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삶의 향기] 학위 받는 아들에게

풍월 사선암 2009. 8. 25. 08:30

 

[삶의 향기] 학위 받는 아들에게


아들아,

이번 학위 취득을 축하한다.

붕정만리 다섯 해에 이르는 절차탁마의 결실이니 아비로서 기쁜 마음 그지없다.

세상은 거울과 같다. 우리들이 웃으면 그도 웃고, 우리들이 찡그리면 그도 찡그린다.

붉은 안경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붉게 보이고, 푸른 안경을 통해서 보면

모든 것이 푸르게 보이고, 뿌연 연기를 통해서 보면 모든 것이 흐려 보인다.

그러므로 항상 사물의 빛나는 밝은 면을 보도록 겸허하고 겸애해라.

선현들은 지식인의 행동거지는 네 가지 성품에서 우러나와야 함을 강조한다.

첫째 온아(溫雅). 온순하고 단아하여, 거칠거나 흐트러지지 않는 성품이다.

고정관념에 빠져 고집을 부리거나 과도한 언행으로 무례를 범치 않는다.

둘째 교결(皎潔). 문학작품에서 ‘달빛이 교교하다’는 표현을 종종 보지 않니.

맑고 깨끗한 성품이 교결이다.

셋째 정민(精敏). 정확하고 민첩한 성품으로 ‘온아’와 대조적인 것 같으나

온아하되 얼마든지 정민할 수 있다.

넷째 관박(寬博). 너그럽고 큰 마음, 관용이라 할 수도 있겠다.

교결하고 정민하면서도 관박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이런 성품들을 갈고 닦는 지식인은 인(仁)의 도리를 체득해 나간다 할 수 있다.


아들아,

인생은 끊임없는 각고정진의 길이다.

언덕이 있고, 내가 흐르는가 하면, 진흙 밭도 있다.

평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먼 곳으로 항해하는 배가 바람과 파도를 만나지 않고 평탄하게만 갈 수는 없다.

풍파는 언제나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차라리 고난 속에 인생의 기쁨이 있다고 생각하여라.

잔잔한 항해, 그 얼마나 단조로운가!

고난이 심할수록 네 가슴은 희망에 뛸 것이다.

별들은 가장 캄캄한 밤에 가장 밝게 빛난다.

포도는 포도즙 틀에서 으깨어질 때 가장 진한 향기를 발하고,

어린 나무들은 바람이 가장 세차게 불 때 더욱 뿌리를 깊게 내린다.

금과 은 또한 굳세게 문지를 때 더욱 윤이 난다.

역설적이게도 세상 모든 것들은 가장 심한 시험을 받을 때 가장 큰 승리를 거두고,

가장 큰 고난이 닥쳤을 때 가장 큰 영광을 얻게 된단다.


아들아,

사람들은 인생의 마지막 항구를 향해 저마다 자기 배를 출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배에 사랑도 싣고, 희망도 포부도 싣고, 또 양심과 정의,

의리와 우정도 싣는다. 그러나 그 배에 너무나 많이 실었다고 느껴질 때

잘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 쉽게 나아가기 위해서 사람들은 하나 둘 버리기 시작한다.

양심을 버리고, 희망을 포기하고, 사랑도 정의도 버리며 짐을 줄여 나간다.

홀가분해진 배는 그런 대로 달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인생의 마지막 항구에 도착하면, 결국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이

배는 텅 비고 만다. 이때에야 후회하고 탄식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래서 인간은 저마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용기와 희망의 자유를 지니려

진력한다. 진실하고 굳건한 정신의 자유를 갖지 않는 한,

그 무엇도 참다운 뜻을 전하거나 받을 수 없다.

인간은 삶이 영위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정의와 우애가 뿌리내리도록 힘써야 한다.

삶은 하나의 축복이며, 이를 깨닫는 이에게 세상은 빛이 넘치는 곳이리라.


아들아,

아비는 늘 자신의 부족함을 탄식하면서

자식에게는 그 부족함을 채우라고 욕심을 갖는단다.

 


       ◆고정일 - 소설가 '동서문화' 발행인

          약력 : 성균관대 국문과·동대학원 졸업, 소설 ‘청계천’으로 등단,

          장편소설 ‘얼어붙은 장진호’ ‘애국작법’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