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재물무상(財物無常)

풍월 사선암 2009. 7. 12. 11:56

 

 

재물무상(財物無常)


의롭지 않은 재물은 끓는 물 위에 뿌려지는 눈(雪)과 같다고 한다.

그것으로써 누리는 영화는 아침에 이는 구름, 저녁에 지는 꽃처럼

허망하다. 명심보감 성심(省心)편에 보이는 표현이다.


재물은 무상(無常)하다.

땀흘려 쌓은 부라고 할지라도 하루아침에 잃을 수도 있다.

부자가 삼대 가기 어렵다고 하지만 당대에서 몰락하는 경우도 숱하다.

재물이 얼마나 뜬구름 같은 것인지를 보여주는 옛 이야기가 있다.


120간짜리 사랑채를 쓰며 떵떵거리던 부자가 죽어서는 꽃상여도

못타고 떠나갔다.


기막힌 몰락의 주인공은 일제시대 때 전남 강진 출신 갑부 김충식이다.

4만석의 재력가인 그는 1930년대 경제계를 쥐락펴락했던 걸물이었다.

당시 세간에서는 “조선의 돈줄은 두 식(植)자가 쥐고 흔든다”고 입방아

를 찧었는데, 화신백화점의 박흥식과 김충식이 그들이다.


김충식의 재운(財運)은 타고났던 것 같다.

미두와 골동품, 토지, 증권 등 손을 대는 대로 족집게처럼 대박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가 거부를 일군 것은 운 덕분만이 아니었다.

무학(無學)인 그는 20세 때 상경하여 종이장사를 하며 한푼 두푼

모으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학교 대신 시장에서 몸을 굴리며 이재에 눈을 뜬 것이다.

돈이라면 그는 동물처럼 달려들었고, 남들과의 송사도 마다 안했다.

일단 돈을 쥐면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얼마나 구두쇠인지 “정월 초하룻날 엽전 한 닢을 손에 쥐면

그 이듬해 초하룻날까지 쥐고 있더라”는 풍문이 떠돌 정도였다.


그렇게 모은 재산이지만 잃는 데는 한 세대도 걸리지 않았다.

태평양전쟁 때 쌀을 매점해 일제에 밉보인 탓이 컸다.

첫 아내와 사별한 뒤 네번이나 안방주인이 바뀐 가정의 불행도

한몫했다. 말년에 무의무탁한 김충식은 객지에서 병사해 상여조차

못타고 저승길로 떠났다. 고래등 같았던 120간짜리 집은 6·25 때

불에 타 사라지고 재산도 구름처럼 흩어졌다.


재물은 하늘이 잠시 내게 맡긴 것이라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맡겨졌던 재산 331억원이 사회에 돌려졌다.

본래 내 것이 아닌 재물을 내 것인 양 움켜쥐려는 것은 부질없다.

갑부 김충식은 엽전 한 닢도 놓지 않으려 했지만 하늘이 거둬가니

도리가 없었다. 재물을 부둥켜안으면 재앙이 앗아간다.

이것은 옛날 얘기만은 아니다.


김태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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