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의 쉼터/고향사선암

무주구천동 / 덕유산 북쪽 계곡, 심산유곡의 대명사.

풍월 사선암 2010. 9. 8. 10:48

무주구천동 / 덕유산 북쪽 계곡, 심산유곡의 대명사.

 

전라북도 무주·진안·장수군은 평균 해발이 400m라 ‘전라북도의 지붕’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재미삼아 지명의 앞글자만 따서 「무진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역이 높은데다 소백산맥 줄기에 둘러싸인 고원지대라 이 세 고을의 여름은 이름 그대로‘무진장’ 시원하다. 겨울에는 무진장 눈도 많이 온다. 아직 교통이 불편한 곳도 많아 인심도 자연도 옛모습 그대로 때묻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세 고을 중 무주군은 전라북도 최동북단에 위치하였다. 경상남.북도와 충청남.북도 4개 도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지리적 여건이 이렇다보니 이곳 주민들 생활권도 자연히 경상도.충청도.전라도로 나뉘어져 있다.

 

동쪽의 설천면과 무풍면은 생활권이 경상남.북도에 속해있고, 남쪽의 적상면과 안성면은 전라북도에 속해 있다. 하지만 무주리조트 스키장이 개장되면서 무주는 일약 전라북도 관광자원 중 으뜸 자리로 뛰어올랐다. 봄.여름.가을엔 무주구천동이요. 겨울엔 무주 스키 리조트로 전천후 관광지로서 요건을 갖춘 것이다.

 

이는 모두 덕유산 덕이다. 태백산맥에서 갈라진 소백산맥이 서남쪽으로 뻗어내리면서 소백산. 속리산 등을 이루어 놓고 남쪽으로 계속 달려나가다 우뚝 멈추어 서서 빚어놓은 산이 덕유산(해발 1,594m)이다.

 

무주구천동은 이 덕유산 북쪽의 계곡을 말한다. 지금도 구천동이라면 심산유곡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데 이 계곡에는 「구천동 33경」을 비롯한 숱한 명승들이 탐승객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이 계곡이 구천동이란 이름을 갖게된 유래가 다양하면서도 재미있다.

 

옛날 덕유산 일대에 9천명의 성불공자(도를 깨닫고자 공을 드리고 있는 사람)가 살아서 처음에는 「구천둔」이라 하다 나중에 「구천동」이 되었다는 설과 90리(실제로는 70리) 깊고도 먼 계곡에 천가지가 넘는 초목이 자라고 있어서 「구천동」이라 한다는 얘기와, 암행어사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인물 박문수가 이 골짜기를 지나다 구씨와 천씨 가문의 큰 싸움을 잘 해결해 준 뒤부터 「구천동」이라 했다는 얘기 등이다.

 

이처럼 구구한 얘기가 얽혀있다는 건 그만큼 이곳 경치가 빼어나다는 반증이 아닐까?. 세칭 33경으로 알려진 무구구천동 제1경은 나제통문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옛날 신라와 백제가 통하던 문이라는 뜻에서 끝자를 따서 나제통문이라 한 것인데 설천면과 무풍면을 가로지른 산줄기의 암벽을 뚫어 만든 바위굴이다.

 

무주군은 통일신라 이전까지 무풍면은 신라, 설천면. 안성면. 적상면. 부남면은 백제 땅이었다. 그러니까 나제통문이 뚫린 산줄기의 동쪽은 신라 땅, 서쪽은 백제땅으로 10m에 불과한 이 굴이 뚫림으로써 신라와 백제가 통하게 된 것이다.

 

아직도 나제통문을 사이에 둔 두 고장의 언어와 풍습은 지금까지도 판이하다. 하여서 나그네는 천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이 나제통문을 지나며 신라의 김유신 백제의 계백장군을 생각한다. 두 나라의 상징적 장수였던 두 사람이 이곳에서 맞닥드렸다는 기록은 어디서고 찾아볼 수 없지만 이 땅의 풀한포기 돌멩이 하나라도 사랑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민초라면 당연히 그런 감회에 젖어봄직한 뜻깊은 장소다.

