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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의사, 거사 직후 "조국을 위한 복수" 이토 사망하자 "사명 다해" 감사 기도

풍월 사선암 2011. 11. 4. 08:15

의사, 거사 직후 "조국을 위한 복수" 이토 사망하자 "사명 다해" 감사 기도

 

러시아 고문서'안중근 수사기록' 전시

 

안중근 의사(義士)19091026일 만주 하얼빈에서 을사늑약 체결을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직후 러시아 검찰에 "나는 내 조국을 위해 복수했다"고 말했다. 이는 당시 러시아 검찰이 안 의사를 체포해 조사·작성한 보고서에 기록돼 있다.

 

이 문건은 지난달 31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러시아와 한국, 역사·사건·사람들'이란 고문서 전시회에 전시됐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러시아 당국을 통해 전문을 받아 공개했다. 사회주의 혁명 이전 러시아어로 기록된 196장 분량의 이 문건에는 안 의사의 저격과 체포, 일본 총영사관에 신병이 넘어가기 전까지 14시간의 행적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이 자료 등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다.

 

러시아 헌병들과 격투

 

19091026일 오전 9시 안중근 의사는 중국 하얼빈(哈爾濱) 역에서 이토 일행을 환영하는 러시아 의장대와 일본인 환영 인파 사이에 서 있었다. 이 시각 이토는 열차에서 내려 코코프초프 러시아 재무대신과 함께 사열하고 있는 러시아 의장대 쪽으로 5~7걸음 다가갔다. 안 의사는 총을 들어 먼저 이토를 향해 2발을 쏘았다. 당시 현장에 있었으며 안 의사를 최초로 신문한 러시아 국경 검사 밀레르는 보고서에서 "총성 두 발이 울리고 흉한(凶漢·안중근 의사를 지칭)은 왼손으로 오른쪽 팔꿈치를 받치고 의장대 앞을 걷고 있던 공작(이토 히로부미)을 향해 다시 한 발을 쏘았다"고 적었다.

 

◀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린 그날저격 직후의 14시간

 

보고서에 따르면 이후 안 의사는 급히 방향을 바꿔 이토의 수행원에게 3~4발 더 총을 발사했다. 당일 역에서 사진을 찍던 사진기사 주예프는 "그는 놀랍도록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러시아인들이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은 듯 권총을 일본인에게만 향하며 총을 발사했다"고 진술했다. 니키포로프 헌병 대위가 즉시 안 의사에게 달려들었지만 안 의사는 그를 뿌리치며 완강하게 저항했다. 밀레르는 "흉한의 완력이 강해 처음엔 진압할 수 없었다. 다른 러시아 장교들의 도움을 받아 흉한의 권총을 빼앗을 수 있었다"고 적었다. 밀레르는 "흉한은 전력을 다해 러시아 장교들과 격투를 벌였다"면서 "마지막 총알로 자살하려 했으나 실패했던 것 같다"고 썼다. 밀레르는 "흉한이 총알을 모두 7발 쏘는 데 30~4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조국을 위해 복수했다"

 

안 의사는 곧바로 하얼빈 역사 내 철도경찰국 사무실(당직실)로 이송됐다. 밀레르는 "흉한은 처음에는 매우 흥분했으나 곧 평정을 되찾아 명료하게 자기가 누구인지와 범행 동기에 대해 진술했다"고 했다. 안 의사는 거사 동기에 대해 당당한 목소리로 "조국을 위해 복수했다"고 말했다. 밀레르는 안 의사의 목소리가 "오만한 음성"이었다고 적었다. 그때 누군가가 이토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안 의사는 이를 듣고 "이토를 죽이는 내 사명을 다했다"며 사무실 벽에 걸린 성상 앞에서 기도를 올렸다. 밀레르는 "그가 환희에 차올라 신에게 감사 기도를 올렸다"고 적었다. 안 의사는 신문에서 사건 전날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전날 오후 8시 하얼빈 역에 도착했으며 역 대합실에서 밤을 보냈다고 진술했다.

 

◀ 체포 직후의 의사바지 찢어지고 단추 떨어져 - 안중근 의사가 19091026일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 저격 후 체포된 직후 모습. 러시아 검찰이 찍은 이 사진에서 안 의사의 손은 뒤로 포박돼 있으나 얼굴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안의사의 외투 셋째 단추가 떨어졌고 바지 오른쪽 무릎 부분이 찢어졌으며 흙 자국도 보인다. 체포 당시 벌어진 몸싸움 때문이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 제공

 

14시간 조사 끝에 일본에 넘겨

 

안 의사는 다시 하얼빈 러시아 법원에서 제8구 재판소 판사 스트라조프의 신문을 받았다. 신문에는 밀레르 검사와 일본 총영사관 서기 스기노(杉野)도 입회했다. 안 의사는 "성명 안응칠(安應七), 신분 농민, 현주소 일정한 주소 없음" 등 신상 정보를 밝힌 후 "나는 이토를 죽일 목적으로 하얼빈에 왔다. 거사는 혼자 의지로 했으며 공모자는 없다"고 말했다. 거사를 함께 논의한 우덕순·조도선 등을 보호하기 위한 진술이었다. 러시아 검찰이 안 의사 체포 직후 찍은 사진에는 그와 함께 거사를 모의한 다른 사람들도 옆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프초프는 훗날 "그는 개인적으로 매우 좋은 인상을 주었다. 젊고 멋있는 용모, 균형 잡힌 외모와 보기 좋을 정도의 키였다"고 회고했다.

 

러시아 사법 당국은 14시간 조사 끝에 당일 오후 1130(일부 기록은 오후 1010) 예심 서류 원본, 증거품을 넣은 상자 2개와 함께 안 의사를 일본 총영사관으로 보냈다. 판사 스트라조프와 검사 밀레르는 "본관이 구인한 우치안(응칠안)은 한국 국적을 갖고 있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충분하다. 본건은 러시아 재판에 회부할 성질이 아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 입력 : 2011.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