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정보,상식

[업계 트렌드] 도서관이야, 회사야 고객이 커피숍을 바꿨다

풍월 사선암 2011. 10. 30. 17:29

[업계 트렌드] 도서관이야, 회사야 고객이 커피숍을 바꿨다

 

월간중앙 201110월호 / 신버들 기자

 

노트북·무선인터넷·스마트폰 등장 후

커피전문점이 소통의 공간은 물론

창작의 공간으로 진화한다

 

커피전문점의 성장세가 멈출 줄 모른다. 한때 시장이 포화상태에 달했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새로운 커피숍이 계속 문을 연다. 투썸플레이스를 운영하는 CJ푸드빌의 분석에 따르면 2000~2008년 커피전문점의 연간 매출 성장률은 매년 25%를 유지했다. 시장 규모가 9년 만에 여섯 배나 커졌다는 말이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연간 매출도 12%대의 성장률을 계속하리라 전망된다. 커피전문점의 이 같은 가파른 성장의 바탕에는 꾸준히 늘어나는 고객이 있다.

 

98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 1층은 늘 손님들로 부산하지만 2층에는 혼자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책을 읽고, 노트에 뭔가를 메모하는 사람이 가득했다. 매장 가운데에 놓인 큰 테이블에는 혼자 온 사람들이 노트북으로 뭔가에 열중한다. 낯선 이와 마주 보거나 옆에 앉아도 전혀 어색해하지 않는다. 창가를 따라 놓인 길고 좁은 테이블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노트북에 매달린 사람 말고도 친구나 연인, 직장 동료와 차를 마시며 정담을 나누는 사람도 많다.

 

원래 커피전문점은 어땠더라? 고급 커피를 마시면서 사람을 만나는 공간 아니었나? 그런데 그 커피숍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곳을 찾는 고객의 성격도 다양해졌다. 특히 도서관·회의실·세미나실을 벗어나 커피전문점에서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 언제부터인가는 커피전문점에 혼자 있는 사람을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 옆에 앉아서 예전처럼 수다를 떨다 오면 그뿐이다. 한국에도 커피전문점만의 샐러드 볼(salad bowl)’ 문화가 형성된 듯하다(다양성이 살아 있는 미국을 여러 가지 재료가 본래 맛을 잃지 않으면서 하나의 요리가 되는 샐러드에 비유해 샐러드 볼이라고 부른다).

 

스타벅스 광화문점에서 만난 박연수(27) 씨는 넓은 테이블에 혼자 앉아 맥북 프로를 이용해 석사 논문을 다듬는 중이었다. 노트북 화면에 영문 논문 자료를 몇 개 띄워놓고 살피면서, 빈 문서에 논문 내용을 조금씩 정리했다. 간간이 학과 동기와 메신저를 통해 논문 방향을 주제로 대화도 나눈다. 대학원에서 미학과 석사 과정을 마친 그는 논문을 쓰기 위해 대학 도서관보다는 집에서 10분 거리의 스타벅스 광화문점을 더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논문 쓰는데 왜 커피숍을 찾느냐고 묻자 그도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잠깐 뜸을 들이던 그가 말을 이었다. “카페에서 공부를 하거나 다른 개인작업을 하는 모습을 많이 봐서 그런지, 내가 카페에서 나름의 생산성을 경험해서 그런지 왠지 이곳에서 작업하는 게 편해요.” 박씨는 고등학교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대학은 샌디에이고에서 다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시험기간에도 도서관보다 학교 근처의 카페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카페에 오면 타인과 공존한다는 확신이 들지만 개인공간이 침해받지는 않아요. 각자 자기 일을 하지만 혼자가 아니에요. 어쩌면 공동체 안에서의 고독(communal solitude)’이 있는 카페 분위기를 즐기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는 그래서 오히려 작업효율이 더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커피전문점을 오피스(Office)처럼 사용하는 일명 코피스족이 커피전문점의 단골손님으로 떠올랐다. 카페베네에 따르면 올해 들어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는 코피스족의 비율은 2년 전 같은 기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최근 일반 고객과 코피스족의 비율이 6 4에 이른다서너 시간씩 앉아서 일하는 코피스족은 고객 회전율 측면에서 볼 때 좋은 고객은 아니지만 점점 수가 늘어나 커피전문점의 주요 고객이 됐다고 설명했다.

 

코피스족은 박씨처럼 사람 사이의 고독을 즐긴다. 그 이유가 뭘까? 이창순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를 근대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전통사회에서는 개인이 가족이나 마을의 공동체에 소속됐지만, 이제는 혼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요. 자유가 생겼지만 마음의 고향을 잃어버려 허전함을 느끼게 되죠. 그래서 현대인은 타인과 함께 있고 싶어하면서도 자신만의 영역을 침해받지 않으려 합니다.”

