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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대표’ 모델인 실제 국가대표 스키점프팀

풍월 사선암 2009. 9. 2. 20:09

 

“불쌍하게 보지 마세요 우린 열정과 재미로 삽니다”



 

영화 ‘국가대표’ 모델인 실제 국가대표 스키점프팀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스키점프 실제 국가대표팀. 앞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흥수 코치, 최용직·강칠구 선수다. 이들은 최근 유럽에서 열린 FIS컵 대회에 출전하고 돌아왔다. 총 5명인 대표팀 가운데 최흥철·김현기 선수는 경기 일정으로 늦게 귀국한다. 

영화 ‘국가대표’(감독 김용화)가 이번 주말 관객 500만 명 고지에 올라섰다. 지난달 말 개봉 초에는 1주 먼저 개봉한 ‘해운대’에 밀려 만년 2위로 그치는가 싶더니, 지난주부터는 주간관객 수 1위를 차지했다. 보기 드문 흥행 뒷심이다. 이런 성공을 누구보다 반기는 이들이 있다. 영화의 소재가 된 실제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다. 영화 개봉 이후 이들의 미니홈피를 찾아 응원메시지를 남기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FIS(국제스키연맹)컵 대회가 열린 유럽에서 최근 돌아온 대표팀 김흥수(29) 코치와 최용직(27)·강칠구(25) 선수를 20일 중앙SUNDAY가 만났다. 현 대표팀은 경기 일정상 현지에 남아 있는 최흥철(28)·김현기(26) 선수까지 모두 5명이다.


김 코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영화를 봤다”고 소감을 표현했다. “관객 반응이 어떨까 해서죠. 막판에 눈물이 나려고 해서 참았어요. 무대인사를 나가야 하는데, 눈이 빨개질까 봐.” 최용직 선수는 “눈물·콧물이 다 났다”고 했다. “영화가 코믹하고도 감동적으로 만들어졌어요. 제일 궁금하고 걱정스러웠던 건 점프 장면이었죠. 저희가 직접 대역으로 촬영하기도 했고, 점프가 특수한 종목이잖아요. 저희가 하면서 느끼는 걸 보시는 분들도 느낀 것 같아 다행입니다.”


김용화 감독 “선수들에게서 영감받아”

 

대표팀은 이처럼 영화에 대한 만족감과 부담감을 동시에 드러냈다. 극중 캐릭터를 실제 선수들과 동일시하는 시선 때문이다. 김 코치는 “강칠구·최흥철 선수는 극중인물과 이름까지 같아 오해가 많다”고 전했다. “영화처럼 정말 소년가장이냐, 양아치였느냐 묻고들 하시는데, 그렇지 않아요. 실제 선수들과 극중 캐릭터가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 감독님이 선수들의 캐릭터를 파악해서 극중인물들에 여기저기 녹인 거죠.” 김 코치는 “(20대 미혼인) 저한테도 딸은 잘 있냐고 쪽지를 보내오기도 한다”며 웃었다. 영화 속 대표팀의 방 코치(배우 성동일)가 다 자란 말썽쟁이 딸을 둔 중년이라서다. “선수들한테 미니홈피에 제 사진 좀 올려달라고 했어요. 저 그렇게 나이가 많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고요.”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김용화 감독은 중앙SUNDAY와 전화통화에서 “선수들을 거듭 만나면서 들은 이야기에서 받은 영감을 등장인물들에게 재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실제로는 최흥철 선수의 집이 음식점을 하는데, 영화 속에는 재복(배우 최재환)이 고깃집 아들로 나오는 식이라는 얘기다.


 

위는 실제 국가대표팀. 사진 한가운데 흰 옷을 입은 사람은 영화 ‘국가대표’의 김용화 감독이다. 아래는 영화 속의 스키점프 국가대표팀.

