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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의 ‘담쟁이’ 詩 교과서에서 빼라는 이유

풍월 사선암 2012. 7. 10. 09:53

도종환의 담쟁이교과서에서 빼라는 이유


[뉴스비평] “정치 중립성 훼손 우려문재인 후보 담쟁이 포럼의식한 듯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내년부터 개정되는 중학교 교과서에서 시인도종환(58) 민주통합당 의원의 작품을 뺄 것을 권고(?)해 말썽이 일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교과부 산하로 검정교과서를 심사하는 국가기관이다.

 

교육과정평가원은 9일 검정심사를 통과한 중학교 국어 교과서 16종에 대한 수정·보완 의견을 출판사에 보내면서 이 중 도종환 의원의 시와 산문 작품이 실린 8개 출판사 교과서에 도 의원의 시를 다른 시로 교체해 줄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시인이자 교사 출신인 도 의원은 1986년 시 접시꽃 당신을 발표하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며, 2002년부터는 중·고교 국어 교과서에 담쟁이’, ‘흔들리며 피는 꽃’, ‘어떤 마을등의 시와 산문이 실렸다. 논란이 되고 있는 도 의원의 담쟁이시 전문은 다음과 같다.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사직터널 입구의 모습. 진실의길


이런 시를 두고 평가원 관계자는 도 시인이 현역 정치인인 만큼 교과서 내용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교과목 별 편찬상의 유의점 및 검정기준을 보면 교육의 중립성 유지라는 항목이 있는데 현역 국회의원의 경우 정치적 중립성을 감안해 수록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평가원측의 주장이 원칙론적인 면에서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이같은 조치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해 보인다. 우선 이같은 원칙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오래전부터 관행으로 정착돼 있어야 했다. 그러나 5공 시절 민정당 전국구 의원을 지낸 김춘수 시인의 작품은 그간 단 한 번도 이런 일로 논의된 적이 없었다.

 

도 의원의 시가 논란이 된 것은 그가 국회의원이 돼서라기보다는 그가 최근 통합민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문재인 고문 캠프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는 점, 또 문 캠프의 외곽 싱크탱크 조직의 명칭이 담쟁이 포럼인 점 등이 눈에 거슬린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도 의원의 담쟁이시는 은연중에 문 고문을 연상시킬 수 있다고 본 듯하다. 문 고문은 지난달 17일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하면서 선언문 말미에 담쟁이시 끝구절을 인용한 바 있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우리 모두 담쟁이처럼 서로 두 손 꽉 잡고 벽을 넘읍시다. 특권의 벽, 차별의 벽, 분단과 분열의 벽, 패배주의의 벽을 넘읍시다. 저 문재인과 함께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엽시다.”

 

도 의원이 친노진영과 가까운 사이인 건 맞고 그런 인연으로 국회에 진출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만으로 작가의 작품을 정치적으로 해석한다면 이승만, 전두환 찬양시를 미당 서정주 시인의 작품은 물론 육영수 여사 관련 책을 펴낸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작품도 교과서에 싣는 것은 재검토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단 문인뿐만 아니라 소설가, 화가, 음악가 등 예술인 전반에 걸쳐 논의를 해봐야할 것이다.

 

평가원측의 조처에 대해 도 의원이 부이사장을 지낸 한국작가회의는 정치적 탄압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시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은 현역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로 도 시인의 시가 실린 출판사에 공문을 보내 이를 모두 삭제할 것을 요구한 것은 시계가 박정희 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일’”이라며 “5공화국 시절 김춘수 시인이 민정당 전국구 의원이었는데 그의 시 이 교과서에서 삭제됐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이어 교과서 수록시는 특정한 정치이념이나 종교, 인종에 대한 편견을 주장한 것들은 엄격히 규제되고 있지만 도 의원의 시는 서정시의 품격을 유지하고 있다그런데도 도 시인의 시를 모조리 삭제하라고 하니 이는 특정 시인 죽이기이며 나아가 야당 정치인에 대한 정치 탄압이자 학생들의 문학 작품 향수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한국일보>9일자 사설에서 정치인이 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사람 작품까지 아예 교과서에서 빼야 한다는 발상은 이해하기 어렵다교육평가원의 잣대대로라면 교과서에 실을 수 있는 시와 소설, 그림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무리 봐도 교육평가원의 특정인 작품 배제 요구는 과잉반응이라고 지적했다. 적절한 지적이라고 본다.

 

오죽했으면 여당 최고위원까지 나서서 철회를 요구했을까. ‘친박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에서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문제제기를 하고 싶다만약 교과서에 실릴 때 그것이 어떤 이념이나 특정 정당이나 정파와 관련 돼 실렸다면 그건 문제가 되겠지만 그 분이 정치활동 이전에 순수하게 문학작품으로서 교과서에 실릴만하다고 판단이 서서 실렸다고 한다면 아무리 국회의원이 됐다고 그 작품이 교과서에서 삭제돼야 한다는 것에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교과부를 비난했다.

 

한편,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사이버 공간에서는 평가원을 비난하는 글에 이어 도 의원을 격려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안도현 시인(@ahndh61)만약에 도종환 시인이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에 배정이 되었다면? 시인의 시를 국어교과서에서 빼라고 지시한 이주호 장관 취소하느라고 허둥지둥 정신 없었을테죠.”라며 비꼬았고, 한 트위터리안(@mett****)이건 독재의 시대에나 가능한 사소한 아래 것들의 과잉충성이나 심각한 도그마가 아닐 수 없다며 평가원의 처사를 비난했다. 관료사회의 눈치보기가 극에 달했다는 지적인 것이다.

 

끝으로 논란이 된 도 의원의 또 다른 시 흔들리며 피는 꽃전문을 아래 소개한다.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정운현 기자 | 등록:2012-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