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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D 반대? 옆문 81개 열어놓고 정문 막는 격"

풍월 사선암 2011. 11. 15. 09:07

"ISD 반대? 옆문 81개 열어놓고 정문 막는 격"

 

노무현 정부시절 ISD TF위원장 지낸 신희택 교수

외국과 맺은 투자협정 85개 중 81개가 이미 ISD 채택, 제소 핑계로 FTA 반대하는 건 사고 무서워 차 타지말자는 것

민주당서 '대통령은 몰랐다' '우린 까막눈이었다' 하는데 ISD TF 만들라고 지시한 대통령, 얼마나 억울하겠나

재재협상에서 다시 논의? 그렇다고 달라질 게 없는데오바마도 기업들도 국제사회도 다 웃을 거다

 

"교통사고 날까 무서우니 차 몰지 말자고 하는 것 아닙니까."

 

야당이 ISD(투자자·국가소송제도) 도입에 반대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재협상을 주장하는 데 대해, 신희택(59·사진)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국익이 아니라 정파 이익만 따지는 'dirty politics'(추잡한 정치)"라고 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구성된 ISD 문제 민관 태스크포스(TF) 공동위원장을 지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국제투자와 M&A 분야 전문가로, 로펌 김&장에서 27년 일하다 수십억 연봉을 포기하고 2007년 대학교수로 변신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9년부터 ISD의 중재기관인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위원(임기 6)으로 활동 중이며, 2008년부터 대학원생들에게 ISD 문제를 가르친다. 신 교수는 "(지금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을 본) 우리 학생들까지 '뭘 알고나 저러나'라며 혀를 차더라"고 했다.

 

야당은 ISD가 그렇게 위험한지 몰랐다고 한다.

 

"2006년에 노무현 대통령 지시로 ISD 태스크포스가 구성됐다. 정부 부처와 민간 전문가 등 20명가량이 참여해 2~3개월 심각하게 토론하고 정말 어렵게 결론을 냈다. ISD를 한·FTA에 넣으면 (미국 기업의 제소로) 우리 공공 정책 등이 영향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한국은 자본 수출국이고 이미 양자협정에서 ISD를 많이 채택했기 때문에 '위험을 최소화하도록 협상하고 국내의 대응능력도 강화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FTA협상단이 TF의 결론을 반영해서 미국과 열심히 협상했다. 미국이 오히려 제소 요건을 강화하자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당시 집권당이던 민주당에서 '노 대통령은 (위험한지) 몰랐을 거다'거나, 심지어 '우리는 까막눈' 운운하는데, 말이 되는가. TF 만들라고 지시한 노 대통령이 얼마나 억울하겠나."

 

야당 말대로 ISD를 빼고 미국과 FTA 하면 안되나.

 

"ISD 없으면 미국 기업이 우리 정부 상대로 제소 못하고 '주권(主權)'을 지킬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은 실상을 호도하는 것이다. 미국 기업이 한국에 투자할 때 미국 본사에서만 하나. 론스타도 벨기에 법인 통해서 한국에 투자하지 않았나. 3국에 법인 만들어 투자하면, 분쟁이 생겼을 때 제3국과 한국 간 ISD를 적용하게 된다. 한국이 외국과 맺은 투자협정 85개 중 81개가 이미 ISD를 채택하고 있다. 돌아들어올 수 있는 옆문을 81개나 열어놓고 정문 막으면 된다는 게 난센스 아니고 뭔가."

 

재재협상에서 ISD 도입 여부를 다시 협상할 수는 없나.

 

"오바마 대통령도 미국 의회도, 기업들도 다 웃을 거다. '그렇다고 달라질 게 없는데 왜 저러지?'하면서. 또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가 이런 것 갖고 시끄럽다는 것 자체가 국제사회에서 웃음거리 될 일이다. TF가 이 문제를 논의하던 2006년과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공공부문의 역할이 큰 중국도 외국투자자가 부당하게 권리를 침해당하면 전면적으로 보상을 해주는 쪽으로 정책을 바꿨다. 버스(세계적 흐름)는 이미 저만큼 가 있고, ISD로 논쟁하던 시대는 끝났다."

 

실제 미국 기업에 제소당하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않나.

 

"ISD를 채택하면 당연히 제소는 당할 수밖에 없다. 미국도 NAFTA (북미자유무역협정) 하면서 10여건 제소당했다. 그런데 제소가 무서워서 FTA를 포기해야 하나. 교통사고(ISD에 따른 제소)가 무서워 자동차 타는 것(FTA의 효용성)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나. 정치권이 지금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문제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분쟁을 어떻게 예방할지, 제소에 대응할 역량을 어떻게 키울지다. 노무현 정부 때 상사중재원에 국제투자분쟁 모니터링센터를 설립했고, 대학에서도 구체적인 사례연구까지 하면서 석사논문이 여럿 나왔다. 정치권만 손 놓고 있다."

 

제소당해 문제 된 나라들은 없었나.

 

"라틴아메리카 일부 국가가 그런 경험을 했다. 볼리비아, 에콰도르 같은 나라가 3~4년 전쯤 국제투자분쟁센터 설립 조약에서 탈퇴했다. 국유화를 진행하는 등 세계 흐름과 정반대로 간 나라들이다. 정치인들이 외자 유치하면서 지키지도 못할 선심성 약속하고, 포퓰리즘으로 정책집행 하면 그런 일 당한다. 사실 그렇게 보면 우리 정치인이나 일부 지자체가 요주의 대상이고, 바뀌어야 한다. 전 정부에서 'ISD가 국내 제도의 선진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한 이유가 바로 그런 데 있다. 그리고 제소를 당한다고 해서 다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중재기관(ICSID)에서 결론 내는데 2~3년씩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도 위험부담이 크다."

 

ISD(투자자·국가소송제도)

 

외국에 투자한 기업이 투자국에서 부당한 권한 침해를 당했을 때 국제기구의 중재로 분쟁을 해결하는 제도. 한국이 맺은 투자협정 85개 중 81개에 채택됐다. 1966년 설립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가 매년 30건쯤 접수되는 분쟁을 처리한다.

 

이명진 기자 / 입력 : 2011.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