입양아 출신의 주장 차헌태(배우 하정우) 캐릭터는 실제 입양아 출신의 운동선수들이 모티브가 됐다. 미국 모굴스키 선수 토비 도슨이나 네덜란드 카레이서 리카르도 브루인스 최가 이런 경우다. 김 감독은 “만나 보지는 못했지만 도슨의 사연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직접 만나서 들은 여러 입양인의 사연과 관련 다큐를 참조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대표팀을 초창기부터 이끌었던 최돈국 전 감독도 만났다고 한다. “영화 속 방 코치는 과시욕·허영심이 많은데, 특정 인물을 희화한 것이 아니라 영화적 살을 붙인 캐릭터”라고 말했다.


급조된 팀? 초등학생 때 시작한 꿈나무

 

스키점프 경험이 전혀 없는 영화 속 방 코치와 달리 현 대표팀의 김 코치는 대표팀으로 활동한 선수 출신이다. 김 코치를 포함, 현 대표팀은 다들 초등학생 때 스키점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들이 자란 전북 무주에 1990년대 초 쌍방울이 스키리조트를 세운 것이 계기였다. 쌍방울은 지자체와 손잡고 멀리 동계올림픽 유치를 내다보며 꿈나무 육성에 의욕적으로 나섰다. “운동신경이 좋은 친구들한테 이거 한 번 해볼래, 해서 한 것이 스키점프였어요. 너무 재미있어서 집에서도 자세연습을 하곤 했죠.”


김 코치는 “쌍방울의 투자가 대단했다”고 돌이켰다. 스키점프 불모지인 점을 감안, 일찍부터 외국인 코치를 데려와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방학이면 꿈나무 수십 명을 유럽·일본으로 훈련 보냈다. 이렇게 길러진 중·고교생들은 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에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했다. 막내 강칠구 선수가 조금 늦게 합류했을 뿐, 현 대표팀 대부분이 당시의 원년 멤버다. 영화에는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해 점프 경험이 없는 스키점프 출신들로 대표팀이 급조되고, 이들이 국제대회에서 요행으로 나가노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는 것으로 그려진다.


무주는 97년 초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개최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후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IMF 외환위기가 닥친 그해, 쌍방울은 도산 위기를 맞았다. 이후 2000년대 들어 기아자동차가 후원에 나서기도 했지만 이 역시 3년 전쯤 없어졌다. 돈을 댈 곳이 없어지면서 외국인 코치도 대표팀을 떠났다. 그 무렵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 지금의 김 코치다. 그는 “선수들이 현재 국가대표로 받는 돈은 1년에 훈련수당 360만원이 전부”라고 말했다. 과거 국제대회 성적으로 받는 연금은 매달 30만원에서 최근 45만원쯤으로 올랐다. 대표팀의 열악한 사정은 영화 속의 90년대보다 오히려 최근에 가깝게 들린다.


초창기 열악한 여건? 지금이 더 나빠

 

대표팀 선수들은 자칭 ‘알바(아르바이트)의 고수’다. 대회·훈련이 없는 동안만 틈이 나기 때문에 건설현장 일용직·아파트 분양 홍보 등 단기 알바로 용돈을 벌곤 해 왔다. “골프장에서 시합운영요원으로 선수들에게 물도 날라줬죠. 나도 선수인데, 국가대표인데 자존심이 좀 상하긴 했죠.” 강칠구 선수는 “젊은 나이에 제 또래들이 다 해보는 경험을 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운동에만 전념할 수 없는 게 좀 그렇다”고 속상함을 드러냈다. 다들 미혼인 선수들은 결혼 등 앞으로가 더 고민이다. 최용직 선수는 “대부분 장남이고, 집안에 손 벌리기보다는 집안을 일으켜야 할 형편”이라며 “학생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취직해 안정된 생활을 하는 또래 친구들을 보면 다른 종목을 할 걸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들의 바람은 실업팀기업후원팀 등 운동에 전념할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다. 대표팀 중 최흥철·김현기 선수만 지난해부터 스키실업팀 하이원에 소속이 됐다.


이런 와중에도 스키점프팀은 놀라운 성적을 거둬 왔다. 2003년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정상급의 일본팀을 꺾고 단체전 금메달을 딴 것이 대표적이다. 그해에는 직전의 타르비시오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도 개인전·단체전 금메달을 땄다. 국가대표를 포함, 등록된 스키점프 선수가 7명뿐인 한국의 이런 성과를 해외 언론이 ‘기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스키점프에 대한 관심이 잠시 높아진 것도 이 무렵이다.


