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의 쉼터/고향사선암

곤돌라 타고 즐기는 덕유산의 봄

풍월 사선암 2010. 9. 8. 11:09

곤돌라 타고 즐기는 덕유산의 봄

 

◀ 덕유산 오토캠핑장에서 맞이한 아침 덕유산 구천동계곡에는 덕유산 오토캠핑장이 있습니다.

 

덕유산 오토캠핑장에서의 밤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주변에 널려 있는 나무들을 주워다 불을 지피고, 텐트를 치고 나니 별장이 따로 없습니다. 화로 위에서 익어가는 삼겹살에 소금을 살짝 뿌리고, 쌈무에 싸서 먹으며 즐기는 캔맥주 한 모금은 임금 수라상에 비길 바가 아닙니다.

 

나무 타는 구수한 냄새가 온몸을 적십니다. 달빛 일렁이는 야영장 주변에는 소쩍새 울음소리와 계곡에서 맑은 물소리만이 무심히 흐릅니다. 화로의 불길도 잦아 들고, 산행으로 피곤했던 몸을 자연에 눕히고 계곡의 물소리와 소쩍새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듭니다.

 

아침이 찾아왔습니다. 덕유산 오토캠핑장에 찾아온 아침은 여느 때와 다른 싱그러운 아침입니다. 밤새 온몸을 데워준 침낭은 아직까지도 아랫목처럼 절절 끓는 듯합니다. 계곡의 물소리는 어제와 다름이 없고, 밤새 울던 소쩍새를 대신해 작은 산새의 지저귐이 일렁입니다. 한 줌의 재가 되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 장작들 속에도 아직 온기가 남아 있습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덕유산 향적봉을 오르기 위해 덕유산 오토캠핑장을 나섰습니다. 오토캠핑장에는 어제(5월 14일) 서울에서 내려온 한 가족과 우리 일행뿐이어서인지 아침나절은 조용하다 못해 차분하기까지 합니다.

 

오토야영장이 있는 구천동천은 무주 33경을 한몸에 담고 있는 계곡입니다. 무주 구천동 33경은 옛 신라와 백제의 관문역할을 했던 제1경 나제통문을 시작으로 원당천을 따라 14경 수경대까지 이어지고, 다시 구천동계곡을 따라 백련사와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까지 이어지는 33가지 경치를 말합니다.

 

오토캠핑장이 있는 삼공지구를 나와 37번 국도를 타고 원당천을 잠시 따라가다 무주리조트로 들어섰습니다. 평일이라 한적함이 맘껏 느껴지고,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초록의 물결이 덕유산 자락에 가득합니다.

 

◀ 무주리조트에서 덕유선 설천봉까지 오르는 곤돌라... 곤돌라를 타고 15분 정도면 설천봉 정상에 이릅니다.

 

덕유산에 올라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손쉽게 오르는 방법으로는 무주리조트 내에 있는 곤돌라를 타고 오르는 방법이 있습니다. 곤돌라를 타고 오르면 산행의 맛은 떨어지지만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쉽게 오를 수 있는 장점은 있습니다. 오전 10시부터(주말은 오전 9시 반부터) 운행하는 곤돌라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제법 많습니다.

  

곤돌라를 타고 오르면서 펼쳐지는 풍경이 시야에서 제법 넓어집니다. 올라오는 방향으로는 아래가 까마득하고, 좌우로는 산자락을 마주하고 같이 오릅니다. 참나무, 밤나무, 팽나무 등에 기생을 하는 겨우살이도 눈에 띄고, 이제 막 피어나는 산철쭉도 흰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오르면 오를수록 산색의 점점 옅어지고, 겨울의 티를 벗지 못한 메마른 가지들도 점점 많아집니다. 안국사와 사고지가 있는 적상산도 한눈에 파노라마처럼 스칩니다.

 

◀ 곤도라를 타고 오르다 만난 겨우살이 곤도라의 창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도 멋집니다.

 

곤돌라를 타고 오르면 약 15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1520m에 이르는 설천봉까지 15분 만에 오른다는 것은 어쩌면 덕유산에 대한 예의는 아니었겠으나 산행을 위한 게 아니었으니 덕유산의 넉넉한 자태만큼의 너그러움을 기대하며 향적봉을 향해 올랐습니다.

 

향적봉으로 향하는 길은 주목과 구상나무가 함께 합니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라는 주목들의 모습은 지리산, 태백산, 한라산 등 우리나라의 명품 고지대 산에만 서식하는 것들이어서 더더욱 신비롭기만 합니다. 더구나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것임에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고, 더구나 유전자 소실과 멸종위기에 몰린 나무여서 바라보는 눈길이 더더욱 안타깝기만 합니다.  

