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명상글

맑은 바람, 밝은 달(淸風明月)

풍월 사선암 2009. 7. 23. 20:09

 

맑은 바람, 밝은 달(淸風明月)


'청풍명월(淸風明月)'은 바람 서늘하고 달 밝다는 뜻으로 월백풍청(月白風淸)이라고도 한다. 청풍은 가슴까지 서늘한 시원한 바람, 명월은 깨끗하고 맑게 개인 달로서 청풍명월은 티끌만한 오염도 없는 순수 청명한 심경, 다시 말해서 번뇌 망상을 없앤 무아, 무심의 경지를 비유한 것으로 불성을 말한다.


또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본래면목(本來面目), 법성(法性)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청풍명월은 선적(禪的)인 의미를 갖고 있는데, 통속적으로는 순수한 인간성이나 진실한 자기를 나타낸다.


본래의 순진무구한 불성을 나타내는 청풍명월을<인천안목(人天眼目)>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명월과 청풍은 멋대로 오고 간다. 청풍은 명월을 배제하고 명월은 청풍을 배제한다."


이 말은 무심의 경계로서 자유롭고 무애자재한 묘용(妙用)을 나타낸 것이다. 또 "명월청풍이 무진장하다(明月淸風無盡藏)."는 말은 본성이 일체의 삼라만상을 남김없이 포함하고 있는 광대무변한 덕을 나타내고 있다.


불심, 불성의 보편성에 대해 <벽암록>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 집엔들 명월과 청풍이 없겠는가?" 이것은 빈부귀천의 차별 없이 어느 집에나 똑같이 명월이 깃들고 청풍이 불어온다는 뜻으로, 불심, 불성이 만인에게 평등이 갖춰져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똑같은 의미를 지닌 말로 "명월과 청풍이 모두 한 가족"이라는 말도 있고, 표현은 좀 다르지만 "어느 집 아궁인들 불을 때면 연기가 안나겠는가?"라는 구절도 있다. 모두 불성이 이 세계 어느 곳에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불교경전에서는 이러한 의미를 '실유불성(悉有佛性)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불성이란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일체 만물 모두가 불성을 갖추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일체 만물 그 자체가 불성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불성 또는 순수한 자기인 청풍명월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깃들어 있지만, 사람들은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고 있다.


따라서 청풍명월을 자기 밖이 아니라 자기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명월이 비치고 청풍이 부는 심경으로 매일 매일 좋은 날로, 매년 매년 좋은 해로 보내고 싶다. <碧巖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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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風明月本無價, 近水遠山皆有情

(청풍명월본무가, 근수원산개유정)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본디 가치가 무한하고, 가까운 강과 먼 산은 모두가 다정하다.


청풍과 명월은 원래 마음에 맞는 단짝인지 붙어 다니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특히 가을에 나다니어 쓸쓸함을 몰아낸다. 本(본)은 본래의 뜻이다.


無價(무가)는 정할 수 있는 값이 없다는 뜻이다. 즉, 가치가 무한하다는 뜻이다. 無價之寶(무가지보)는 가치가 무한한 보배라는 뜻이다. 無價紙(무가지)는 보통 대가 없이 거저 주는 신문을 뜻한다. 近(근)과 遠(원)은 거리상 가깝고 멀다는 뜻이다. 혹 동사가 되어 가까이하다와 멀리하다의 뜻으로도 쓰인다. 皆(개)는 모두의 뜻이다.


맑은 바람은 상큼하게 피부에 와 닿고 밝은 달은 환히 눈에 들어온다. 소동파(蘇東坡)는 유명한 赤壁賦(적벽부)에서 이르길, 강가의 맑은 바람은 귀에 들어와 소리가 되고 산간의 밝은 달은 눈에 들어와 빛깔을 이룬다며, 그것들은 아무리 차지해도 금지하는 이가 없고 다 써서 없어지는 법이 없는, 조물주의 무진장한 보배라고 했다. 분명 마음껏 차지할 수 있고 남들과 다툴 일 없는 무한한 선물이다.


멀리 또는 가까이에 있는 산수에 무슨 감정이 있을 리 없지만, 보는 이가 제 스스로 정겨워하며 다정하다 이른다. 사람보다는 의연한 자연의 모습이 좋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서일까? 아니면 사람도 자연의 일부여서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정이통하는 것일까?


언젠가는 돌아갈 곳인지라 미리 정을 붙이려는 것은 또 아닐까? 대체로 나이가 들수록 자연을 좋아하게 되는 것을 보면 그럴 듯도 하다. 금년 가을에는 청풍명월을 더 많이 차지하여 부자가 되고, 다정한 산수에게서 더 많이 정을 느끼고 싶다. <오수형 서울대 교수·중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