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문학동네에 살고 지고…] 박완서의 '나목'

풍월 사선암 2011. 1. 22. 11:46

박완서(朴婉緖, 1931년 10월 20일 ~ 2011년 1월 22일 )는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경기도 개풍(현 황해북도 개풍군) 출생으로, 세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로 이주했다. 1944년 숙명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교사였던 소설가 박노갑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작가 한말숙과 동창이다.1950년 서울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그해 여름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숙부와 오빠를 잃는 등 집안에 비극적인 사건들이 겹치면서 생활고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종교는 천주교로서 세례명은 정혜 엘리사벳이다.1953년 직장에서 만난 호영진과 결혼하여 1남 4녀를 두었다.40대에 접어든 1970년 〈여성동아〉 장편 소설 공모전에 《나목(裸木)》으로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이 소설은 전쟁 중 노모와 어린 조카들의 생계를 위해 미군부대에서 근무할 때 만난 화가 박수근에 대한 내용이다. 작품 경향은 자신의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분단의 비극을 집요하게 다루거나 소시민적 삶과 물질중심주의와 여성억압문제를 그린 내용이 많으며,[1] 후기 작품 역시 1988년 병사한 남편을 간호하며 쓴 간병기 형식의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1991)을 비롯해 어린 시절과 전쟁 중 경험을 서술한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2) 등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을 토대로 한 작품이 주를 이룬다.

2011년 1월 22일 토요일 아침6시 17분, 지병인 담낭암 투병 중 사망하였다.

 


 

[문학동네에 살고 지고…]박완서의 '나목'

 

간판쟁이 중에 진짜 화가가 섞여 있었다는 건

사건이요 충격이었다.

- 박완서 -

 

"소설이란 거리로 들고 다니는 거울"이라고 스탕달은 말했고 사르트르는 "소설을 읽는 것은 그 거울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라고 했다. 시대라는 거울, 사회라는 거울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소설가가 박완서이고 그 소설이 '나목'이다.

 

박완서는 경기도 개풍에서 1931년 태어나 세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 할아버지 댁으로 와 매동초등학교를 마치고 숙명여고에 입학한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소개령에 따라 개성으로 갔다 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하나 전쟁으로 중단되고 오빠와 삼촌마저 잃게 돼 51년 미군부대에 취직한다.

  

박완서가 미8군 PX 초상화부로 옮긴 것은 52년. 장병들이 들고오는 개인이나 가족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주는 무명 화가 틈에는 박수근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화집을 한 권 옆구리에 끼고 출근을 했다. 나는 속으로 '꼴값하고 있네. 옆구리에 화집 낀다고 간판쟁이가 화가될 줄 아남!'하고 비웃었다." 박완서의 '초상화를 그리던 시절의 박수근'이라는 글의 한 대목이다. 이 거울에서 박완서의 '나목'이 탄생한다.

 

박수근은 14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양구초등학교 시절부터 미술 점수가 최상급이었으나 아버지의 광산업 실패로 진학을 못한다. 그림 재주를 아껴주던 교장과 담임 선생의 격려로 32년 18세의 박수근은 수채화 '봄은 오다'로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입선한다.

 

이후 43년까지 선전에 꾸준히 입선을 거듭하면서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해 40년 평남도청 서기로 들어간다. 해방을 맞아 금성중학 미술교사로 자리를 잡는가 했더니 6.25를 만나 식솔을 끌고 서울로 내려와 미군부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끝내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65년 박수근은 생애를 마감한다.

 

1970년 장편 ‘나목’의 당선 시상식을 마치고 남편과 함께 한 박완서

 

결혼 하고 아들 딸 낳고 평범한 주부가 된 박완서는 68년 '박수근 회고전'이라는 기사를 보고 전시회가 열리고 있던 신문회관으로 달려간다. 생전에 빛을 보지 못했지만 화단의 놀라운 평가를 받고 있는 그의 그림 세계는 물론 엄두도 낼 수 없는 그림 가격에 박완서는 알지 못하게 가슴이 뛰었다. 그래 철 없는 나이에 바라보았던 한 예술가의 초상을 쓰자며 '여성동아'의 장편소설에 응모했다. 그리고 70년 11월 박수근을 쓴 소설 '나목'이 당선됐다.

