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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경찰서장이 매 맞는 나라, 누가 집권한들 이끌 수 있겠나

풍월 사선암 2011. 11. 28. 23:59

대한민국 한복판, 시위대에 맞는 경찰서장지난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한·FTA 반대 집회 참가자가 야당 의원들과 면담을 하러 온 박건찬 종로경찰서장(경찰복)의 머리를 때렸다. 박 서장은 얼굴과 어깨 등에 타박상을 입어 전치 3주 진단을 받았다.

 

[사설] 경찰서장이 매 맞는 나라, 누가 집권한들 이끌 수 있겠나  

 

박건찬 서울 종로경찰서장이 26일밤 광화문 일대에서 벌어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무효화 집회 현장에서 시위대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박 서장은 26일 밤 9시 반쯤 경찰 정복을 입고 광화문 동화면세점 쪽에 있던 시위대 선두에 다가가 "() 5당 대표를 만나러 왔다"는 뜻을 밝혔다. 시위대 사이에서 "여기 서장이 있다"는 고함이 터져나오면서 100여명이 박 서장을 둘러쌌고 시위대 일부가 욕설과 함께 주먹을 휘둘렀다. 시위대는 박 서장의 입술, 오른쪽 뺨, 왼쪽 옆구리 등을 때렸고 발길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박 서장 정복 왼쪽 어깨 위 계급장도 떨어져 나갔다.

 

집회에 참가한 야당 대표도 전혀 환영받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마이크를 잡고 "이럴 때일수록 뭉쳐야 한다. ·FTA 무효화시키기 위해 민주당이 앞장설 것을 약속 드린다"고 발언하는 도중 시위대들은 "사퇴하라"며 야유를 보냈다.

 

그런가 하면 지난 25일 트위터에서 자신을 언론인이라고 소개한 '쥐 킬러'라는 사람이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주소를 아파트 동·호수까지 올려놓은 뒤 "매국 오적(五賊) 중 하나인 홍준표, 오물 투척은 별도 공지 없이도 가능합니다. 가까운 데 사시면 저지르세요"라고 썼다.

 

정치권은 무법천지가 된 거리와 트위터 공간에서 욕을 봤다고 남을 원망할 처지가 못 된다. 지난 23일 경찰이 서울시청 앞에서 불법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물대포를 쏘자 개그우먼 김미화씨는 "이런 (추운) 날씨에 물대포라니", 방송인 김제동씨는 "물대포 맞으니 나 지금 기분 지랄같다. "라는 글을 자신들의 트위터에 올렸다. 이후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 소장파가 비판한 것은 불법 시위대가 아닌 불법 시위대를 향해 공권력을 행사한 경찰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리와 인터넷·트위터의 목청 큰 사람들은 야당의 응원 부대처럼 보였다. 야당은 국회에서 여당과 입장 차를 좁히며 나랏일을 살피기보다 선거 때 자기편을 들어줄 세력의 비위 맞추기에 바빴고, 여당 역시 곁불이라도 쬘 수 있을까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거리의 세력, 트위터 세력은 야당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에 만족하지 못하고 야당을 밀쳐내고 직접 자신들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현장 치안을 책임지고 지휘하는 경찰서장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불법 시위대에게 집단 린치를 당하고, 야당 대표는 조롱거리가 되고, 집권 여당 대표 집에 테러를 하라는 선동이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세상이다. 정치권의 권위가 땅바닥에 뒹굴고 법질서가 짓밟혀 버리고 나면 내년 대선에서 어느 쪽 정당이 집권한다 한들 무슨 힘으로 나라를 이끌고 나갈 수 있을 것인가.

 

< 조선일보 입력 : 2011.1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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