소년전문법관 김귀옥 판사에게 들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 질책 대신 책임감 느껴야

 

소년범들을 사회의 피해자로 바라보고 무거운 처벌 대신 따뜻하게 포용하는 판결로 유명한 서울가정법원 김귀옥 부장 판사.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녀는 판사의 위엄보다 다정한 선생님의 모습이었다. 살인과 강도, 성폭행, 방화 등 최근 청소년 강력 범죄가 눈에 띄게 늘어난 이유에 대해 묻자 그녀는 단호하게 말을 꺼냈다.

 

"그게 우리 사회의 모습 아닌가요? 청소년 범죄뿐 아니라 성인 범죄도 날로 흉포화 되고 있어요. 경제적인 사정이 다들 안 좋잖아요. 부모들이 경제활동 하느라 바쁘다 보니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고 가정과 학교에서 소외된 아이들은 서로에게 의지해 모여 다니게 되죠.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저지하고 바로잡을 사람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아이들이 잘못을 했을 때는 되도록 빨리 그 자리에서 바로잡아야 한다. 그 순간을 놓치면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부모라면 누구나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시간과 생활에 쫓기다 보면 잘못을 바로잡기는커녕 아이들의 일과를 파악하기도 힘들다.

 

"비행을 저지른 아이들의 경우 주변에 잘못을 일러줄 어른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물론 행동을 저지른 당사자의 잘못이 크죠. 하지만 그 밑바닥을 살펴보면 아이들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아이들은 백지 상태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유해 환경에서 폭력성과 선정성을 그대로 흡수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데 거리낌이 없다. 매일같이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미디어에서 쏟아져 나오는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아이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확률은 희박하다. 어른들이 청소년 범죄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아이들의 잘못을 꾸짖어줄 어른이 없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무서운 10'라는 말은 곧 '무서운 게 없는 10'라는 말과 통한다.

 

"요즘 재판에서 아이들을 만나보면 중학생 또래 아이들은 무서운 게 없어요.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경험을 통해 자기 나름의 기준이 서 있어요.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는데, 중학생들은 몰라요. 일행으로 몰려다니다 보면 잘잘못을 가르는 감각이 없어지는 거죠."

 

대부분의 청소년 사건은 공범이 많다. 자신의 아픔을 이해해주고 같이할 수 있는 상대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가까워지게 되고 행동 역시 비슷한 패턴을 보이게 된다. 서로의 행동을 제재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죄책감 또한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여럿이 행동하며 행위의 타당성을 얻는 것이다. 청소년 집단 성폭행 사건 등 청소년 집단 범죄가 많은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대부분 맞벌이인 요즘 가정에서 부모가 일일이 아이를 따라다니며 보살피기가 쉽지 않다. 이사나 전학을 통해서 그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아이 문제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할 만한 여유가 요즘 부모들에게 많지 않다는 것. 심지어 아이 때문에 경찰서를 오가느라 직장에서 잘렸다며 하소연하는 부모도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악순환은 계속된다.

 

"아이들의 문제는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보호자와 학교, 우리 사회의 문제라는 걸 잊지 마시고 책임감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청소년은 아무것도 단정 지을 수 없는 시기,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서울고등법원과 동부지법을 거쳐 지난해부터 서울가정법원에서 소년사건을 맡아온 김 판사는 청소년 범죄에 있어 단죄보다는 치유 중심의 판결을 내려왔다. 집단폭행의 후유증으로 절망에 빠져 탈선한 여학생에게 보호처분 대신 스스로 자존감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판결은 사람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이 많이 성숙 하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의 규범을 잘 몰라요. 어떤 것이 금지돼 있고 어떤 것이 허용되는지, 어른들에게는 무척 쉬운 일이 아이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어요. 그것만 제대로 알려줘도 바로설 수 있는데 꾸짖고 벌을 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에요."

