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 (黑海 Black Sea)
유럽 남동부와 아시아 사이에 있는 내륙해(海). 면적 약 42만 200㎢, 동서길이 약1,150km, 남북길이 약610km, 수심 약2,210m(최대수심)로 동쪽으로 러시아연방과 그루지아, 서쪽으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와 경계를 이루며 남쪽으로 터키, 북쪽으로 우크라이나와 접해 있다.
흑해의 표층수온은 여름에 평균 30℃, 겨울에 6℃ 정도이며 표층염분은 강을 통한 민물의 유입과 많은 비로 18% 내외의 저 염분이다. 흑해 7500년前까지 담수호였으며, 흑해의 나이는 7500살로 판명되었다, 7500년 전까지 담수호였던 흑해는 지중해의 바닷물이 흘러들어 바다로 변했다. 이 대범람이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를 비롯한 중동지역의 홍수 신화를 탄생시켰다는 학설을 뒷받침할 증거가 발견됐다.
미국 내셔널지오그래픽 탐사팀은 터키의 시솝에서 약 193㎞ 떨어진 흑해 해저 95m 지점에서 7500여년전 주거지 유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견은 흑해의 수면이 현재보다 약 168m 낮았으며 7500년 전까지 흑해(黑海)에서는 민물조개가 살았다는 탐사팀의 지난해 조사결과와 일치하는 것이다.
학자들은 유럽의 빙하가 녹으면서 지중해의 수면이 높아졌고, 보스포러스 해협이라는 천연 댐이 막아내던 지중해의 해수가 2년 동안 흑해로 흘러들어 담수호를 바다로 변모시켰다고 설명했다. 펜실베니아대학의 프레드릭 하이버트 박사는 [흑해가 담수호였을 무렵 사람들이 흑해 주위에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며 이들이 중동지역으로 퍼져 나가면서 다양한 신화가 탄생한 것 이라고 설명했다.
흑해의 역사
최초로 흑해를 찾아온 그리스인 항해가가 연안에 살던 원주민에게 사살되었기 때문에 이 바다를 폰토스아크세노스(이방인에게 비우호적인 바다)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BC 8∼6세기에는 연안에 올비아 ·판티카파이온 · 시노페 등 그리스의 식민시(市)가 발달하여 내륙의 스키타이인(人)이나 사르마트인(人)들과 곡물 · 노예 · 포도주 · 무기 등의 교역으로 번영하였기 때문에 폰토스에우크세이노스(이방인에게 우호적인 바다)라고 불렀다.
그 후 BC 1세기에는 폼페이우스의 동방 진출로 남서안이 로마령(領)이 되었고 이어 BC 2세기 초에는 트라야누스 황제에 의하여 연안의 대부분이 로마 제국에 편입, 로마의 내해가 되어 비잔틴 제국에 계승되었다. 슬라브인(人)이 북서안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6∼7세기이며, 9∼12세기의 키예프 루스 시대에는 ‘루스의 바다’ 라고도 불렀다.
13세기에는 몽골인(人)의 유럽 침입에 의해서 슬라브의 세력이 한때 후퇴하였고, 이어서 15∼16세기에 오스만투르크가 연안지역을 정복하고 투르크의 바다가 되었을때 비로소 ‘흑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는 광막한 바다에서 이따금 때아닌 폭풍이나 짙은 안개로 위험에 휩싸이게 되는 데서 유래하였다. 근대에 이르러 투르크 제국이 쇠퇴하기 시작하자 러시아의 남진이 재개되어(17세기 말), 표트르 대제(大帝)의 아조프 점령에 이어 수차의 러시아-투르크전쟁에서 러시아는 차차 흑해의 지배권을 장악하였고(18∼19세기), 이윽고 지중해로 진출할 태세를 갖추었다.
여기에 열강(특히 영국 ·프랑스)의 이해가 충돌, 결국 크림전쟁(1853∼1856)을 초래하였다. 러시아는 패배하여 기득권(특히 함대 보유권과 연안 요새 구축권)을 상실하고 흑해의 중립화가 확립되었다. 러시아는 그 후에도 집요하게 지배권의 회복을 도모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로잔 회의(1922∼1923) · 몽트뢰 회의(1936)를 거쳐 현재 흑해는 모든 나라의 상선(商船)에 개방되어 있으나, 군함에 대해서만은 연안에 영토가 없는 나라는 제한(4만 5000t 이상은 집결할 수 없음)을 받는다. 출입구인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의 군함 통항권도 끊임없이 국제문제가 되고 있다. 터키는 전시에 한해 이 해협을 모든 나라의 군함에 대해서 폐쇄할 수 있다.
신(新)냉전 [긴장의 바다] 흑해
흑해함대 (黑海艦隊)통제권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에 심각한 마찰이 빚어지고 있는 구소련의 대표적인 함대. 우크라이나 크리미아반도 세바스토볼항을 모항으로 하는 이 함대는 지중해에서 미6함대에 맞서는 전략적 기능을 수행해 왔다.
우크라이나는 자국 내에 기지를 두고 있는 흑해함대 중 비핵탑의 전력은 우크라이나에 귀속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러시아는 독립국가연합(CIS)의 전략통합군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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