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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변휴업(開辯休業·개업해도 일 없는 변호사)

풍월 사선암 2009. 7. 16. 12:02

 

개변휴업(開辯休業·개업해도 일 없는 변호사)

강훈 기자 nukus@chosun.com


해마다 1000명씩 배출 사법연수원 수료해도

상당수가 '백수 변호사' 초임 연봉도 크게 하락


올해 1월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K씨는 반년째 놀고 있다. 법무법인(로펌)이나 대기업에는 아예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으며, 개업한 변호사의 '조수'로도 취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개업 10년째를 맞은 Y변호사는 올 들어 단 한 건의 사건도 수임하지 못했다. 그는 "매일 사무소로 출근하지만 사건 없는 다른 변호사들과 사우나 등에 가서 시간 때우는 게 일"이라고 했다.


사법연수원을 나와 취직하지 못하거나, 법률 사무소를 열었지만 할 일이 없는 '백수 변호사'들이 늘고 있다.


사법연수원에 따르면 올 1월 13일 연수원을 수료한 38기 978명 가운데 34명이 지난달까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수원 수료생들이 수개월째 미취업 사태가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법연수원 관계자는 "작년 이맘때엔 진로를 정하지 못한 사람이 3명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예상보다 취업난이 심각하다"며 "경기불황 영향도 있지만, 한해 1000명씩 배출하는 변호사 인력의 공급 과잉 등의 영향이 크다"고 했다. 미취업 연수원 수료생 중에는 여성이 18명으로 남성(16명)보다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요구 연봉을 대폭 낮춰가며 여기저기 '하향 지원'을 했지만 구직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임 변호사의 연봉도 뚝 떨어졌다. 서초동의 변호사 사무실의 경우 10년 전만 해도 연수원 수료생에게 연봉 8000만을 보장해줬지만, 지금은 4000만~5000만원에 모집 공고를 낸다고 한다. 내년에 연수원을 수료하는 K씨는 "취업 문제로 미치겠다. 혼자 개업하려니 부담스럽고 취직을 하자니 받아주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사무실 문을 열었지만 변호사회 회비를 내지 못할 정도의 백수나 다름없는 변호사들도 적지 않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따르면, 6월 현재 소속 변호사 7900여명 중에 매달 5만원씩 내는 변호사 회비를 연체한 변호사는 1762명이다. 이 가운데 3개월 이상 연체자는 693명이었고, 12개월 이상의 '악성 연체자'도 105명으로 파악됐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관계자는 "회비 납부를 요구하면 '직원 월급도 못 주고 있다' '부동산은 있는데 현금이 없다'는 이유로 회비를 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악성연체자 중에는 '행방불명' 변호사도 10명가량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변호사회 관계자는 "소재 파악을 해보니 지인들은 물론 가족과도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변호사 업계의 불황이 지속되자 사건을 가져오는 브로커가 수임료의 절반까지 가져가거나 아예 브로커가 변호사들을 고용하는 불법법률사무소까지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브로커들이 사건을 소개하고 받는 소개비는 전체 수임료의 20~30% 선이었으나 이젠 절반을 떼어주더라도 사건을 맡으려는 변호사들이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이런 불황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더 심화할 것이라는 데 그 위기감이 더하고 있다. 사법연수원에선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연수원생이 매년 1000명씩 쏟아져 나오는 데다, 2012년부터는 2000명가량의 로스쿨 졸업생이 배출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현재 전국의 변호사 숫자는 1만946명이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취업 문제와 수입 급감 등 변호사들의 위기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며 "치열한 생존경쟁을 거친 변호사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