 

최근 들어 '따뜻해진 소년재판부'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이러한 영향이 크다. 요즘같이 소년 범죄가 흉포화 되는 시기에 너무 안일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대부분의 청소년 범죄가 환경적인 요인에서 비롯되는 것을 볼 때 아이만 탓하고 벌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김 판사의 생각이다. 오히려 어른들에 대한 반감을 높이고 사회로부터 마음을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

 

소년 범죄가 성인 범죄와 다른 점은 개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19세 이상 성인의 경우 이미 독자적인 자아가 형성된 상태이기 때문에 범죄 개선 가능성이 낮은 반면 아이들은 환경을 바꿔주거나 교육을 통해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

 

"소년범들에게는 사이코패스라는 말을 쓰지 않아요. 그 시기에는 아무것도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이 자라며 골격이 변하듯 생각이나 행동도 변할 수 있어요.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잖아요. 정말 바람과 같이 나타났다 바람과 같이 사라지는 시기예요. 보통 15~17세에 탈선이나 비행이 가장 많은데 대부분 그 시기를 넘기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져요. 철이 드는 거죠. 그 이후에도 그러한 행동이 계속된다면 비행성으로 완전히 굳어질 확률이 높아요. 그 이전까지는 얼마든지 개선 가능성이 있어요. 제대로 된 환경을 만들어주고 잘못을 바로잡아주는 게 중요하죠."

 

소년보호재판은 이러한 개선 가능성에 핵심을 둔 특별 절차다. 범죄 처벌이 아닌 청소년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재판이기 때문에 판결 대신 보호처분을 내린다. 1호부터 10호까지의 보호처분에는 부모와 함께 강의를 듣거나 사회봉사 보호감찰, 민간위탁기관 교육, 상담과 입원치료 등 다양한 처분이 있다. 물론 소년원으로 보내지기도 한다. 처분의 기준은 물론 범죄 내용이 고려되지만 어떻게 해야 개선 가능성이 커지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나라의 만 10세 이상 19세 미만 소년범들은 이와 같은 보호처분을 받는다.

 

"케이스는 다양해요. 작은 사건으로 와서 크게 치르고 가는 경우도 있고 큰 사건으로 와서 작게 치르고 가기도 해요. 개선 가능성에 달린 거죠. 아이들이 철드는 계기는 정말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어요. 부모가 될 수도 있고 혹은 학교 선생님, 사회가 될 수도 있죠. 소년법정은 그중 하나일 뿐이에요. 법정에서 그러한 계기를 만들어주었다고 하더라도 주변의 도움이 없으면 금방 되돌아와요. 누군가 계기를 마련하고 아이가 변할 준비가 됐고 부모도 아이를 도와줄 준비가 됐을 때 비로소 아이는 바로 섭니다. 재판은 그 시작을 마련할 뿐이에요."

 

아이들의 상처 어루만지는

화해권고제도와 심리상담제도

 

소년전문법관으로 아이들을 만나며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아이들의 변화를 확인할 때다. 전에 비해 확연히 줄어든 재범 발생률을 비롯해 어두운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섰던 아이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점점 밝은 모습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 안도하는 마음과 함께 재판 과정에서의 고생이 한순간에 씻겨 내려가는 듯하다.

 

"소년재판은 형사재판처럼 기준에 맞춰 처벌만 내리는 재판이 아니에요. 형사사건이 수사를 한다면 소년사건에서는 조사를 해요. 형사사건에서 수사의 대상이 범죄 내지는 사건이라면 소년사건에서 조사의 대상은 사람이에요. 사건 자체는 경미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슈퍼마켓에서 빵을 훔쳐 법정에 온 아이를 조사해보면 빵을 훔친 행위는 발각된 것일 뿐 그 바탕에는 또 다른 사건을 발생시킬 수 있는 환경이 있어요. 집안 환경과 부모의 보호 능력, 형제자매의 수, 학교에서의 생활태도, 교우들과의 관계 등 충분한 환경 조사가 이루어져야 그 아이에 대해 알 수가 있는 거죠. 죄의 유무와 형태도 다루지만 그보다는 아이를 둘러싼 환경이 어떤지, 이 아이를 바로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춰요. 아이의 인생이 걸린 문제이니만큼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고 세심하게 판결을 내려야죠."

 

