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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책 변호사의 흥분 / '나쁜 정책'은 있을지언정 '나쁜 투표'는 없다.

풍월 사선암 2011. 8. 22. 23:27

 

[김대중 칼럼] '나쁜 정책'은 있을지언정 '나쁜 투표'는 없다

 

주민투표 뒤 식물市長 되느니 '사퇴' 배수의 진은 올바른 판단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정책 넘어 이념대립 상징 돼

시민 찬-반 의사 분명해지도록 투표로 이기고 진 쪽 수치화해야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관련해 시장직()을 건 것은 올바른 판단이다. 먼저 자신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는 공직자로서 당연한 것이고 정치인으로서도 바람직한 것이다. 또 그가 주민투표에서 패배하고서도 시장 자리에 그냥 눌러앉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래저래 '식물시장'이 되느니 사퇴를 배수(背水)의 진()으로 활용하는 것은 지극히 정치적이다.

 

야권은 그의 시장직 연계를 두고 '정치놀음'이니 '사기극'이니 비난하고 있지만 오 시장이 투표에서 지고도 그냥 시장직을 유지하면 "뻔뻔하다"느니 "파렴치하다"면서 온갖 비난을 퍼부을 것이 뻔하다. 자기들의 '무상급식'은 옳은 것이고, 그것에 대한 단계적 접근은 '나쁜 것'이고 '못된 것'이라는 발상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오 시장은 애당초부터 '대선 불출마'보다 시장직을 걸었어야 했다. 오 시장은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면 친박(親朴)계가 도와줄 것으로 판단해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친박계와 '박근혜 대세론'에 기대고 있는 소장파는 도와주기는커녕 이들이 과연 같은 정당 소속인가를 의심할 정도로 오 시장을 길길이 씹었다. '대표'격인 유승민 최고위원의 발언이나 최경환·정두언 의원 등의 비공개 언급을 보면 그렇게 야비해 보일 수가 없다. 이들은 한마디로 "오 시장이 이기면 내 손에 장을 지져라"는 저주이고, "네가 뭔데 밥먹는 문제를 보수와 정체성에 거느냐"는 식이다. 오 시장이 패배해서 그 정치적 씨마저 마르기를 바라는 투다. 차라리 야당 쪽 비난이 점잖은 편이다. 이쯤 되면 오세훈은 누구 말처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형편에 이른다.

 

오 시장은 애당초 시장직까지 거는 것은 포퓰리즘과 정책 우선순위에 관한 심판이라는 주민투표의 초점을 흐리고 주민투표를 정치화하려는 것으로 비칠까 봐 주저한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이번 주민투표는 이미 정책상의 옳고 그름이냐에 대한 판단이라는 초점을 일탈해버렸다. 그것은 크게는 보수·우파와 좌파·진보의 이념적 대립의 상징물이 돼버렸고 작게는 한나라당의 총선·대선 흐름의 전초전으로 변해버렸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오 시장의 시장직 연계를 끝내 막으려 했던 것은 투표에서 지고 서울시장이 공석이 돼 보궐선거를 치르면 서울시장 자리가 야당으로 넘어갈 것이 걱정이고 그것이 총선·대선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급식문제에는 관심도 없고 시장자리를 껍데기로라도 유지하겠다는 허구적 발상이다.

 

여기서 드러났듯이 한나라당은 이미 패배적이다. 이들의 머릿속은 어느 친박의원의 독설로 채워진 것 같다. "내년 선거 때 저 한나라당 ×, 진짜 애들 밥 먹이는 것도 반대하는 ×들이라고 들이대면 뭐라고 할 것인가." 그들은 스스로 정치란 우선순위를 정하는 문제고 모든 사안의 이해득실을 가려 눈앞의 이익보다 내일의 이득을 선택하는 지혜의 절차라는 것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능력도, 철학도 없는 집단임을 노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오 시장이 이기면 국민의 의사를 잘못 읽은 한나라당은 크게 숙정되고 지도선이 바뀌어야 한다. 오 시장의 시장직 연계는 한나라당 친박·소장파가 바라는(?) 패배의 경우, 그 피해를 오 시장선()에서 끊는 방파제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서울시민의 입장에서는 투표가 성립돼서 시민들의 찬·반 의사가 분명해지고 어느 쪽이 이기고 진 것인지를 수치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사리(事理)가 분명해지고 정치적 전망도 밝아진다. '나쁜 투표'란 없다. '나쁜 정책' '나쁜 법안'은 있을지언정 '나쁜 투표'는 있을 수 없다. 투표행위가 나쁘다는 것은 반()민주주의적이다. 투표행위로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가리는 것이 민주주의의 요체이고 헌법정신에 부합한다.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의사표시, 즉 기권은 있을 수 있고 유권자의 권리이기도 하다. 기권은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유효투표의 결과에 따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누가 되건, 어느 쪽이 이기건 지건 이의가 없다는 의사표시다. 하지만 주민투표의 경우, 투표율이 3분의 1에 미달해 투표함이 열리지 못하면 유효투표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야권이 제기한 전면 무상급식이 자동적으로 이기는 것이 된다. 사람을 뽑는 선거의 경우 현직(現職)이 자동적으로 당선되는 셈이다. 누가 이기든 상관없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이들의 무상급식 문제에 서울시민이 얼마나, 또 어느 비율로 자기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지 알고 싶다. 찬성을 해도 분명히 해서 이 문제의 종결자로 자처할 것이냐, 아니면 반대를 해도 분명히 해서 현시대 현시점의 시민 의식을 역사에 기록으로 남길 것이냐그것이 서울시민의 권리이고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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