 

단골손님코피스족을 잡아라

 

이 교수는 요즘 커피전문점을 미국 웨스트 플로리다 주립대학 레이 올든버그 명예교수가 말한 3의 장소에 빗댔다. 사회학자인 레이 올든버그는 집이나 직장이 아닌 살롱이나 펍(pub)같이 사람들이 만나 부담 없이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고 어울리는 교류의 공간을 3의 장소로 불렀다. 한국에서는 사랑방이나 다방이 3의 장소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 교수는 한국의 빠른 산업화 과정에서 붕괴됐던 이런 제3의 장소가 최근의 커피전문점으로 부활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제3의 장소가 부활한 이유로 무선 디지털기기 기술의 발전을 꼽았다. 노트북을 비롯한 IT기기로 무선인터넷 이용이 가능해지면서, 커피전문점이 휴식과 교류의 공간에서 일하고 공부하는 공간으로 점점 진화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현대사회를 특징 짓는 모바일 문화에서 한곳에 고정된 공간의 의미는 줄어들고, 잠시 머물러 일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플랫폼이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최근의 커피숍들이 모바일 플랫폼으로 기능하면서 무선인터넷과 카페 문화를 즐기는 무선족을 주요 고객층으로 끌어들였다는 설명이다.

 

새로운 고객층의 등장으로 국내 커피전문점 시장 규모는 꾸준히 외연을 넓혀왔다. 1999년 이화여대 스타벅스 1호점에서 시작된 커피전문점의 시장 규모는 커피믹스나 자판기 등 커피 관련 산업 전체 시장의 33%로 연간 1조원가량이다. 커피전문점 체인 간의 경쟁도 더욱 뜨거워졌다. 스타벅스와 카페베네가 치열하게 공방을 벌인다. 카페베네가 출점 1년 만에 매장을 570개로 늘리며 1위에 올라서자 스타벅스는 앞으로 5년간 매장 수를 현재 300여 개에서 700개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두 커피전문점 브랜드에다 엔제리너스·할리스커피·커피빈까지 상위 브랜드를 합하면 매장 수는 2000개에 이른다.

 

카페베네는 최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미팅룸’ ‘비지니스룸등 독립된 공간을 늘리고 있다. 도시 어디를 가도 가장 먼저 눈에 밟히는 곳이 커피전문점이 되다 보니, ‘무선족들은 더 편안한 공간을 찾아나선다. 최근 서울 안국동 ‘mmmg 카페에서 만난 대학생 안효주(26) 씨와 신지혜(26)씨가 그랬다. 문구 디자인 업체인 밀리미터밀리그람(mmmg)이 운영하는 이 카페는 우체국으로 쓰이던 근대 건축물을 개조해 만들었다. 이곳을 회사 사무실로 쓰던 mmmg, 일부 공간을 카페로 꾸며 외부에 공개했다. 이 카페에는 개인작업을 하는 젊은이가 많이 몰린다.

 

대학 친구인 안효주, 신지혜 씨는 서울 광진구에 있는 집이나 학교에서 버스로 40분이 걸리지만 이곳을 찾으면 더없이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일주일에 서너 차례 와서 서너 시간씩 머무를 때도 있다. 학교 근처에도 카페가 많은데 굳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뭘까?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도 그렇지만 그들처럼 혼자서 작업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동질감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들은 대학에서 설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종로구 통의동, 안국동 주변을 조사하고 다니다 이 카페를 발견했다.

 

두 학생은 mmmg 카페 2층 창가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 안씨는 맥북 프로를 켜고 설계 프로젝트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노트북 화면에 일본에 있는 한 카페 건물 설계도를 띄웠다. 안씨는 3D 형태의 설계도를 살펴보고, 그 일부를 직접 만들어볼 요량이다. 신씨는 옆자리에서 학원 교재를 펴놓고 중국어 단어를 외웠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중국에서 건축 분야의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의 행동이 공부에 방해되지는 않을까? 두 사람은 아뇨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안씨는 오히려 카페에서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 더 재미있다. 작업이나 전시 이야기를 나누는 이가 많다고 말했다. 그들은 가끔 대학 도서관에 자료를 찾으러 가는 일이 있지만, 카페에서처럼 오랜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고 한다. 안씨는 답답한 도서관보다는 카페에서 작업하면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에게 각광받는 커피숍 문화가 언제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까? 한국의 커피와 다방의 사회사를 다룬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2005)라는 책에 따르면 1888년 인천에 우리나라 최초 호텔인 대불호텔과 슈트워드호텔이 생겨났고, 그곳에 커피를 파는 다방이 들어섰다. 이게 우리 다방 문화의 시작이다. 식당과 겸업이 아닌 전업 다방의 원조는 1923년쯤 지금의 충무로 3가에 세워진 후다미(二見)’였다. 일본인이 경영한 이 다방의 손님은 그 무렵 도쿄에서 새로운 사상과 풍습을 배우고 돌아온 문필가나 화가, 소수의 일본인 청년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한다.

