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풍월 사선암 2012. 6. 12. 09:45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잇을테요

모란이 뚝뚝 떠러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흰 서름에 잠길테요

五月 어느날 그 하로 무덥든 날
떠러져 누운 꼿닢마져 시드러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업서지고
뻐처오르든 내 보람 서운케 묻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三百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잇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문학>(1934, 4) -

 

1949년 12월 14일 서울 경회루에서의 김영랑 시인 <제공: 전남 강진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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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金永郞 [1903.1.16~1950] 본명 윤식(允植). 전남 강진(康津) 출생. 부유한 지주의 가정에서 한학을 배우면서 자랐고,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 3 ·1운동 때에는 강진에서 의거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이듬해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靑山]학원에 입학하여 중학부와 영문과를 거치는 동안 C.G.로제티, J.키츠 등의 시를 탐독하여 서정의 세계를 넓혔다. 1930년 박용철(朴龍喆) ·정지용(鄭芝溶) 등과 함께 시문학(詩文學)동인으로 참가하여 동지에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쓸쓸한 뫼 앞에> <제야(除夜)> 등의 서정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詩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어 내 마음 아실 이》 《가늘한 내음》 《모란이 피기까지는등의 서정시를 계속 발표하였고, 1935년에는 첫째 시집인 영랑시집(永郞詩集)을 간행하였다. 잘 다듬어진 언어로 섬세하고 영롱한 서정을 노래한 그의 시는 정지용의 감각적인 기교, 김기림(金起林)의 주지주의적 경향과는 달리 순수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창씨개명(創氏改名)과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거부하는 저항 자세를 보여주었고, 8 ·15광복 후에는 민족운동에 참가하는 등 자신의 시의 세계와는 달리 행동파적 일면을 지니고 있기도 하였다. 6 ·25전쟁 때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은신하다가 파편에 맞아 사망하였다. <자료출처 : 야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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