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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이의 발자취] 당신의 영전에 ‘승리의 월계관’을 - 장영희 교수

풍월 사선암 2009. 5. 11. 21:31

[가신이의 발자취] 당신의 영전에 ‘승리의 월계관’을

장영희 서강대 교수

 

장애·병마로 얼룩진 인생마라톤 ‘역주’

희망의 이름 ‘장영희’ 잊지않겠습니다

 

끝내 가셨군요. 장애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57년 동안 인생마라톤을 달려온 당신 머리에 월계관을 씌워드릴게요. 당신은 아름다운 승리를 했으니까요. 당신은 장애인에게 척박했던 그 시절, 사회 편견과 맞서 장애인에게 굳게 닫혀있던 대학의 문을 열고 들어갔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아왔죠. 그리고 모교인 서강대학교에서 교수가 됐구요.


그런 당신은 나를 비롯한 이 땅의 장애인들에게 희망 그 자체였답니다. 당신을 지면을 통해 만나면서 당신이 쓴 글을 읽으면서 난 당신이 미웠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너무나 완벽했으니까요. 당신은 훌륭한 아버지를 가졌고, 영문학자로서 기반이 든든했고, 당신의 글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그리고 당신은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당신이 양쪽 팔에 짚고 있는 목발은 장애가 아니라 당신의 그 모든 것을 돋보이게 하는 하나의 장치에 불과했답니다.


당신에 대한 부러움이 그런 미움을 만들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당신이 절필을 선언하는 글을 접했지요. 유방암이란 불청객이 찾아와 잠시 쉬어야겠다는 당신의 고백에 난 신문이 젖을 정도로 눈물을 쏟아냈답니다. 왜 그리 마음이 아프던지 왜 그토록 서럽던지 목놓아 울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곧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어요. 당신 앞에서는 암도 꼼짝을 못하는구나 싶었죠. 당신은 불행이란 단어가 뭔지 모르는 행운아란 생각이 들더군요. 언젠가 방송국 로비에서 당신을 만났어요. 너무나 반가워서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인 양 인사를 했죠. 당신도 나를 낯설어하진 않았어요.


실제로 만난 당신은 수줍음이 많고 사람들의 농담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숙한 면이 있었죠. 한마디로 당신은 무공해인간이었어요.


당신이 척추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난 무척 화가 났어요.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는 신이 있다면 너무 염치가 없다고 중얼거렸죠. 장애라는 짐을 줬으면 그것으로 끝내야지 무슨 암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생명을 담보로 장난을 칠 수 있느냐구, 인생에 최선을 다한 것도 죄가 되느냐구, 드라마를 써도 이렇게 비극적으로 쓸 수는 없을 거라구 신을 원망했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런 원망이 없었어요. 당신은 또 다시 이겨낼 준비를 했죠. 그리고 1년만에 다시 돌아왔어요. 당신은 순간 순간 더 열정을 쏟았죠. 그런 당신은 장애인을 넘어 암으로 투병하는 환우들에게 삶의 의욕을 불어넣어주는 희망의 메신저였답니다.


지난해 1월, 당신에게 전화를 했지요. 솟대문학 행사에 초대하고 싶다고 말예요. 당신은 이렇게 대답했어요,


“그래요. 내가 꼭 한번은 가보려고 했었는데, 어쩌죠? 지금 투약중이어서 외출이 금지됐어요. 미안해요. 다음 솟대문학 행사 때 꼭 갈게요. 장애인 분들이 문학을 하기 위해 그렇게 열심인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그리고 정말 장해요, 방귀희씨.”


무심해 보이는 듯 했지만 당신도 장애문인에게 사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져 코끝이 찡했답니다.


장영희 당신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당신이 남긴 작품은 오래도록 우리와 함께 할 거에요. 그리고 장영희라는 여자가 살아온 역사는 인간이 어떻게 고통을 이겨내고 어떻게 행복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잘 가세요. 장애와 암이 없는 나라로…….


글 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