 

사랑방에서 다방, 커피전문점으로 진화

 

1945년 광복과 함께 서울의 다방 수도 늘었다. 해방이 되자 멀리서 독립운동을 하던 지사(志士)들이 돌아왔고, 일본 경찰에 쫓겨 숨어 지내던 사람들, 세상이 싫어서 은거하던 사람도 거리로 나왔다. 서울 거리에는 이들을 위한 만남의 장소가 필요해졌다. 명동을 비롯해 충무로·소공동·종로 등 번화가에 다방이 속속 들어섰다.

 

1950년대에 소통공간으로 인기를 끈 곳도 단연 다방이었다. 하지만 서민이 드나들기엔 부담스러웠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굶주린 식자층의 주 활동무대이자 연락 거점이었다. ‘사랑방의 역할을 다방이 대신한 셈이다. 그곳에는 마담과 레지가 있었다. 여성 종업원을 가리키는 레지라는 말은 레이디(Lady)’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지만, ‘레지스터(Register·카운터에서 요금을 계산하는 사람)’에서 유래했다는 얘기가 정설이다. 마담과 레지는 남성 중심의 다방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도우미 역할을 했다. 그래서 다방 출입은 성인에게만 허용됐다.

 

1990년대에는 한국형 카페인 민들레 영토(민토)등장해 한동안 인기를 끌었다. ‘민토1994년 신촌 기차역 근처 무허가 건물에서 영업을 시작한 이래 1990년대 후반부터 빠른 속도로 성장해 매장 수를 200725개까지 늘렸다. 민토는 스타벅스가 등장하기 전, 독특한 운영 방식으로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용료 5000원을 내면 3시간 동안 빵이나 라면과 함께 차를 서비스했다. 세미나실을 별도로 설치해 카페 이용료와 같은 요금으로 모임공간을 제공했다.

 

하지만 브랜드 커피전문점이 등장한 후로 민토의 성장세는 한풀 꺾였다. 커피전문점과 달리 민토는 이용시간을 제한하고, 나홀로 고객이 쓸 공간도 부족했다. 민토에 있는 4인용 테이블은 무선노트북을 끼고 사는 코피스족과는 썩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민토의 체인점 수는 올해 20개로 줄어들었다.

 

요즘의 커피전문점은 예전 다방이 지녔던 이미지를 벗어던졌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이 함께 찾아도 무방하다. 추석연휴가 시작된 910일 저녁께 서울 종로구의 카페베네 청계광교점에는 특히 가족 고객이 많았다. 아내와 아들, 딸과 함께 이곳을 찾은 서정필(41) 씨는 가족과 명동으로 나들이를 나왔다가 들렀다고 했다. 다른 날에도 서씨 가족은 커피전문점을 즐겨 찾는 편이다. 서씨는 집에서 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카페에 오면 쉽게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서씨 부부는 커피를, 딸은 와플, 아들은 스무디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최근 들어 3의 공간으로 고객을 끌어모으는 커피전문점의 진화는 어디까지 계속될까? 이창순 교수는 한동안은 커피전문점이 현재의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형 커피전문점들은 새로운 고객 유치를 위해 변신을 계속한다. 카페에서 창의적인 작업이나 공부를 하는 코피스족을 유치하고자 계속 진화 중이다. 카페베네는 무선인터넷이나 전기 콘센트 설치는 물론이고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미팅룸이나 비즈니스룸등 독립된 공간을 늘리는 추세다. 스타벅스도 2년 전부터 실내 디자인을 바꿔왔고 새로 문을 여는 매장에는 6~8명씩 앉을 수 있는 넓은 테이블도 배치했다. 이 회사 박찬희 홍보팀장은 노트북을 비롯한 IT기기를 더 편하게 이용하도록 매장의 환경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생활의 양식 > 정보,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체(人體)와 마음(心)  (0) 2011.11.09
남자와 여자의 특징 심층연구  (0) 2011.11.04
긴요한 生活 의 知慧  (0) 2011.10.11
형법 죄명별 공소시효 일람표   (0) 2011.10.11
라면의 역사  (0) 2011.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