대표팀은 올 초 하얼빈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도 개인전 금·은·동메달과 단체전 금메달을 땄다. 이런 경기력은 대표팀 선수들이 스키점프를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김 코치는 “목표가 눈앞에, 조금만 더 하면 되는 곳에 보인다”면서 “힘들지만 돌아설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대표팀 선수들이 쉬는 건 4월 한 달뿐이다. 나머지 11개월은 올림픽·아시안게임 등 종합대회만이 아니라 국제스키연맹이 주관하는 피스컵·콘티넨털컵·월드컵 등 대회와 훈련이 이어진다.


고달픈 이색훈련? 진짜 고달픈 건 체중조절

 

여름의 스키점프 경기는 인런(점프를 위해 활강하는 비탈) 위에 물을 뿌리고 진행한다. 대표팀 선수들의 국내 점프훈련도 주로 이렇게 한다. 김 코치는 “여름에는 물만 뿌리면 되지만, 겨울에는 눈을 붙이는 데 돈이 든다”고 했다. 그렇다고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놀이시설의 후룸라이드에서 스키를 탄 적은 없다. 달리는 승합차 위에서 스키를 신고 서는 장면도 영화가 창작해낸 것이다. 선수들이 들려주는 바에 따르면, 초창기 지상훈련에 이색적인 방법들이 동원되곤 했다. 높은 그네를 타고 공중에서 점프 자세를 잡거나, 롤러 같은 구르는 장비에서 점프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선수들이 고달프게 여기는 건 따로 있다. 훈련이 아니라 끊임없는 체중조절이다. 김 코치는 “몸이 무거우면 점프해서 바람을 타는 데 불리하다”고 설명했다. 스키점프는 점프해서 착지하기까지의 거리와 자세로 점수를 매긴다. 지구력보다는 집중력을 요하는 종목이다. “경기마다 세 번을 뛰어요. 연습 한 번에 1차·2차 시기까지. 그러고 나면 긴장감에 탈진하거나 두통이 나곤 하죠. 더구나 경기 직전에는 밥을 아예 안 먹거나, 초콜릿·과일 정도만 먹으니까.” 최용직 선수는 “평소에도 저녁을 먹고 나면 달리기를 하는 것이 일상”이라고 말했다. 체중감량을 하다 쓰러진 외국 선수들도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현재는 키에 따라 최저체중 규정을 정해 두고 있다.


김 코치에 따르면, 신장 1m75㎝의 선수는 59㎏은 넘어야 한다. 최 선수는 “몸이 작아 보니이까 (건설현장 인력시장에 가서 일감을 기다리면) 빨리 뽑아주지를 않는다”면서 “운동선수라 힘쓰는 일이 오히려 자신 있는데도 잡일이 돌아오곤 한다”고 했다.


대표팀 세 사람은 “우리를 불쌍한 선수로 보지는 말아 달라”고 입을 모았다. “여러 가지 힘든 여건 속에 열정적으로, 즐기면서 하는 선수들로 봐 달라”는 당부다.


이들은 어린 시절 스키점프 훈련 과정을 ‘재미’로 기억했다. 흔히 예상하는 스파르타식의 강압적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얘기다. “초등학생 때였는데도 다른 아이들처럼 놀러 다니는 것보다 운동 나가는 게 더 재미있었어요. 일요일에는 나오지 말라는데도 나가고 싶어 했죠.” 최용직 선수는 “운동을 처음에 즐겁게 배웠기 때문에 더 빠르게 잘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코치는 점프의 매력도 덧붙였다. “공중을 나는 순간의 기분은 어휴…, 말로 못하죠.”

