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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피린의 효능

풍월 사선암 2009. 8. 14. 00:24

 

올해 환갑을 맞은 박두혁 건양대병원 홍보이사는 매일 아스피린을 한 알씩 먹는다. 1년 전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았더니 의사가 "고혈압과 경동맥쪽 경화가 있는데 따로 치료하기보다는 아스피린을 먹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아스피린은 처방이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이어서 약국에서 구입해 매일 아침 식후에 먹는다.

 

박 이사는 "몸이 좋아진다든가 하는 자각 증상은 전혀 없지만 심혈관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니 믿고 먹는다"고 말했다.

 

대기업 이사 정 모씨(53)도 오십 줄에 들어선 4년 전부터 매일 아스피린을 먹는다. 특별히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아버지와 삼촌이 모두 고혈압으로 사망하는 등 심혈관질환에 취약한 가계력 때문이다. 의사인 친구가 "보험에 든 셈치고 먹으라"고 권했다.

 

하일성 대한야구협회(KBO) 사무총장,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가수 방실이도 아스피린을 먹는다. 하 총장의 경우 2002년 심근경색으로 수술을 받은 후 100㎎짜리 저용량 아스피린을 매일 한 알씩 먹고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4년 심장수술을 받고 나서, 가수 방실이는 지난해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나서부터다.

 

서울 송파구에서 개인병원을 하는 남 모 원장(57)은 "내가 아는 50대 이상 의사들 절반 이상이 아스피린을 복용한다"며 "아스피린만큼 싸면서 효과가 좋은 심혈관약이 없다"고 말했다.

 

◆ 5년 사이 아스피린 소비 5배 늘어

= 오랫동안 해열진통제로만 알려져 온 아스피린을 비타민처럼 매일 복용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아스피린이 심근경색, 뇌졸중 등 각종 심혈관질환 예방에 특효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아스피린은 용량에 따라 500㎎ 고용량과 100㎎ 저용량으로 나뉘는데 이 중 고용량이 해열ㆍ진통제, 저용량이 심혈관질환 예방용이다.

 

제약 분야 전문 조사기관인 IMS헬스코리아에 따르면 2000년에 8286만9200정이었던 저용량 아스피린 소비량은 2005년에 4억3520만정으로 늘었다. 최근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지난해 6억정 이상 판매됐을 것으로 추산한다. 성지동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을 경험한 환자라면 거의 100%,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잠재적 위험이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아스피린을 먹는다"며 "하루 한 알 먹는 것만으로 그보다 수십 배 이상 비싼 항혈전제와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아스피린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 매일 먹으면 심장병 위험 줄어

= 미국의사협회(AMA)는 지난 6월 열린 2008년 연례회의에서 심혈관질환 및 뇌졸중 위험 예방을 위해 저용량 아스피린의 적절한 복용을 권고해야 한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최근 임상연구에 따르면 하루 100㎎의 아스피린 투여로 심장병은 44%, 뇌졸중은 4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고 폐색전증과 심정맥혈전증 발병률도 33% 이상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심장학회(AHA) 역시 아스피린이 매년 5000명 이상의 미국인을 심장마비에서 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아스피린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심혈관질환 예방 필수 약물 리스트에도 올라 있다.

 

아스피린 복용이 권장되는 대상은 심혈관질환 발생이 염려되는 40대 이상 남성, 폐경기 이후 여성, 흡연자, 당뇨병 환자,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사람 등이다. 이런 위험요인을 갖고 있다면 자신의 몸상태에 대해 의사와 상의한 후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된다.


◆ 반드시 의사와 상의 후 복용해야

= 간혹 의사와 상의 없이 자의적으로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문가들은 심혈관질환자 중에서도 아스피린에 대한 저항성을 보이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자의적 복용은 삼가라고 경고한다. 박상해 고려대 안암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드물게는 아스피린이 심근경색 위험을 높이는 특이체질도 있다"며 "복용은 반드시 의사와 상의한 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저용량 아스피린은 바이엘의 '아스피린 프로텍트', 보령제약이 호주 웨인사에서 수입한 '아스트릭스'가 대표적이다. 이들 제품은 표면을 코팅 처리해 장에서만 녹도록 한 장용정제로 개발됐다. 일반적으로 위점막 보호를 위해 장용정제 형태의 아스피린 복용이 권장된다.

