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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병원, 신규 전문醫 싹쓸이… 지방 의사 씨 마른다

풍월 사선암 2012. 1. 12. 00:24

서울 병원, 신규 전문싹쓸이지방 의사 씨 마른다

 

전문의 합격자 절반 가까이 6개 대학병원 전임의로길게는 3~5년씩 머물러

지방은 매년 '의사 보릿고개'결국 환자들 피해만 커져 "전임의 수 규제 필요

 

호남 지역에서 400여 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을 운영하는 A원장은 지난해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외과 레지던트를 마치고 외과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한 의사를 영입했다. 하지만 이 외과 전문의가 응급실로 온 충수염(이른바 맹장염) 환자를 놓고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명색이 외과 전문의인데 맹장 수술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있던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전임의'(專任醫·fellow)들이 예전엔 레지던트가 하던 외과 수술을 도맡아 해서 맹장 수술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게 그 의사의 변명이었다. '전임의'는 전문의를 갓 따고 의료기술을 더 배우기 위해 대학병원에 남아 있는 의사들을 말한다.

 

이는 서울의 대형병원들이 매년 1월 갓 전문의를 취득한 의사들을 '전임의' 형태로 대거 채용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연초에 치르는 전문의 시험이 끝나고 의료 인력 시장에 나오는 신규 전문의 수는 3100~3200명이다. 현재 이들 셋 중 한 명, 많게는 절반 가까이 대형병원 전임의로 흡수된다.

 

연세대 의료원이 올 2~3월 채용할 전임의 수는 378명이다. 이미 선발했거나, 예정자가 거의 정해진 상태다. 서울대 병원은 322, 서울아산병원은 305명을 뽑는다. 이들 병원과 삼성의료원, 가톨릭대 의료원, 고려대 의료원 등 서울의 6개 대형병원이 가져가는 전임의 수는 총 2000명이 넘는다. 이중 약 60%가 이번에 전문의를 취득한 의사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이들은 각 전문 분야 의대 교수에 속해 있으면서 수술과 진료를 맡는다. 예를 들어 신규 내과 전문의가 소화기내과·심장내과·내분비내과 등 세부 분야로 나뉘어 병원 수련 생활을 더 하는 식이다.

 

전국의 환자들이 몰리는 서울의 대형병원들은 이런 전임의 인력을 대폭 늘려 왔다. 교수 월급의 절반만 주고도 환자 진료량의 상당수를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아산·삼성서울 병원 등 이른바 '(Big) 5' 병원은 전국 암 수술의 50%, 장기이식 수술의 70%를 도맡아 하고 있다.

 

전문의를 갓 딴 의사들은 나중에 의대 교수 발령을 받기 위해 또는 훗날 개업했을 때 경력을 내세우기 위해 전임의 생활을 1~2년 심지어 3~5년 하기도 한다. 유명 대형병원 전임의가 되는 것도 경쟁이어서, 일부 대학병원에서는 월급이 없는 무급(無給) 전임의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늘어난 전임의들이 예전에 레지던트들이 하던 일을 맡다 보니, 레지던트들은 제대로 배우는 것 없이 수련 생활이 끝나고 전문의가 되어 전임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 때문에 지방 종합병원들이 전문의를 구하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고, 지방 환자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

 

지방종합병원들은 매년 1~4월 신규 전문의를 찾으려야 찾을 수 없는 '의사 보릿고개'를 겪고 있는 것이다. 제주 중앙병원 김덕용 이사장은 "서울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집중되는 현상이 의료인력의 기형적인 쏠림으로 이어지고 있다""의료의 지역 균형 발전과 지방 환자 의료서비스 수준을 높이려면 대형병원들이 전임의 수를 맘대로 늘리는 것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임(fellow)

 

내과·외과 등에서 4년 동안 레지던트 근무를 마치고 전문의 시험에 합격한 신참 전문의들로, 개업을 하거나 병원에 취직하지 않고 대학병원에 계속 남아서 심장내과·대장항문외과 등 세부 전공을 더 익히는 의사들이다. 아직 의대 교수 신분이 아니며, 주로 교수들의 수술과 진료를 도우며 전문 기술을 익힌다. 임상강사 또는 펠로우라고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