 

제1경 나제통문에서 제14경 수경대 까지는 국립공원 밖에 위치한 경승지다. 그중 제2경 은구암부터 제11경 파회까지는 무이구곡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다. 조선 고종 때 애국지사인 연재 송병선이 중국의 명승지 무이구곡을 본따 지은 이름이다.

 

무이구곡 중 가장 볼만한 명소는 일사대(제4곡)와 파회(제9곡), 구천동 33경에는 각각 제6경과 제11경에 속한다. 일사대는 일명 수성대라고도 하는데 계곡 위로 가로 놓은 아찔한 출렁다리로 유명하다. 출렁다리 밑에는 수백명이 앉아 놀 수 있는 반석이 있고 그 위로는 맑은 물이 흘러 경승을 이루었다. 파회는 경치가 매우 다채롭다. 고요히 잠겼던 물이 갑자기 쏟아져 내리면서 바위에 부딪쳐 물보라를 일으킨다. 길가에 제법 커다란 바위가 있고 그 위에 노송 한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높이는 1m나 될까 하지만 수령이 천년이나 되어 "천년송"이라고 한다. 바위는 "천송암"이라고 하는데 신라때 일지대사가 이곳을 탑승한 기념으로 솔가지를 꺾어 꽂은 것이 오늘에 이른것으로 전해온다.

 

제1경 나제통문부터 제14경까지는 차를 타고 구경이 가능해서 외구천동, 매표소 안 제15경 월하탄부터 제33경 덕유산 정상까지는 걸어서 둘러 볼 수밖에 없는 관계로 내구천동이라 한다.

 

제15경 월하탄은 달빛에 부숴지는 물보라가 선경을 이뤄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와 사랑을 아낌없이 받던 곳인데 낭만과 서정 담뿍한 이름만 남긴채 지금은 옛모습을 많이 잃었다. 그러나 어찌 생각하면 달빛과 전설은 일맥상통하는 바가 많다. 달빛에 물든 명경지수가 전설을 남기고 사라져 갔거니 우리 모두 그렇게 생각하자.

 

인월담(제16경), 사자담(제17경), 청류동(제18경)을 지나면 제19경 비파담에 닿는다. 일명 「대접소」로 불리는 곳이다. 쏟아지는 물줄기 밑의 소가 비파형을 이뤘다. 옛날 7선녀가 구름 타고 내려와 목욕을 하고 바위 위에 앉아 비파를 뜯으며 놀았다나 어쨌다나?. 그 위로 제33경 덕유산 정상까지는 다연대(제20경), 구월담(제21경), 금포탄(제22경), 호탄암(제23경), 청류계(제24경), 안심대(제25경), 신양담(제26경), 명경담(제27경), 구천폭포(제28경), 백연담(제29경), 연화폭포(제30경), 이속대(제31경), 백련사(제32경)로 이어진다.

무주구천동 제33경 덕유산 정상은 꼭 오를만한 가치가 있다. 희귀한 주목군락을 비롯하여 각종 고산식물이 바다를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날씨가 좋으면 동쪽으로 가야산(합천 해인사가 있는), 서쪽으로 운장산, 남에는 지리산, 북으로는 속리산을 바라볼 수 있다.

 

◆드라이브 메모: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간 고속도로-무주 나들목으로 진입, 적상면-치목터널-무주리조트까지 간다.

 

◆대중교통:영동이나 무주까지 직행버스나 경부선 열차 이용한다. 영동이나 무주에서 무주리조트 행 버스가 10분 간격(07:05∼21:40)으로 운행한다.

 

◆숙박:덕유산 향적봉 아래 '산악인의 집'(063-322-1614)이나 무주리조트 알프스 풍 산악리조트호텔 '호텔 티롤'(02-3489-5371)을 이용할 수 있다. 꽃마을(진달래 백합 개나리)과 솔마을(한솔동 두솔동 세솔동)등 가족호텔및 콘도가 750여실이나 된다. 인근 구천동의 여관과 민박을 이용할 수 있다.

 

◆별미집:무주리조트와 삼공리 사이 도로변에 왕돌회관(063-322-0977,9603)아 있다. 흑돼지 삼겹살 참나무 구이, 산채정식, 포고국밥, 쏘가리매운탕 등 메뉴가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