 

숙명여고에서 문학소녀로 만난 박완서와 한말숙은 동창을 넘어 문단의 짝꿍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내가 하던 '한국문학' 79년 12월호부터는 박완서의 '오만과 몽상', 다음 달부터는 한말숙의 '아름다운 영가'가 나란히 연재된 것도 우연이랄 수만은 없다. 한말숙보다 13년 늦게 문단에 들어섰지만 박완서가 그동안 닦고 닦았던 거울은 알라딘의 램프처럼 끝없는 이야기를 샘솟게 하고 있다.

 

박완서가 동인문학상을 받을 때 "친구를 잘 둬서 축사도 하게 됐다" 던 한말숙의 덕담이 어찌도 아름답던지. 두 분이 '한국문학'걱정을 많이 해주던 일도 이제야 적는다.

 

이근배 <시인.한국시인협회장> 2003. 3. 16.

 


 

나목(裸木) / 박완서

 

■ 줄거리

 

6.25 전쟁 와중에 폭격으로 두 오빠를 잃은 이경은 서울의 고가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단둘이 살고 있다. 오빠들이 죽은 후 그녀의 어머니는 삶의 활기를 완전히 읽고 그녀에게는 전혀 무관심해진다. 그녀는 미군 부대 안에서 미군들로부터 초상화 청탁을 받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옥희도라는 화가가 그 곳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외로움과 절망감에 빠져 있던 이경은 어느 사람들과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옥희도를 사랑하게 된다.

 

한편 px 전기공인 황태수는 이경의 사랑을 얻고자 하지만 그녀는 오로지 옥희도에게만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유부남에 아이가 다섯이나 딸린 옥희도와 이경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결국 이경은 황태수와 결혼한다. 훗날 이경은 옥희도의 유작전에서 그가 그린 나목을 보면서 전쟁 당시의 자신의 삶과 옥희도에 대한 회상에 잠긴다.


작품에서 이경은 자신을 사랑하는 평범한 남자 황태수라는 인물을 거부하고 유부남 옥희도를 사랑한다. 이경이 옥희도를 사랑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로 그녀의 성장과정을 들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두 오빠의 사망으로 인한 어떤 상실감, 어머니와 딸만의 단 둘의 가족관계에서 벗어나고픈 욕망, 그저 그렇게 돈이나 받아가면서 생계를 유지하려는 환쟁이들 사이에서 이경은 황량한 풍경이 담긴 눈을 가진 옥희도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이경은 옥희도가 하나의 거목으로서 늘 자신이 다가와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옥희도는 이경에게 있어 아버지이자 두 오빠인 것이다. 그런 옥희도를 이경은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옥희도는 사랑하는 사이보다는 어울리는 사이가 더 축복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며, 태수와 잘 어울리는 한쌍이라고 말한다.

 

이경은 옥희도의 부인이 생활의 어려움만을 푸념하는 소리를 듣고는 그녀에게 화가의 아내가 될 자격이 없다고 소리치며 뛰어나온다. 그리고 자신이 옆에 있어주는 것이야말로 옥희도가 환쟁이가 아닌 진정한 화가의 길을 갈 수 있는 길이라고 믿게 된다. 그런 이경에게 옥희도는 아버지와 오빠의 환상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그녀의 곁을 떠난다.

 

그후 이경은 그저 평범한 남자 황태수와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를 둘 낳고 살아가게 된다. 어느날 신문에서 고 옥희도 유작전에 관한 기사를 읽고 남편과 함께 전시회를 찾은 이경은 옛날 그녀가 옥희도 집에 갔을 때 그리고 있던 그림을 보고 자신에게는 이 그림이 고목(枯木)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은 그 나목에서 잠시 스쳐간 여인이었을 뿐임을, 부질없이 피곤한 심신을 달랠 녹음을 기대하며 그 옆을 잠시 서성댄 철없는 여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은 6.25라는 시대상황 속에서 여러 사회문제와 인간문제를 드러내는 작품이긴 하지만, 이경 자신에게 있어서는 한 청춘의 성숙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박완서의 <나목>은 박수근의 유화 <나무와 두 여인>(1956)을 제재로 하고 있다. 여기 소개하고 있는 그림이 바로 그것인바, 이 소설에서의 옥희도는 두말할 것도 없이 나목이며, 아이를 업고 있는 여인은 옥희도의 아내, 그리고 머리에 짐을 지고 가는 여인은 작품의 주인공 이경이 아닌가 싶다. 잠시 나목에서 휴식을 취한 여인은 인생의 짐을 머리에 이고 그의 삶을 향해 다시 나아가는 모습을 하고 있는 반면, 아이를 업고 있는 여인은 나목 밑에서 서성이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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