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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논단] 요즘 좌파는 부패로, 우파는 분열로 망한다

풍월 사선암 2010. 5. 21. 09:23

[아침논단] 요즘 좌파는 부패로, 우파는 분열로 망한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이제 좌파는 무조건 단결해 자기 부패에 눈감고,

우파는 이기심과 가치 따라 분열…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논리는 87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 널리 통용되어 왔다. 87년 6월 항쟁 이후 김대중과 김영삼씨의 분열로 좌파 진영이 집권에 실패한 데 이어 전두환·노태우 정권의 부패가 드러나면서 '진보는 분열', '보수는 부패'라는 이미지가 대중(大衆)들에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2010년 지방 선거를 앞두고 이 논리는 좌파 진영에서 또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민주당·진보신당 등 다섯 개 야당과 4개의 친노(親盧)좌파 시민사회가 추진하는 반(反)MB연대 후보단일화 추진 때문이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시민사회를 대표하여 이를 주도했다. 그는 2007년 대선에서도 "우파 세력에 정권을 절대 내줄 수 없다"는 논리로 정동영 후보 중심의 단일화를 추진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양김(兩金)의 분열로 패배한 87년의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특히 친노좌파 진영은 3년 전까지만 해도 집권세력이었다. 집권 세력은 국정운영 실적으로 평가를 받는다. 이런 민주적 과정을 거쳐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친노좌파 노선은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


그럼 무엇 때문에 국민에게서 외면을 받았는지 치열한 성찰적 토론을 통해 노선(路線)을 재정립하는 것이 순리다. 좌파진영이 이런 자기 개혁 과정을 거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2008년 광우병 대란과 2009년 노 전 대통령 자살 건 탓이다.


진지한 반성이 필요한 시간에 87년식 선동투쟁으로 시간을 허비했고, 백씨 등 구(舊)시대 인물들이 여전히 "뭉쳐라", "우리만이 집권해야 한다"라는 허술한 정치논리를 국민 앞에 재탕 삼탕해 내놓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 2010년 이후 좌파는 분열로 망할 가능성은 없다. 최근의 대선과 총선에선 하나로 뭉쳤어도 무조건 참패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분열로 망한다"고 선동하면서 자꾸 국민에게서 버림받은 노무현식 정략과 투쟁 노선으로 회귀하고 있는 게 망할 징조이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적(敵)을 타도하기 위해서라면 아군의 부정은 눈감고 넘어가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 민주당 최고위원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재판받을 당시 열린우리당의 운동권 출신 75명의 의원들이 법원에 선처를 요구한 경우다. 이런 도덕 불감증 속에서 부정(不正)의 싹이 자라는 것이니 오히려 좌파는 묻지마식 단결로 인한 부패로 망할 위험성이 더 높은 것이다.


반면 이명박 정부를 포함한 우파 진영에는 이와 다른 차원의 문제가 있다. 국정운영에 참여하는 전문가 그룹과 가치(價値)를 지향하는 우파 시민사회와의 분열이다. 건국(建國) 이래 1997년도까지 우파세력이 장기집권하면서 좌파와 달리 우파시민사회는 제때 다양성과 전문성을 갖추면서 성장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대개 북한과 교육문제로 이슈가 집중되었고, 가치를 최우선으로 강조하다 보니 국정운영 세력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현대의 정부는 너무나 다양한 영역에서 정책을 펼쳐나가야 하기 때문에 집권 세력만으로 이 모두를 감당할 수 없다. 영역마다 철학과 비전을 공유하는 시민사회 세력이 존재해야 하며 이들이 이슈를 발굴하고, 입법 청원(請願) 등을 통해 정책 추진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정부의 개혁 정책에 저항하는 관료들도 집중 감시해야 하며, 반대 여론층도 설득해주어야 한다.


현 정부와 여당의 인터넷 정책이 번번이 관료들과 좌파 진영의 반대로 좌절되는 이유는, 이 분야의 우파 시민사회의 취약성과 이로 인한 소통의 부재 탓이다. 특히 천안함 사건 이후 우파 시민사회는 원칙적이고 단호한 대응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에 국정운영상 정부가 이를 따라오지 못하게 되면 분열 양상은 점차 커질 전망이다.


애초에 고도로 민주화가 진행된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과거식의 총체적 부패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없다면 오히려 우파야말로 국정운영세력과 가치지향세력 사이의 분열로 망할 위험성이 더 높은 것이다. 이에 비하면 지금 보수 교육감 후보들의 분열·난립은 작은 문제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케케묵은 도식은 집어던지고, 좌파는 더 적극적으로 분화하여 지지층의 폭을 넓혀야 하며 우파는 상호 소통을 강화하면서 시민사회 영역의 다양화와 전문화를 추진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좌우 모두 서로 망하지 않고 상생(相生)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