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의 쉼터/고향사선암

무주로 떠난 여행 중 만나게 된 제1경 나제통문(羅濟通門)

풍월 사선암 2012. 7. 13. 10:38
- 나제통문(羅濟通門) -

 

무주에 가면 구천동을 품고 있는 덕유산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이곳은 봄이면 철쭉꽃이 지천으로 깔리고 여름이면 마음마저 시리게 하는 계곡물. 가을이면 화려한 단풍으로 겨울이면 구상나무 가지마다 피는 고산설화로... 계절마다 대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곳.. 사시사철 아름다운 무주구천동을 다녀왔습니다.

 

여기 무주구천동은 33경으로 이어지는데 그중 나제통문(羅濟通門)은 신라와 백제인들의 민족적인 친선 교류의 역할을 해온 빛나는 역사의 문으로 알려졌으며, 그중 제1경으로 꼽히는 나제통문을 먼저 소개합니다.

 

 

나제통문은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 입구의 경승지랍니다. 현재 덕유산(德裕山)국립공원 경역(境域)에 들어 있습니다. 나제통문은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와 장덕리 사이의 암벽을 뚫은 높이 3m, 길이 10m의 인공동문(人工洞門)으로 구천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습니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던 곳이며, 고려 시대까지 행정구역의 경계가 되어오다가 공양왕 때에 이르러 동문 밖의 무풍현이 동문 안의 주계군에 합쳐졌으며 1413(태종 13)에 현재의 무주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저도 나제통문을 걸어서 양쪽을 모두 지나가 보았답니다. 저 거대한 바위를 뚫었다는 것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옛날에는 이 문을 경계로 신라와 백제로 나뉘어서 혹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고 하던데 실지는 통문 양쪽 모두 무주의 땅이랍니다.

 

원래 무주가 각각 다른 나라에 속해 있다가 합쳐진 곳이고, 신라가 삼국 통일한 뒤에는 이곳이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르는 경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통문은 일제 강점기에 신작로를 놓으면서 뚫린 것이라고 알려졌으나 정확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지금도 이 통문을 사이에 두고 같은 무주에 속해 있으면서도 말투가 다르고 제사나 풍속도 판이하게 다르다고 합니다. 지금도 장날에 양쪽 지역을 돌아보면 사투리만 들어봐도 무풍과 무주사람을 쉽게 구분할 수 있답니다. 오래전에는 서로 통혼도 하지 않았다고 하니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언어와 풍습에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을 보면 확연히 다른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는 곳입니다.

 

나제통문의 동쪽은 본래 무풍현, 서쪽은 주계현의 땅이었는데 조선 시대에는 이것이 합쳐져 무주현으로 불리게 되었고 지금은 같은 무주 땅이고 소천리에 속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석굴을 뚫어 인위적으로 관통시킨 곳이라는데 이곳에는 삼국시대와 관련된 유적이나 전설도 많답니다. 신라 김유신 장군이 왕래하였다 하여 통일문이라고도 불렸다고 합니다.

 

부근의 야산에 산재한 약 3백여 기의 고분은 신라와 백제 간에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한 장병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며, 파리 소()라는 연못은 양국의 격전 시에 시체가 산처럼 쌓여 파리가 모여들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기도 한답니다.

 

바위에 새겨진 나제통문. 통문 양쪽에 모두 새겨져 있습니다. 신라와 백제... 한 글자씩 따서 이름이 된 나제통문 [羅濟通門]

  

 항시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인데 내가 갔던 날은 소나기가 지나간 뒤라서 이렇게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통문 바위 위에서 자라는 나무들은...저 작은 통문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를 알고 있을까?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무주구천동은 첩첩산중 깊은 골짜기를 연상하게 되는 곳... 9천 굽이 계곡에 천 가지 넘는 풀과 나무가 있는 곳이라 해서 구천동이라 불렸다는데.. 이제 제1경을 만났으니 나머지 비경들을 만나러 가봅니다. 구천동은 물소리와 바람결이 끊이지 않은 길을 따라가다가 길옆에 멈추는 곳마다 그곳에 절경이 있는 곳이랍니다.

 

草熙 윤영초시인의 詩사랑..그리고 여행...  <원글보기> http://blog.daum.net/flyyc/14678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