 

이후남 기자


 

김현기 K-125 우승 "날자꾸나, 더 멀리 올림픽 메달 향해…"

평창 대륙컵서도 빛난 '18년 동고동락'… 스키점프 국가대표 4인방 꿈 무럭무럭

 

지난 5일 오후 8시쯤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장. 한국 스키점프 국가대표 김현기(26)가 국제스키연맹(FIS) 스키점프 대륙컵 K-125 개인전 2차 시기를 위해 고도 140m의 점프대에 나타났다. 9000여 관중이 숨을 죽이고 김현기를 올려다봤다.

1차 시기 선두였던 그가 큰 실수만 않는다면 금메달도 가능한 순간이었다.


점프대를 박차고 시속 약 91.7㎞로 힘차게 김현기는 솟아올랐다. 132m. "합계 252.5점으로 김현기가 전체 1위에 올랐다"는 장내 방송과 함께 뜨거운 함성이 경기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 시속 91.7㎞로 밤하늘을 날아갈 때 기분은 어떨까. 출발 전“많은 사람이 나만 보고 있다는 부담감이 들었다”던

김현기는“함성을 뚫고 착지했을 때 금메달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그의 우승은 최근 위암에서 완쾌한 아버지와

'가족보다 가까운 친구'인 국가대표 동료들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었다.

 

■아버지에게 바치는 우승


착지 순간 '해냈다'는 벅찬 마음으로 김현기는 관중석을 바라봤다. 최근 위암 완치 판정을 받은 아버지 김진년(56)씨가 아들의 '화려한 비행(飛行)'에 두 손을 번쩍 들고 기뻐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를 스키점프로 이끈 '등대'였다. 강원도 횡계에서 태어난 김현기는 1990년 무주리조트 관리직으로 일하던 아버지를 따라 전북 무주로 이사했다. 그가 1991년 '스키점프 꿈나무'에 지원한 것도 아버지의 권유 덕이었다. 스키점프팀 창단은 당시 동계올림픽 유치를 노리던 무주의 기획 중 하나였다.


하지만 동계올림픽이 무위로 돌아가고 지원마저 끊기면서 김현기의 고생은 시작됐다. 최흥철·최용직·강칠구와 함께 '한국 1호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됐지만, 1년에 받는 돈은 훈련지원비 390만원이 전부. 막노동은 기본, 인형 탈을 쓰고 행사 보조에 나섰고, 나이트클럽 웨이터로도 뛰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김현기는 대구에서 식당을 하는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결과는 달콤했다. 그는 지난 2월 중국 하얼빈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K-90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 K-125 개인전 은메달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개인전 금메달과 은메달(K-98)을 따내는 '전성기'를 맞았다.

 

▲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FIS 대륙컵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한국 스키점프 국가대표 4인방

(왼쪽부터 강칠구, 최용직, 김현기, 최흥철).

 

■가족보다 가까운 4인방


관중석에 아버지가 있었다면, 경기장엔 김현기가 "가족보다 가까운 친구들"이라고 말하는 국가대표 최흥철(28·6위), 최용직(27·23위), 강칠구(25·25위)가 있었다. 김현기는 "제 친구들이 단체전 금메달을 딴 것처럼 나를 부둥켜안고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이 국가대표 4인방은 1991년 함께 '꿈나무'로 스키점프를 시작한 뒤 현재까지 18년째 동고동락 중이다. 인터넷 구직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생활비와 훈련비로 나눠 썼다.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대학에만 3번(한체대→송호대→대구과학대)이나 같이 입학했다.


오랜 시간 이어진 호흡은 단체전 성적으로 빛났다. 어려서부터 함께 실력을 키워왔기 때문에 실력 편차가 적어, 1991년 이후 동계유니버시아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3개의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다. 동계올림픽에서도 단체전 8위에 올랐다.


이제 4인방의 목표는 내년 2월 밴쿠버 동계올림픽이다. 목표는 단체전 8위에 올라 최종 결선에 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바람 등 변수가 많아 톱 10의 실력 차는 거의 없어 메달 가능성도 있다"고 김흥수(29) 코치는 말한다. 4인방의 스키점프 도전은 영화 '국가대표'보다 더 진한 감동의 드라마가 되고 있다. <조선일보 정세영 기자 / 입력 : 2009.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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