서울가정법원에서는 지난해 6월부터 비교적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소년재판에 또래 청소년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청소년 참여법정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 청소년 문제 전문가인 화해권고위원들이 피해 청소년, 가해 청소년과 함께 대화하면서 갈등을 해소하는 화해권고제도와 정신과의사, 심리학자,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심리상담 조사위원이 다각상담을 진행하는 심리상담제도도 함께 운영되고 있다. 처벌보다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동시에 피해 청소년의 정신적 상처 회복에 관심을 둔 제도다. 범죄를 저질러 법원에 오게 된 소년이 화해권고나 심리상담을 통해 개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면 재판부는 재판을 열지 않는 '심리불개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대부분의 소년보호사건은 사소하게 시작됐다가 오해가 커지면서 문제가 돼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쳐다본다고 때리는 경우도 많아요. 맞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억울하죠. 얼마나 하고 싶은 얘기가 많겠어요. 물론 피해자가 의견을 진술할 권한은 있지만 실제로 피해자들은 법정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요. 가해 소년이 처벌을 받더라도 정작 피해를 입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보복을 두려워하며 또 다른 상처를 안게 돼요. 화해권고제도는 당사자들이 직접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오해를 푸는 자리예요. 가해 소년은 진심으로 사과하며 잘못을 느끼고 피해 소년은 그로 인해 상처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공개 석상에서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가 상처를 아물게 해요."

 

재판뿐 아니라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그녀가 느끼는 것은 아이들은 연약한 존재라는 것, 그리고 환경에 따라 변화가 가능한 존재라는 것이다. 때문에 어른들의 책임이 더욱 막중하다.

 

"소년부에 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가정환경이나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아요. 특히나 요즘은 환경이 풍족해도 부모가 부모 역할을 못하는 '기능적 결손' 가정이 많아요. 부모와 학교 그리고 사회의 여러 전문가들이 연결되어 잘못된 환경을 바꿔줘야 해요. 아이의 성격이나 성향을 교정하는 것만으로는 비행문화와 멀어질 수 없습니다. 아무리 보호처분을 해도 집에 돌아가면 그대로니까요. 아이 혼자 하루아침에 개과천선하길 바라지 마세요. 아이들이 바뀌길 요구하기 전에 어른들이 먼저 바뀌어야 해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관리'가 아닌 '교감'

 

고등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4학년 두 딸을 둔 그녀 역시 딸의 사춘기를 겪은 대한민국 엄마들 중 하나다. 사춘기 자녀 때문에 속을 끓이는 부모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말도 못 붙이게 하고, 방문도 걸어 잠그고, 저도 엄청 고생했어요. 도대체 이 아이가 왜 이럴까 고민도 많이 하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죠. 그때 제가 느꼈던 것이 어린 시절 부모와의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거예요. 엄마 아빠는 항상 너를 사랑하고 지켜보고 있다, 네가 위험한 상황에 놓이면 엄마 아빠가 도와줄 것이다라는 걸 끊임없이 확인시켜주고 신뢰관계를 형성했다면 겉으로는 질풍노도지만 내면에서는 제어가 돼요. 어릴 때 부모가 정해준 행동범위가 남아 있는 거죠. 아이들은 자신과 신뢰관계를 형성한 이에게는 배반하지 않거든요. 재판을 하며 '공부 잘하는 거 다 필요 없다, 바르게만 자라다오'를 얼마나 외치는지 몰라요. 공부 잘하는 것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아이는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제어가 안 돼요."

 

아이가 탈선의 길로 접어들었다 싶으면 일단 한발 물러서라는 것이 그녀의 조언이다. 같이 싸우다 보면 상처만 더 커진다. 판사로서뿐 아니라 엄마로서 아이를 겪으며 터득한 교훈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부모를 시험해요. 부모가 제일 아파하는 부분을 건드려 화를 내게 만드는 거죠. 그 싸움에 말려들어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안 돼요. 서로 상처 입고 관계만 더 나빠져요. 부모는 아이에게 조언을 해 아이가 달라졌으면 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부모의 입장입니다. 오히려 한발 물러나는 게 좋아요. 아이와 싸우겠다 싶으면 그냥 조용히 문 닫고 나오세요. 아이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세요."

 

아이와의 소통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면 청소년 관련 상담센터나 아버지학교, 건강가정지원센터 등을 찾아 전문가와 이야기해볼 것을 추천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 분명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일거수일투족을 꿰고 있다고 해서 아이를 다 아는 건 아니에요. 아이와 자주 스킨십하면서 믿음을 주세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관리'가 아닌 '교감'입니다. 아이들은 잠시 흔들릴 수 있어요.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건 부모를 포함한 우리 어른들의 몫이라는 거 잊지 않으셨으면 해요.“

 

레이디경향 노정연 기자 입력 2011.06.07

 

김귀옥 판사

출생 / 196319

학력 / 1978 - 1981 명성여자고등학교 / 1981 - 1985 고려대학교 법학과 (학사)

경력 / 2008 - 서울동부지방법원 판사 / 2010 -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