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오늘 이 도둑놈을 보내노라

풍월 사선암 2012. 5. 30. 10:32

 

"오늘 이 도둑놈을 보내노라!”  

2012.05.01

 

24년 동안 재상의 직에 있었으며 그 중 19년을 영의정으로 봉직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재상인 황희 정승. 그는 과연 청렴했을까요?

 

세종실록을 보면 황희 정승의 비리가 여러 차례 나옵니다. 역적으로 죽임을 당한 박포의 아내와 통정을 했으며 주는 뇌물은 사양 않고 받았다고 합니다. 실록에 뇌물을 받았다고 거론된 것만 10여 차례나 되니 남들 모르게 받은 것까지 합치면 실로 엄청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위가 살인을 저지른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대사헌인 맹사성에게 부탁하여 무마시키기도 하였다고 하니 이 정도면 해도 너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비리에도 불구하고 당대는 물론 후대 사람들도 황희 정승을 칭송해 마지않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정치를 잘했기 때문입니다. 세종이 그를 귀양도 보내고 유배도 시키면서 틈날 때마다 그를 다시 불러 올렸던 데에는 황희만이 가지고 있던 탁월한 식견이 필요해서였다고 합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위치에서 황희는 사람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재능 있는 재상이었습니다. 세종이 성군이 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2인자였던 것입니다. 태종 역시 일찍이 황희의 가치를 알고 있었던 터라, “황희만한 인물이 없다며 세종에게 황희를 중히 쓸 것을 당부하였다고 합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이 굳이 청렴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는 황희 정승의 예뿐만 아니라 중국 고사에도 등장합니다. 춘추전국 시절 자사가 위왕에게 구변을 추천하면서

 

구변은 500대의 전차부대를 통솔할 재주를 가졌으니 그를 등용하면 천하를 얻을 것입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위왕은

나 역시 그가 장군감인 걸 알고 있소, 그러나 그가 과거 지방관으로 있을 때 한 집에 달걀 2개씩을 착복한 일이 있으니 그를 쓸 수 없소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자사는

현명한 군주가 사람을 쓰는 것과 뛰어난 목수가 목재를 사용하는 것은 같습니다. 훌륭한 목수는 아름드리나무에 몇 자 썩은 부분이 있다고 그 나무를 버리지 않습니다.” 라고 하였답니다. 인재를 등용하는 데 작은 허물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2007년 대선에서 우리 국민이 현 대통령을 압도적인 지지로 뽑아준 것 또한 작은 허물은 묻지 않을 터이니 이 나라를 잘 이끌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런데 대통령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생각이 달랐나 봅니다. 우리나라는 5년마다 대통령이 바뀝니다. 연임을 할 수도 없습니다. 행여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을 연임할 수 있게 하더라도 당대의 대통령에게는 해당사항이 없기 때문입니다. 단임제이기 때문에 재집권을 위해서 정치를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 5년 동안 어떻게 해먹을 것인가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통령 주변에 너무 많았던 것이 아닐까요? 마치 5년짜리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말입니다. 해먹어도 일은 제대로 하면서 적당히 해먹어야 하는데 진종일 해먹을 궁리만 한 것 같습니다. 공중파 방송사 두 곳은 아직도 파업 중이고 야심차게 출발한 종합편성 채널은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대통령의 멘토는 엉뚱한 곳을 기웃거렸다가 치욕스러운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천 현감의 송덕비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조선조 지방 수령 중에 과천 현감은 서울이 가깝고 오가는 고관을 접촉하기 쉽고 세금징수가 많기 때문에 재물을 모아 뇌물을 상납하여 조정의 좋은 자리로 영전하는 자리였다고 합니다. 과천 현감이 영전하여 서울로 떠나게 되자 아전들이 송덕비를 세우겠다며 비문을 어떻게 할까 문의하였답니다. 그러자 현감이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고 하여 아전들이 남태령에 송덕비를 세우고 현감에게 제막식을 하고 가시라고 했답니다. 현감이 잠시 행렬을 멈추고 포장을 벗겨본 즉, 비문에는

 

今日送此盜(금일송차도) / 오늘 이 도둑놈을 보내노라."

라고 써 있기에, 현감이 껄껄 한 번 웃고 그 옆에 한 줄 더 씁니다.

 

明日來他賊(명일래타적) / 내일 다른 도둑놈이 올 터인데."

현감이 떠나자 아전이 또 한 줄을 보태 쓰는데

 

此盜來不盡(차도래부진) / 도둑놈들만 끝없이 오는구나."

지나가던 행인이 보고 또 한 줄을 더 보태어 써서

 

"擧世皆爲盜(거세개위도) / 세상에 모두 도둑놈뿐이구나."

이렇게 비문이 완성됐다고 합니다.

 

그 동안 대한민국 제 6 공화국에 해당하는 보통사람의 위대한 정부부터 문민정부니 국민의정부니 참여정부니 그리고 MB정권까지 5년마다 이 나라의 수장이 바뀌었습니다. 대통령을 뽑을 때마다 그 밑에는 이름만 달리 했지 허가 받은 도둑들이 5년마다 계속 등장했습니다. 올해도 우리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안고 대선을 치를 것입니다. 하도 당하다 보니 이제는 최악(最惡)을 피해 차악(次惡)의 선택이라도 가정해 봅니다. 최악이라면 정치도 빵점에 온갖 비리로 얼룩진 지도자를 만나는 일일 것입니다. 차악은 황희 정승처럼 다소 비리가 있더라도 정치 하나만은 탁월하게 해내는 지도자를 만나는 것일 겁니다. 성직자를 뽑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웬만한 허물은 묻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백성들 배부르고 등 따뜻하게 해주는 정치의 본질에 충실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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