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의 쉼터/고향사선암

무주 적상산 / 역사의 아픔 품어준 넉넉한 엄마 치마품

풍월 사선암 2011. 11. 15. 13:26

역사의 아픔 품어준 넉넉한 엄마 치마품

 

[머니위크]민병준의 길 따라 멋 따라/무주 적상산

   

무주읍 남쪽에 솟은 적상산은 산 전체가 층암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가을 단풍이 들면 마치 여인의 치마와 같다는 산이다. 올 단풍은 아쉽게도 예년보다 예쁘진 않지만 그래도 낙엽 휘날리는 적상 그 품에 들면 늦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커다란 덩치의 덕유산(德裕山, 1614m)이 백두대간의 권위로 무주고을을 지켜봤다면, 덕유산에서 갈라져 나온 적상산(赤裳山 1029m)은 무주고을 가까이에서 무주주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 산이다.

 

그래서 무주 주민들에겐 덕유의 백련사보다 적상의 안국사가 더 정겹고, 먼빛의 덕유보다 가까운 적상을 더 사랑했는지 모른다. 전쟁 때 이들이 숨어살던 산성도 여기에 있고, 섬나라나 대륙에서 침략자들이 건너 왔을 때도 적상은 피난민들을 보듬어줬다.

 

◀적상산전망대 조망

 

사방이 절벽천혜의 요새 같은 적상산

 

적상산은 언뜻 보아도 천혜의 요새다. 사방은 천애절벽인데 정상 부근엔 사람이 살만한 분지도 있다. 여느 산성보다 수량도 많아 옛 기록을 보면 연못이 4군데요, 샘이 23곳에 이른다 했다. 고려 말 최영의 눈에 띄어 전략 요충지로 인정을 받은 뒤 세월이 흘러 석성이 쌓였다. 그 후 성안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사고도 세워지고 절집도 들어앉았건만 20세기 말엽에 양수발전소가 생기면서 옛 자취는 훼손됐다.

 

무주양수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세운 적상댐이 그것이다. 산 정상의 분지에서 북창마을로 흘러내려가는 협곡만 막으면 낙차 수백미터의 댐이 하나 뚝딱 생기니 욕심을 부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곳에 상부댐을 짓고 적상호라 부르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많이 변했다. 사고를 지키던 승병의 안식처로 지어졌던 안국사는 물이 들어차게 되자 위쪽의 호국사지 근처로 옮겨갔고, 실록을 보관했던 사고지도 자리를 호수 위로 이전했다.

 

1277년에 창건되었다는 안국사는 700여년 동안 머물던 보금자리를 떠나 1988년에 이전 작업을 시작했는데, 1993년 칠월칠석날 새로운 금당에 부처님을 봉안하는 첫 예불을 올렸다. 세월이 약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제법 고찰의 분위기도 풍긴다. 20년도 안 된 기간에 이런 정취를 풍기는 까닭은 극락전 주춧돌과 기둥 등 재료를 대부분 예전 것을 그대로 쓴 덕인지도 모른다.

 

적상산 최고의 조망처는 안국사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안렴대(按廉臺). 안국사 해우소 쪽으로 난 부드러운 길을 따라 산책하듯 20여분 걸으면 안렴대에 닿는다. 적상산 남쪽 층암절벽 위에 위치한 안렴대는 사방이 낭떠러지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 조망이 좋고 낙조도 일품이라 안렴대가 실질적인 적상산의 정상 역할을 한다. 안렴대라는 이름은 고려시대 거란이 침입했을 때 삼도(三道) 안렴사(按廉使)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병자호란 때는 적상산사고의 실록을 이 바위 밑에 있는 석실로 옮겨 난을 피했다고 한다.

 

서창 쪽 적상산성 서문지 근처엔 최영 장군이 산세를 살피러 오르다가 길을 내기 위해 칼로 내리쳤다는 장도바위가 있다. 탐라를 정벌하고 돌아가던 길에 적상산을 보고 그 견고한 산세에 반해 산성을 세우자고 상소했던 최영 장군. 그 후 이곳에 지어진 적상산성이 고려를 무너뜨린 조선 왕조의 실록과 왕실 족보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안국사 목조 아미타 삼존불

 

산 정상 부근의 안국사까지 승용차로 접근 가능

 

적상산은 원래 바위도 많고 험한 산이지만, 양수발전소가 만들어지면서 생긴 도로를 따라 승용차를 이용하여 산 정상 가까이에 위치한 안국사까지 올라갈 수 있다.

 

적상산 중턱에 있는 머루와인동굴은 최근 인기가 급상승한 관광지다. 길이 270m의 인공 동굴인 이곳에서는 무주의 대표적인 특산품인 머루와인의 숙성·저장·판매가 이뤄진다. 연중 13~17의 온도가 유지되는 동굴 내부에는 무주의 와인생산업체인 칠연양조, 샤또무주, 산림조합, 덕유양조 등의 와인이 약 2만병가량 저장되어 있다. 또한 입장객은 무료로 와인을 시음할 수 있으며 일반 판매점보다 싼 가격으로 와인을 구입할 수도 있다. 입장료 2000.

 

적상산 상부댐 근처에 있는 적상산사고지(전라북도 기념물 제88)는 우리나라 5대 사고 중 하나. 1910년 경술국치 후 일본인들이 적상산사고의 실록을 서울의 규장각으로 옮기면서 폐지되었다. 적상산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서책들은 1910년 이후 일제에 의하여 왕실 규장각으로 옮겨졌다가 6·25전쟁 때 북한으로 반출됐는데, 현재 김일성종합대학 도서관에 보관 중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현재 <조선왕조실록> 복본 34(왕조별로 1권씩 27, 무주에 관한 기록 7)과 왕실 족보인 <선원록> 복본 5권을 제작해 비치했다. 또 실록 제작·편찬과정 및 옮기는 과정 등을 담은 22종의 전시패널도 설치했다. 무주군청 소속의 문화관광해설사가 관람객에게 적상산사고의 역사적 가치와 조선왕조실록에 대해 알기 쉽게 해설해준다.

 

한편 적상호 옆에 위치한 적상산전망대도 적상산 관광의 명물로 꼽힌다. 이곳에 오르면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은 물론이요, 북덕유에서 남덕유까지 장엄하게 펼쳐진 백두대간 하늘금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또 적상산 아래의 하부댐의 모습도 손을 뻗으면 잡힐 정도로 선명하다.

 

◀적상산전망대(맨위), 머루와인동굴

 

여행수첩

 

교통 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무주 나들목(우회전)무주읍안국사 <수도권 기준 3시간 소요>

 

숙박 무주 읍내에 덕화리버사이드모텔(063-322-6900), 라제파크(063-324-9002), 무주그린모텔(063-322-7231), 무주이리스모텔(063-324-3400)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별미 읍내 군청 근처에 자리한 금강식당(063-322-0979)은 어죽이 유명하다. 또 무주읍 내도리 강변유원지인 앞섬교 근처의 큰손식당(063-322-3605), 섬마을(063-322-2799), 강나루(063-324-2898)에선 쏘가리매운탕, 빠가매운탕, 어죽 등을 맛볼 수 있다. 어죽 6000, 쏘가리매운탕 4~6만원, 빠가매운탕 35000~4만원.

 

참조 무주군청 문화관광과 063-320-2544~5, 무주 관광안내소 063-324-2114

 

민병준 여행작가 / 입력 : 2011.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