 

500㎎짜리 고용량 아스피린을 5분의 1로 쪼개서 먹으면 저용량 아스피린과 동일한 심혈관질환 예방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곤란하다'고 말한다. 장에서 녹도록 코팅이 된 저용량 아스피린과 달리 해열ㆍ진통제로 개발된 고용량 아스피린은 바로 위에서 흡수돼 위장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저용량 아스피린이라 하더라도 가급적 식후에 위벽을 자극하지 않는 상태에서 복용하고 먹은 후에는 물을 많이 마시라고 권장한다.


◆ 6년 먹으면 대장암 70% 까지 예방

아스피린은 심혈관계 질환 외에도 여러 가지 질병에 효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 가장 주목받는 것은 항암 효과다.

 

미국 국립암연구소 그레첸 지어라크 박사는 지난 5월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아스피린을 매일 복용하면 유방암 위험이 평균 16% 낮아진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 로즈웰파트암연구소의 메리 레이드 박사는 두경부암 환자와 일반인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아스피린을 10년 이상 장기복용한 사람들의 두경부암 발생률이 30% 낮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레이드 박사는 "아스피린의 항암효과는 악성종양 이전 단계의 전암(前癌)성 병변을 증가시키는 효소인 COX-2를 억제하는 데서 온다"고 주장했다. 아스피린을 매주 14알씩, 6년 동안 먹으면 대장암을 70%까지 예방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당뇨병 환자도 아스피린 복용이 권장되는 사례다. 아스피린은 당뇨병의 후기 합병증을 예방하거나 지연하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뇨병 환자는 건강한 사람보다 혈소판 생존기간이 짧은데 이로 인해 심장마비나 뇌졸중이 발생하기 쉽다. 아스피린은 혈소판의 소멸속도를 지연시키는 기능을 한다.


이른바 '이코노미 증후군'의 예방에도 아스피린이 특효약이다. 이코노미 증후군은 비행기나 자동차, 극장 등 협소한 공간에서 장시간 움직임이 제한될 때 허벅지나 종아리에 있는 심정맥의 피가 응고되는 현상이다. 심정맥 혈전증이라 불리는 이 증상은 '폐색전증' 등 합병증을 초래해 사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의대 연구에 따르면 아스피린은 폐색전증 발병 확률을 43%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천식과 아스피린의 관계는 양면적이다. 일반적으로 아스피린은 기관지 수축을 유발해 천식환자들에게 심한 발작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천식환자들의 아스피린 투여는 금지된다. 그런데 최근 하버드대 의대팀이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심장병 예방 목적에서 아스피린을 복용한 사람들의 천식 발생이 22% 낮게 나타났다.


◆ 부작용은 없나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는 아스피린이지만 다른 모든 약과 마찬가지로 부작용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위장 출혈이다. 아스피린을 장기 복용한 환자 중에 속쓰림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은데 약이 위점막에 손상을 주기 때문이다. 위궤양 등 장내 출혈 환자, 정기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은 아스피린을 멀리해야 한다.

 

특히 아스피린과 관절염 치료제로 사용되는 비(非)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를 함께 복용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둘 다 위장에 좋지 않은 약으로 동시 복용하면 위장관 부작용 위험이 9배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아스피린은 피를 묽게 하는 성질이 있어 출혈이 시작되면 피가 잘 응고되지 않는 특성이 있다. 때문에 수술을 앞둔 환자들은 아스피린 복용을 피하는 것이 좋다. 혈우병 등 출혈성 질환자, 활동성 간질환이 있는 사람도 복용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