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빛'을 잃은 시대… 종교를 넘어 절절한 그리움을 말하다

풍월 사선암 2011. 7. 1. 11:21

[오늘의 세상] ''을 잃은 시대종교를 넘어 절절한 그리움을 말하다

 

불교 승려가 개신교 목사의 '통합' 정신에 경의를 표했다. 성공회 신부가 가톨릭 추기경을 두고 "아직도 그립다"고 했다. 가톨릭 신자인 교수가 "스님을 통해 죽음 이후의 세상을 봤다"고 했다.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라는 한탄이 커지고 있지만 종교인들은 세상은 물론 타종교까지 포용하려는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30일 서울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참종교인이 바라본 평화 :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 법정 스님과의 대화' 행사가 열렸다. 3대 종교에 속한 단체인 김수환추기경연구소(가톨릭), 대화문화아카데미(기독교), 맑고향기롭게(불교)가 공동 주최했다. 세상 근심이 깊을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세 사람의 높은 뜻을 기리는 자리다. 전 조계종 총무원장 송월주 스님이 강원용(1917~2006) 목사, 성공회 김성수 대주교가 김수환 추기경(1922~2009), 길상사 관음상을 조각한 천주교 신자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가 법정 스님(1932~2010)을 향해 절절한 그리움의 말을 쏟아냈다.

 

김성수 대주교가 김수환 추기경에게"천주교라는 교단 넘어 모두의 친구이자 사제"

 

제가 처음 김수환 추기경님을 뵈었을 때가 마흔 살쯤 되었을 때였죠. 아마 그때는 김 추기경님이 서울교구장 주교님으로 계실 때였습니다. 이제 저도 벌써 어느덧 여든이 넘어 버렸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 이천환 (성공회) 주교님, 강원용 목사님까지 이렇게 세 분이 모이면 대체로 강 목사님이 말씀하시고 다른 두 분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지그시 웃곤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참으로 어려운 시기에 가난한 자에 대한 복음을 몸으로 사신 분들이에요. 특히 김 추기경님은 청계천 아이들과 철거민들 그리고 소록도에 있는 한센병과 에이즈 환자들, 단식 농성하는 여공들 곁에도 계셨어요. 당신이 위로가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셨죠. 남들에게는 아주 보잘것없는 곳이라도 바로 그곳이 예수님께서 계신 곳이라 하여 절대 망설이지 않으셨어요.

 

그분은 천주교라는 교단을 넘어서 우리 모두의 친구이고, 사제이고, 주교이고, 추기경이셨어요.

 

참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뜻을 기리려면 아픔, 슬픔, 상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함께해야 될 것이고, 교단과 종교를 넘어서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이 사회에 보여줘야 합니다. 그분이 보여주신 삶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송월주 스님이 강원용 목사에게"채움 아닌 비움을 통해 진실한 소통 이뤄낸 분"

   

5년 전 강원용 목사의 소천(召天) 소식에 '가름''다툼'이 끊이지 않는 한국 사회에 경책의 죽비를 내려칠 어른이 사라졌다는 생각으로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생전에 강조한 '창조적 통합''대화를 통한 화합'의 정신은 그를 떠나보낸 슬픔과 함께 우리 마음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기독교의 사명은 세상을 기독교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화하는 데 있다. 하나님은 크리스천이 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된 것'이라는 생전의 육성이 새삼 귓전을 울립니다.

 

고인이 1965년 크리스천아카데미를 설립한 건 개신교, 천주교, 불교, 유교, 천도교, 원불교 등 6개 종교 지도자가 얼굴을 맞대고 더불어 평화를 고민했던 가히 혁명적 사건이었습니다. 진실로 소통하고 화합하고 싶다면 우리에게 요구되는 건 채움이 아닌 비움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맞닿으려면 마음에 친 장막부터 걷어내야 합니다.

 

'어느 편이 절대선이고 반대편은 절대악'이란 사고방식은 아집과 몰이해의 산물입니다. 나의 신앙과 신념을 고수하기 위해 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남의 생명과 행복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 참다운 순교입니다. 강 목사님의 신조 역시 이와 결코 다르지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그것이 참된 종교의 길이요 인간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신자 최종태 교수가 법정 스님에게"당신이 세상에 남긴 건 희망이라는 큰 선물"

 

법정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스님은 "그럴 때 불가(佛家)에서는 독화살 이야기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얘기는 한마디로 끝났습니다. 설명을 붙이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입니다. 독이 묻은 화살을 맞았으면 우선 화살을 뽑아야 합니다. 지금 현재의 삶이 중요하다, 지금을 사는 것이다. 한 말씀으로 나는 단박에 알아들었고 가슴 속을 답답하게 가렸던 거대한 산이 일시에 무너지는 것을 봤습니다.

 

저는 평소 길상사 마당에 관음상을 만들고 싶다는 말을 여기저기 했습니다. 오랫동안 생각한 일이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을 만났을 때 '언젠가 내가 관음상을 만들면 천주교회가 나를 파문하지 않을까요'하고 물었습니다. 추기경님은 "아니지요. 일본 천주교 박해시대 천주교 신자들은 기도할 때 관음상을 놓고 했습니다'고 하셨습니다.

 

법정 스님은 관음상을 이렇게 만들라, 저렇게 만들라는 주문을 일절 하지 않으셨습니다. 신기한 것은 나도 전혀 걱정이 없었습니다. 20004월 점안식 때 나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땅에는 경계가 있지만 하늘에 무슨 경계가 있는가'.

 

김 추기경과 법정 스님 두 분의 죽음을 보며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두 분은 가시면서 세상에다 '희망'이란 큰 선물을 놓고 가셨습니다.

 

조선일보 이태훈 기자 / 입력 : 2011.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