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고전음악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 클래식 소품

풍월 사선암 2011. 3. 29. 00:06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Conductor - Herbert Von Karajan

 

1.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교향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주

Richard Strauss - Thus Spoke Zoroaster,tone poem for Orchestra,

Op. 30 Introduction

 

2.베토벤 - 교향곡 제5"운명" 1악장

Beethoven - Symphony No. 5 in C minor "Fate", Op. 67 I. Allegro con brio

 

3.무소로그스키 - 전람회의 그림(라벨 편곡) 10, 키에프의 대문

Mussorgsky - Pictures at an Exhibition for Orchestra

orchestrated by Ravel 10. The Great Gate of Kiev

 

4.라벨 - 볼레로

Ravel - Bol?ro, Ballet for Orchestra

 

5.바그너 - 발퀴레의 기행

Wagner - Die Walk?re, Opera, WWV 86b The Ride of the Valkyries

 

6.생상 - 교향곡 3"오르간" 4악장 피날레

Saint-Saens - Symphony No. 3 in C minor "Organ", Op. 78 Finale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클래식음악에서 지울 수 없는 이름

 

'카라얀, 혹은 내가 본 아름다움'(Karajan, or beauty as I see it)을 보았다. 를린 필하모닉과 빈 필하모닉을 오가며 클래식음악계를 주름잡았던 명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 대한 다큐멘터리. 아카데미상 후보로도 오를 만큼 그 능력을 인정받은 로버트 돈헬름(Robert Dornhelm)의 작품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무엇보다 재미있다. 카라얀의 미망인과 딸은 물론 그과 함께 작업했던 연주자들, 그에게 배웠던 지휘자들이 나와 카라얀을 회고한다. 다른 데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고, 그의 음반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뉘앙스와 맥락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안네-소피 무터,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 왕년의 명성악가인 군둘라 야노비츠와 르네 콜로, 크리스타 루드비히, 카라얀의 직계 제자중 한 사람인 세이지 오자와, 지금 베를린 필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사이먼 래틀, 카라얀의 적자로 여겨지는 크리스티안 틸레만 (뮌헨필에 오래 있었고 곧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의 지휘자가 된다), 정치가인 헬무트 쉬미트 등이 실로 입체적이고 친밀한 카라얀 회고담을 들려준다.

 

클래식음악을 음반으로 즐겨 듣는 사람치고 카라얀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타계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그의 음반은 여전히 지구촌 어디에선가 팔려나가고, 연주된다. 클래식음악을 들으면서 그를 빼놓기는 불가능하다.

 

아니, 클래식음악을 듣지 않는 사람조차도, 은발의 꽃미남이 지휘봉을 잡고 명상하듯 눈을 감은 카라얀의 얼굴을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그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그가 만든 음반을 한두 장쯤 들어보지 않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네빌 매리너에 의해 기네스북의 최다 음반 제작 기록이 깨지긴 했지만 적어도 음반 판매량이나 영향력, 인지도로 따진다면 카라얀은 여전히 난공불락이고, 아마도 앞으로 오랫동안 - 어쩌면 영원히 - 그 아성을 이어갈 것으로 여겨진다.

 

그처럼 클래식음악의 모든 부면을 뒤덮다 보니, 음악을 들어가는 가운데, 카라얀 기피증 비슷한 현상도 종종 나타난다. 내가 그랬다. 카라얀의 여러 연주들은 지나치게 과장한 것처럼 들렸고, 때로는 부러 거칠게 연주해야 할 듯한 대목도 한없이 아름답고 로맨틱하게만 연주하는 것 같았다. 드뷔시, 브루크너, 비제 등의 연주는 기막혔지만 바흐나 비발디의 음악을 대편성 오케스트라로 부풀려 연주하는 데는 약간 혐오감이 들 지경이었다. 그리고 다른 덜 알려진 - 그러나 그 실력에서는 분명 그에 못지 않을 - 지휘자들의 참신한 연주를 만나면서 점점 더 카라얀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러다 다시 카라얀과 이리저리 마주치게 되었다. 브루크너에서, 그 다음에는 말러에서였다. 그의 마지막 레코딩이라는 브루크너 7번은, 그 지극한 아름다움이 눈물겨울 정도였다. 말러의 '죽음에 대한 명상'9번 실황은 또 어떤가. 카라얀이 꼭 겉멋만 내는 사람은 아닌게 아닐까? 후르트뱅글러와 비교되어 언제나 '돈과 권력에 눈먼 지휘자'로 부당하게 격하된 것은 아닐까? 그런 물음이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돈헬름의 이 다큐멘터리는, 카라얀에 대해 흔히 들어 온 - 특히 한국과 일본의 평단에서 이런 말이 많이 돌았다 - '실력보다 허영과 상업적 감각과 정치적 영향력으로 클래식 음악/음반계를 장악했던 인물'이라는 단정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가를 실로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사이먼 래틀의 말 - "카라얀에서 '불쉿'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주위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카라얀 자신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불쉿(bullshit)은 말하자면 허영이나 헛소리, 가식, 허튼 짓 같은 것인데, 카라얀 자신은 그것과 전혀 무관했다고 래틀은 강조한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카라얀의,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독단적이고 강압적인 리허설 장면에서, 연주의 완벽성을 추구하는 그의 집착이랄까 강박이 절절히 드러난다.

 

번스타인과 비교한 크리스타 루드비히의 말도 인상에 남는다 - "번스타인은 그 자신이 음악이었고, 카라얀은 음악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멘트의 앞뒤로, 말러의 5번을 리허설 하는 두 지휘자의, 지극히 상반된 스타일이 마치 평행선을 그리듯 비교되어 펼쳐진다. 그 장면을 보면서, 카라얀이 말러 사이클을 단 한 번이라도 해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더욱 컸다.

 

(그라모폰에 기고한 리카르도 샤이의 회고에 따르면 카라얀은 말러를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을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는 샤이가 말러 10번을 연주하는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 불러 그 곡 연주가 어려우냐고 물었다고 한다. 샤이가 매우 어렵다고 대답하자 "그러면 나는 그 음악의 악보를 보면 안되겠군"이라고 카라얀은 말했다고 한다. "마에스트로,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에스트로처럼 뛰어나신 해석자가 보신다면 굉장한 말러를 연주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자 카라얀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어떤 음악은 때로 너무 늦게 찾아온다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니, 카라얀의 음악이 다르게 들린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음악에 대해 거의 도착증 환자와도 같이 치열하게 접근했던 음악의 장인, 상업적 감각의 천재, 소리의 균형과 새로운 사운드 테크놀로지에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졌던 사운드 엔지니어...

 

"20년쯤 뒤에 태어났더라면 더욱 흥미로웠을 것 같다"라고 카라얀은 말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그가 유튜브와 아이튠즈의 신세계를 봤더라면 어떤 음악적 프로젝트를 펼쳤을까? 상상만 해도 흥미진진하고, 그래서 그가 이 세상을 떠난 것이 더욱 아쉽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그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수많은 음반과 영상으로, 그리고 지금 본 다큐멘터리로... 새로운 시각과 이해 뒤에 다시 듣는 카라얀이, 각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지막 보너스 비디오 - 파바로티의 젊은 시절, 아직 날씬하고 수염도 없던 시절, '황금의 트럼펫'이라는 별칭은 카루소가 아닌 파바로티에게 주어져야 마땅하다는 명백한 증거. 이런 절창을 다시 보고 들을 수 없다는 아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