 

 반쯤 뿌리가 뽑혔는데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주목 주목은 태백산, 지리산, 한라산 등 높은 고산지대에 서식하며, 살아서 천년, 죽어서도 천년을 산다는 말로 대변되는 나무입니다.

  

드디어 해발 1614m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에 이르렀습니다. 백두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은 동해안을 끼고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소백산 등을 지나 덕유산에 이르고, 덕유산은 소백산과 지리산을 잇는 중간 기점입니다.

 

남한지역에서 4번째로 높다는 덕유산 향적봉, 더이상 올라가려야 올라갈 수 없는 바위 자락의 끝에 올라 한없이 불어대는 바람을 마주합니다. 푸른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구름들이 바람을 타고 유유히 흐릅니다. 덕유산 정상은 아직 때 이른 봄입니다. 겨울철의 밋밋한 색감이 산자락 가득합니다.

 

향적봉을 지나 중봉으로 향합니다. 해발이 높은 덕유산 능선을 따라서는 아고산대 지역입니다. 맑은 날이 적고, 바람과 비가 많은 탓에 기온이 낮습니다. 아고산대에는 키가 큰 나무들이 서식하기 어려운 환경이어서 철쭉이나 진달래, 조릿대 등 낮은 낮은 나무들이 바람과 추위에 견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덕유산 아래는 신록의 계절 5월도 무르익고, 여름을 향해 치닫고 있지만, 아직 진달래도 피지 않는 것만 봐도 기후조건이 매우 열악함을 알 수 있습니다.

  

◀ 중봉에서 바라본 남덕유산으로 향하는 능선... 가까이에는 부드러운 능선이, 멀리는 우람한 산자락이 펼쳐지는 남덕유산 가는 길입니다.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봄은 서서히 찾아오고 있는 듯합니다. 현호색, 개별꽃, 처녀치마 등이 제 색감을 찾아 피어나고 있습니다. 워낙 낮게 자라는 식물들이라 눈여겨보지 않으면 산행하느라 바빠 그냥 지나치기 일쑤입니다. 이런 높은 곳에 나를 놓아두고 살라 하면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지…. 이 작고 여린 식물들은 험난한 자연을 극복하며 제 몫을 다하고 사니 어쩌면 사람들보다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덕유산 산장에 이르니 이제 막 점심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분주합니다. 산장에서 바라보는 산능선의 눈 맛은 가히 장쾌합니다. 저 아래에도 한기가 느껴졌던 엊그제 이곳에는 6~7cm가량 눈이 내렸다고 합니다. 언제 눈이 왔나 싶을 정도로 눈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설경이 정말 멋졌다는 산장지기의 말에 침을 꼴깍거리며 이야기만 들어야 했습니다.

 

잠시 배낭을 풀어헤치고, 컵라면을 먹었습니다. 옆 벤치에서 나눠주는 밥과 김치를 먹으며 산사람의 온기를 진하게 느껴봅니다.

 

덕유산 산장에서 중봉까지도 변함없이 능선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진달래가 예쁜 분홍빛을 머금고 지나는 산객들을 유혹합니다.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주목을 만나고, 겨울빛 이겨내고 올라오는 분홍빛 색감을 만나고, 숨박꼭질하듯 야생화를 기쁘게 만나면서 중봉을 향해 갑니다. 사진에 풍경과 꽃들을 담느라 중봉까지는 한 시간이 훨씬 넘은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중봉에서 더 나가기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을 것 같아 이쯤에서 발길을 되돌리기로 했습니다. 중봉에서 동엽령을 거쳐 삿갓봉, 남덕유산에 이르는 약 15km의 유려한 능선이 길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제 막 진달래가 피기 시작해서 중봉 정상 부근은 자못 분홍빛이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중봉을 돌아 향적봉으로 향하는 길도 오던 길 만나지 못한 봄빛의 색감들을 만납니다. 바위틈에 숨어 핀 흰 야생화, 다시 만난 전혀 다른 모습의 주목들, 그리고 산세들이 어김없이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덕유산 산장을 지나고, 향적봉을 지나 5시간 만의 덕유산 산행이 끝나고, 곤돌라를 이용해 내려오는 길, 덕유산에 사는 수많은 나무들의 환송을 받습니다.

 

이제 한창 봄빛의 필(feel)을 받고 있는 덕유산…. 어제 찾았던 바래봉처럼 철쭉이 한창인 6월에 다시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돌아오는 내내 했습니다.

 

오마이뉴스 문일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